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극장에서 조만간 필름이 사라질 전망이다.
영화제작사, 극장주, 장비업체 등 미국의 관련업체들이 주도해 결성된 '디지털 영화 추진위원회(Digital Cinema Initiatives)'는 지난 7월 27일 발표된 보고서에서 극장의 디지털화 계획에 관한 기술적 표준에 합의했다고 공개했다.
176쪽에 이르는 이
보고서는 영화파일의 해상도, 파일압축 포맷, 보안기술 등 극장에서 디지털 영화를 상영하는 문제에 관련된 주요한 기술적 합의내용을 담고 있다.
<스타워즈>를 비롯한 일부 영화가 디지털 영사기를 도입한 극장을 중심으로 한국에서도 상영되는 등 디지털 방식 영화상영이 꾸준히 확대되어 왔지만 업계 공통의 표준이 없어 보급이 부진했었다.
조지 루카스, 제임스 카메론, 로버트 제멕키스 등 할리우드의 유명 감독들 역시 이번 합의에 환영 메시지를 발표하고 나서는 등 디지털 극장에 대한 할리우드의 기대감은 한껏 부풀어 있는 상태다.
많은 진통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가 디지털 극장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돈 때문이다.
수천개의 스크린에서 동시에 개봉하는 블록버스터 대작들이 늘면서 영사용 필름 제작에 투입되는 돈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미국영화협회에 따르면 2003년 한 해만도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6억 3천만 달러가 넘는 돈을 영사용 필름 제작에 투입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미국의 모든 극장이 디지털 상영관으로 개조될 경우 이 돈의 90% 이상을 절감할 수 있으며 전 세계의 모든 극장이 모두 디지털화 될 경우 연 9억달러에 가까운 돈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문제는 대당 수십만 달러를 호가하는 디지털 영사기의 구입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는 것. 극장주들은 필름상영을 중단할 경우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엄청난 비용을 아낄 수 있는 만큼 이 돈을 극장들의 장비구입 비용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해킹을 어떻게 방지하느냐 하는 것이다. 암호화 기술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초고해상도의 극장상영용 파일이 해킹돼 유출될 경우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입을 피해규모가 막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
그러나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디지털화를 통해 얻을 이익이 막대한 만큼 세계의 극장가에서 필름이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예정대로 할리우드와 극장업자들 사이에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질 경우 영화상영뿐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가 극장에서 가능해진다. 필름이 필요 없는 디지털 영사기의 특성을 활용, 월드컵 같은 대형 스포츠이벤트를 극장에 모여 즐기거나 해외에서 벌어지는 대형콘서트를 위성으로 디지털 생중계 하는 것 등이 그것.
또 필름 교체 없이 상영 영화를 손쉽게 올리거나 내릴 수 있는 만큼 관객의 반응에 따라 영화의 흥행 여부가 초고속으로 결판나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해 영화배급 관행에도 혁명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