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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 오마이뉴스 김종철
"최근 삼성의 성과가 좋다는 것은 압니다. 또 이건희 회장이 그동안 (경영을) 잘해왔다는 점도 인정해요. 그렇다고 앞으로 이재용 상무가 (이 회장만큼) 잘할 것이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게다가 이 회장도 앞으로 계속 다 잘 할 수 있을까요. (삼성은) 못하는 사람이 물러나는 시스템이 아닌 것 같아요. 특히 총수 일가에 대해선…. 아마 이것은 절대 깨지지 않을 겁니다."

그의 어조는 낮았고, 차분했다. 표정도 큰 변화가 없다. '재벌 오너의 경우 의사결정 과정이 신속하고, 책임성이 강해 나름의 장점이 있지 않았나' 라고 물었을 때, 그나마 목소리 톤이 약간 올라갔다. 힘주어 말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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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재벌, 그것이 알고 싶다

지난 8일 연구실서 2시간여 넘게 진행된 인터뷰 내내 기자는 그의 목소리를 끌어 올리려 안간힘을 썼다. 10여년째 한국 재벌의 소유 지배구조를 연구해 온 김진방 인하대 교수(경제학).

기자 입장에선 그동안 그로부터 어떤 견해를 듣기란 쉽지 않았다. 재벌 지배구조 연구에 관한한 국내외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전문가지만, 말을 아껴왔다. 그런 그가 말문을 열었다.

재벌 총수일가가 어떻게 적은 돈으로 그렇게 많은 기업들을 지배해 왔는지는 오히려 식상한 주제가 될 정도였다. 그는 두산 박씨 형제가 왜 저렇게 싸우는지, 삼성전자의 적대적 인수합병이 왜 불가능한지, 그리고 삼성 이씨일가의 지배구조가 왜 문제인지 조목조목 비판했다.

"거의 모든 재벌 소유구조는 순환출자식 다단계 구조"

기자가 그를 만나게 된 것은 최근에 나온 '한국의 재벌(나남출판, 총5권)'이라는 책이 계기가 됐다. 진보적 성향의 학자와 연구자 16명과 함께 쓴 이 책은 한국 재벌의 사람들과 돈줄, 그리고 지배형태를 실증적인 자료를 토대로 분석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그동안 한국 재벌의 지배구조나 사업구조 등 내용면의 연구에서는 일본 동경대 하토리 다미오 교수팀이 가장 앞서 있었죠."

그의 말이다. 이어 그는 "우리 연구진이 이번에 내놓은 것은 그동안 나온 (한국 재벌에 대한) 자료 가운데 가장 최신의 것이고, 체계적이며 종합적으로 분석한 연구로도 처음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초에 하토리 교수팀이 한국 연구진을 일본으로 초청해서 연구 내용을 들을 정도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대화는 자연스레 재벌 문제로 옮겨갔다. 최근 삼성공화국 논란과 함께 두산그룹에서는 박씨 형제들끼리 그룹 지배권을 두고 폭로전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김 교수의 입장은 분명했다. 재벌의 낙후된 소유지배구조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재벌의 지배구조는 순환출자 구조다. 'A'라는 회사가 'B'라는 회사 지분을 갖고, 'B'는 다시 'C'라는 회사 지분을 갖고, 'C'는 'A'로 가는…. 97년말까지 이런 출자구조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순환출자 비중이 매우 높아졌다."

이어 그는 "이런 관계를 다단계, 교차 출자관계라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외부 투자자들의 이해가 반영이 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순환출자를 통해 총수 일가가 그룹 지배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여진다.

"두산 박씨일가의 경영권 분쟁은 예상됐던 일"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 오마이뉴스 김종철
결국 5%도 안되는 지분을 가진 총수일가의 잘못된 경영에 대해 95%의 외부인들이 제대로 대응을 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재벌구조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그는 '집단행동문제(Collective action problem)'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재벌들은 '책임경영을 한다'고 주장하지만, 막상 책임을 물으려면 그 대상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두산그룹에서 벌어지고 있는 박씨 형제들의 경영권 다툼도 충분히 예상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두산 내부의 순환출자 구조 변화에서 이유를 찾았다.

"두산의 내부 지분구조를 보면, 재미있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요즘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박용성, 박용오 회장 등 '용'자 돌림(3세대)은 주로 (주)두산의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두산이 외환위기 이후 한국중공업과 고려산업개발 등 굵직한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과정에서 두산의 무게 중심이 두산산업개발 쪽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었다."

(주)두산 회장이던 박용오 회장의 '두산산업개발 최대주주 보장' 주장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이어 이를 막으려는 박용성 회장 쪽과의 갈등은 이미 잠재돼 있었고, 급기야 폭로전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김 교수는 "솔직히 박씨 일가가 가지고 있는 두산계열의 순수 주식 값어치는 얼마 되지 않는다"면서 "이런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재벌이 적은 지분이라도 경영권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과도한 경영권 프리미엄이라고 했다.

"이재용 상무가 잘할 것이라는 보장 있나"

재벌 문제를 논하는 데 삼성이 빠질 수 없었다. 김 교수는 "삼성의 경우 재벌 일가 가운데 경영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가 물러나는 시스템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삼성이 성과가 좋고, 이건희 회장이 잘했다는 점도 인정한다"면서도 "하지만 이재용 상무가 앞으로 잘할 것이라는 보장이 어디 있냐"고 반문했다. 또한 그는 "이건희 회장이 앞으로도 계속 잘 할 수 있다고 보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공정거래법상의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이나, 금융과 산업자본 분리를 위한 금융산업구조개편에 관한 법률(이하 금산법)의 논란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보였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이나 금산법 개정 등은 모두 삼성과 직접 연관이 있다. 삼성이 (의결권 제한을 두고) 헌법소원까지 냈는데, 처음에 공정거래법에 명시될 때는 '제한'이 아니라 '금지'였다. 그러다가 완화됐는데…. 예전대로 '금지'로 가야한다. 금산법 개정안에서 정부안은 삼성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비상장 회사인 에버랜드를 정점으로, '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 등의 출자형식으로 그룹을 유지하고 있는 삼성 입장에서는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과 금산법 24조 개정이 지배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안이다. 일부에선 삼성 그룹 해체 가능성도 나올 지경이다.

김 교수는 "삼성의 지배구조에 큰 변화가 올 수 있다"면서 "그룹의 해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경제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민경제 성장과 발전위해 삼성 지배구조 개선해야"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 오마이뉴스 김종철
외국인에 의한 삼성전자의 적대적 인수합병(M&A) 논란에 대해서도 단호했다. 그는 "삼성전자의 경우 이씨 일가와 계열사 지분 등을 다 합하면 25% 가까이 된다"면서 "이 정도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적대적 인수합병을 걱정하는 것은 스스로 경영을 엄청나게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외국인들이 삼성전자 경영권 인수를 위해 지분을 늘릴 가능성도 별로 없는데다가, 늘린다 하더라도 주식 매입을 위해 들어간 돈에 대비해 그들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많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그는 전망했다.

기자는 현재 재벌 가운데 '좀 더 나은 지배구조'로 평가할 만한 곳을 말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LG 그룹의 지배구조 변화를 높게 평가한다"면서 "이 곳에는 다른 곳처럼 다단계나 계열사끼리의 교차 출자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주)LG 라는 지주회사를 통해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고, 구씨 일가의 경우 계열사 주식을 거의 다 처분했다. 지주회사 주식만 가지고 있다. 외부주주 입장에선 이해관계가 단순화되고, 책임 소재도 분명해졌다. 물론 (구씨 일가가)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가족들끼리 복잡한 지분관계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일 뿐이다."

현행 재벌의 낙후된 소유지배구조를 개선할 대안을 물어봤다. 간단했다. 기업들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거래에 대해 검찰이나 법원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금융감독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기관의 적극적인 행동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김 교수는 "사법당국이 재벌들과 총수들의 각종 불법과 편법적인 행위를 엄격하게 다뤄야한다"면서 "제도적으로는 금융과 산업자본간의 분리를 엄격히 해야 하고, 집단소송제를 좀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재벌가문의 묘지까지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김종철 기자

10여년째 한국 재벌 연구에 몰두해 온 김 교수는 이번 '한국의 재벌' 연구를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다고 토로했다. 선언적이고 단언적인 연구 성과를 발표해야 주목받는 학계 풍토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그는 "학술진흥재단의 기초학문육성사업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번 성과는 햇빛을 보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60여명에 달하는 박사급 연구진들이 자료를 찾고 분석하느라 고생이 너무 많았다"고 토로했다.

김 교수 연구팀은 30대 재벌의 소유구조 현황 파악을 위해, 700여개 계열사의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를 일일이 분석해야 했다. 또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지 않은 비상장 계열사들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위해 연구원들이 공인회계사회로 직접 가서 자료를 열람하곤 했다.

재벌의 인맥과 혼맥을 조사하는 과정은 더 험난했다고 했다. 특히 인맥과 혼맥의 경우, 가문의 실명이 그대로 드러나는 만큼 자칫 잘못된 이름 하나와 혼인 관계가 연구의 신뢰성을 크게 떨어뜨릴 위험도 있었다.

김 교수는 "과거에 재벌가의 혼맥과 인맥을 다룬 책에 대한 확인작업과 함께, 이를 업데이트하는 작업이 매우 힘들었다"면서 "신문과 방송은 물론 인터넷 등 검색할 수 있는 모든 매체를 통해 재벌가의 각종 결혼과 부음을 다 챙겼다"고 설명했다.

이것도 모자라 연구원들 사이에서 아예 재벌가문의 묘지에 직접 찾아가 비석에 새겨져 있는 가문의 이름과 혼맥을 알아보자는 아이디어도 나왔고, 실제로 직접 가기도 했다고 김 교수는 회고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재벌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요즘 재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을 때 (책이) 나왔다"고 하자, "시기를 맞추려고 한 것은 아닌데, 그렇게 됐다"는 짧은 답이 되돌아왔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책값이 만만치 않다"’(5권 모두를 구입하려면 17만원 정도)고 묻자, 그는 "출판사에선 각종 도표 등 색깔 인쇄 등으로 더 값을 높여야 한다고 했지만, 그 정도로 낮춘 것"이라며 "첫번째 찍은 책에 대해선 대신 (저자들이) 인세를 받지 않기로 했다"며 웃음으로 답했다. / 김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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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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