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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 형님과 사돈 어르신, 그리고 아기, 삼대가 모였습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행복하게 잘 살라고 오마이뉴스 독자님들 격려해 주세요.
ⓒ 박미경
지난 8일 우리 집안의 장손이 태어났습니다. 지난해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그리도 보고 싶어하시던 형님이 아들을 낳으셨거든요.

지난해 11월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실 때 형님은 우리 집안의 장손을 배 속에 품고 계셨습니다(저희 형님은 중국 조선족입니다). 어머님은 형님이 오셨을 때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지만 아버님께서 큰 며느리와 장손을 보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신 걸 못내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그런 형님이 무사히 아이를 낳으시고 또 그 아이가 아들임에 무척 기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가까운 곳에 사는 둘째 며느리인 저는 왠지 마음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형님네가 어머님을 모시고 살면서 겪을 어머님과 형님의 갈등이 보이는 듯해서, 또 그 갈등을 풀어내야 하는 것이 가까운 곳에 사는 저와 남편의 몫인 듯해서 잘 감당할 수 있을지 영 자신이 없거든요.

형님이 아기와 함께 퇴원하기 하루 전인 지난 12일, 어서 병원으로 와 보라며 어머님께서 다급하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가니 형님은 등을 돌리고 누워계시고 어머님은 손에 무언가를 들고 한켠에 앉아계셨습니다.

사정인즉, 어머님께서 참깨 등 농사일을 하시다가 오후 5시 무렵 병원에 오셨답니다. 아주버님이나 저희 부부는 모두 직장 때문에 형님 곁에 있을 수 없었구요. 그 사이 병원에서 아기 눈에 눈꼽이 낀다며 소아과 진료를 하고 처방전을 주며 약을 조제해 오라고 했답니다. 아직 수술 부위가 아물지 않은 형님은 난감했고 때마침 오신 친정 어머님이 약국에 가서 약을 지어오셔서 아기 눈에 안약을 넣을 수 있었답니다.

형님은 며느리가 누워 있고 아기도 아픈데 그깟 농사일 때문에 병원에 늦게 오신 시어머니가 못내 서운하셨답니다. 또 어머님은 작명소에서 지어오신 세 개의 아기 이름 중 하나를 골라라고 했더니 형님이 이름이 맘에 안든다며 어머님께 다시 지어오라고 했다며 다리도 아프고 날도 덥고 한번 지어 왔는데 다시 지어 달라고 가지는 못하겠어서 너희들이 지어라고 했더니 형님이 화를 낸다며 서운해 하고 계셨습니다.

형님은 신랑이랑 상의해서 이름을 고르겠다고 했는데 어머님이 이름이 맘에 안들면 너희들끼리 지어서 부르라며 화를 내셨다며 서운하다고 말씀하고 계셨죠.

중간에 선 저희 부부는 양쪽의 말을 듣고 서로간에 오해가 있었나 보다, 서로 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표현이 서툴러서 생긴일 같다며 형님을 어르고 달랬습니다. 어찌됐든 형님내외는 어머님이 지어오신 세개의 이름 중 '현수'라는 이름으로 아기를 부르기로 결정하셨고 어머님의 입장도 이해하셨습니다.

막내딸과 둘째, 셋째 며느리 모두 수술을 해서 아기를 낳았지만 어머님이 병원 수발을 들진 않으셨습니다. 결정적으로 수술로 아이 셋을 낳은 제가 병원에서 무통주사약을 맞으면서 너무 씩씩하게(?) 혼자서 제 몸 건사를 잘 했으니 수술로 아이 낳은 며느리 병원 수발을 해야 한다고 생각지 못하셨던 거지요.

어머님 입장에서 볼 때 제가 수술로 세 아이 낳고 혼자 병원에서 아기 옆에 끼고 우유 먹여가며 기저귀 갈아가며 위에 있는 아이들까지 챙기며 병원에 있어도 간간히 들여다 봤을 뿐이었는데 형님이 어머님께서 수발을 안해 준다고 하니 이해가 안되신 게지요.

제 경우에는 남편이 새벽 5시에 출근해서 오전 12시경 퇴근해 오후와 저녁 시간을 중간 중간 아이들 봐주며 수발을 들어줬고 무통주사약이 기가 막히게 잘 들어 약 기운이 몸에 있는 동안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해 몸을 움직이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어머님은 저와 형님은 다르다는 걸 깜빡하신 듯 했습니다.

하여튼 어머님과 형님의 갈등을 풀고 다음날 형님을 퇴원 시켜 시골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우리 집으로 돌아오고 나니 앞으로 형님과 어머님이 겪으며 풀어가야할 갈등들이 장난이 아니겠다 싶어 한숨이 나왔습니다.

하긴 같은 나라안에서도 부부가 연을 맺으면 그동안 살아왔던 환경이 다른 탓에 이런저런 갈등이 생기기 마련인데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에서 서로 살다가 만나 인연을 맺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겠지요.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중국 조선족은 물론 필리핀, 베트남 여성들과 국제 결혼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서로 다른 제도와 문화, 생활방식에서 살다가 인연을 맺은 이들이 검은 머리 파뿌리될 때까지 살기 위해선 주변의 관심과 이해가 정말 필요합니다.

서로간에 갈등이 생겼을때 우리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말을 듣고 전후 사정을 살피고 차분하게 이해시켜가며 하나하나 문제를 풀어 주는 주변 사람들의 작은 관심과 도움이 이들에겐 절실히 필요하다고 할까요.

국제결혼한 커플들이 끝까지 연을 맺지 못하고 헤어진다면 그또한 우리 사회의 문제로 남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이혼한 부부로 인해 생기는 결손가정 등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에 공감하고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투자하듯 국제결혼 커플들의 이혼으로 인해 사회 문제가 대두되기 이전에 갈등요소를 파악하고 사전에 미리 갈등을 풀어주는 등의 사회적,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화순의 소식을 알리는 디지탈 화순뉴스(http://www.hwasunnews.c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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