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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9월 말. 군입대를 일주일 남겨놓고 금강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 공모전 수상으로 공짜로 가게된 것인데 표는 한 장만 주어졌다. 입대 전 마지막 여행이라 혼자가도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2년간 북을 적으로 두는 생활을 해야하는데, 그 전에 북한에 다녀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당시에는 속초에서 배를 타고 갔고 잠도 배에서 잤다. 북한까지 4시간 가량 걸렸는데 정말 끝없는 바다가 펼쳐졌다. 승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망망대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둘째날 금강산에 올랐다. 지팡이를 짚고 굽은 허리로 올라가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 불안해 보였지만 그분들이 꿋꿋이 산을 올랐다. 나는 순간순간 느낌들을 기록했다. 혼자 있다 보니 남들이 가지 않는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는데 구룡폭포에서 한 여성환경관리원이 나를 불렀다.
"동무, 거기 내려가시면 위험합니다"
"네? 죄송합니다"
"혼자서 이런 위험한 곳을 가려고 하십니까? 혹시 혼자 오셨습니까?"
그녀의 이름은 리철숙. 내 또래로 보이는 그녀는 친구처럼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남한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다. 남한 대학생들의 통일의식에 대해서 물었는데 나는 시원하게 대답해주지 못했다.
"예전보다 그 열기가 뜨겁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통일을 반대하는 대학생도 있구요."
그녀는 수첩에 호기심를 가졌다. 나는 수첩을 보여주었고 알아보지 못하는 글씨에 대해 그녀는 질문했다.
"오락실로 몰려드는 아이들? 이건 무슨 얘기입니까?"
당시에 정부와 학교의 지원으로 초등학생들은 거의 공짜로 금강산에 올 수 있었다. 첫날 금강산온천에 도착한 아이들은 오락기를 보자마자 전부 그쪽으로 뛰어갔다. 나는 마지막날 이 아이들에게 금강산관광이 어땠는지 물었다. 아이들은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한 또다른 수학여행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북한에 온다고 해서 통일을 향한 희망이 저절로 싹트는 것은 아닌가봐요. 다들 그걸 바라고 많은 지원을 했을텐데, 안타깝죠."
그녀는 남한의 정치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털어놓았다. 당시 남한의 대선, 언론시장, 학생운동 등 다양한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그녀에 대해 나는 좀 놀랐다. 나는 마치 내가 남한의 대표채널이 될까봐 되도록 신중하면서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야기를 들으니까 통일을 위해 우리가 서로 노력해야할 부분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수원동무를 보니까 희망이 보입니다."
산에서 다 내려왔을 때 나는 뭔가 아쉬워서 내 이름과 이메일 주소를 써서 건넸다. 나중에 북한에서도 인터넷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되면 꼭 메일을 달라고 말했다.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예전에 금강산에서 찍힌 북한사람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인터넷에 퍼져, 당시에는 촬영이 금지된 상태였다.
단 둘이 그렇게 이야기 나눈 것을 보고 혹시 나에게 월북이라도 권유했을까봐 노심초사했다는 할머니, 국가보안법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는 할아버지도 있었지만 내가 일부러 접근했다는 예리한 할머니의 지적도 나왔다.
"총각이 먼저 관심 있어서 다가간 거지? 그렇지? 둘이 잘 어울리던데, 남남북녀 아닌가. 이참에 통일커플 탄생시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그려"
나는 그 이후로 사람들에게 금강산관광은 혼자서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혼자가면 더 많은 사람과의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덧붙이는 글 | '우리 가족과 8.15' 기사 공모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