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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리 언제 수영장 가요? 다른 친구들은 다 갔다 왔는데.”
“수영장! 그러게 아빠가 시간이 나야 갈텐데. 아빠 언제 시간 되는지 한 번 물어 볼게.”

사흘간의 연휴. 아이는 첫날부터 수영장 타령을 해댔다. 몇 날 며칠 집에서 놀던 남편은 때를 맞추기라도 한 듯 사흘 내내 일이 잡혀 있었다. 일반 직장인들처럼 남편은 정해진 휴일이 따로 없다. 현장 일을 하다보니 일이 없는 날이 바로 휴일인 것이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사흘 연휴 동안 일을 해야 한다는 건 딸아이에게나 문제가 될 뿐이지, 남편이나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 아빠 손잡고 다른 친구들처럼 수영장을 가고 싶어 안달을 해대는 딸아이를 바라보자니 마음 한구석이 아려 오는 건 또 어쩔 수 없다.

연휴 마지막 날(15일). 이틀을 조르다 지친 아이는 아침부터 한껏 풀이 죽어 있었다. 어머니는 딸아이의 풀죽은 모습에 신경이 쓰이는지 넌지시 그 이유를 내게 물어 오셨다.

“수영장 가자고 저 난리잖아. 그렇다고 집밖에 모르는 내가 무작정 저거 데리고 이 더운데 길을 나설 수도 없고.”
“수영장! 그까이꺼 뭐. 대충 고무통에 물 받아서 수영복 입혀서 들여 보내놓으면 되지 뭐.”

한창 TV에 넋을 놓고 계시던 아버지께서 언제 내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뜬금없이 한 마디 던지셨다. 고무통? 고무통? 순간 무릎을 쳤다. 맞다. 고무통에 물을 받아 주면 될 것 같았다. 마침 집에는 아이가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의 커다란 고무통이 있었다.

그 고무통은 세탁기를 사기 2년 전쯤 이불 빨래를 하기 위해 샀던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가끔 이불을 빨 때 그 고무통을 사용하는데 이불을 넣고 발로 꾹꾹 밟아 빨기는 아주 안성맞춤인 것이다. 아마도 아버지는 그런 내 모습을 불현듯 떠올리신 것 같았다.

마당 청소할 때 사용하는 긴 호스를 베란다의 수도꼭지에 끼우고 물을 틀었다. 큰 고무통으로 물이 채워져 가고 있었다. 그 사이 수영복을 꺼내들고 고무통은 싫다는 아이를 땀을 줄줄 흘려가며 어렵게 설득 시키고 있었다.

“복희야! 수영장이나 고무통이나 수영하는 거는 다 똑같은 거야. 저 고무통이 얼마나 큰 줄 알아? 일단 한 번 들어가 보기나 해봐. 그래도 싫다면 다음주에 아빠 쉬면 우리 수영장 가자. 엄마가 약속할게.”

아이는 마지못한 듯 수영복을 껴입었다. 어느새 그 큰 고무통엔 물이 철철 넘쳐나고 있었다. 아이는 한쪽 발을 슬며시 집어넣더니, 이어 마지막 한 발을, 다음엔 아예 물 속으로 첨벙 뛰어 들었다.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철부지는 철부지였다. 이윽고 아이의 입에서는 ‘야! 신난다’는 탄성이 쉴 사이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나절을 아이는 고무통에서 신나게 놀았다. 어느새 입술이 새파랬다. 혹시 감기라도 들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이제 그만 밖으로 나오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아이는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아이는 외할아버지에게로 외할머니에게로 손바닥으로 물을 뿌려대며 마냥 신나 하였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쨍쨍한 여름 하늘을 행복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옛말에 궁하면 통하는 법이라고 했던가. 비록 아이가 원하는 그런 수영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이가 좋아하고 신나하는 모습을 보니 풀죽어 있던 아이의 측은한 모습에서 느꼈던 아린 마음이 다소 위로가 되었다.

아이의 행복한 모습에 한참을 넋이 나가 있었다. 문득 나를 향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께서 나를 향해 빙그레 웃고 계셨다. 소리 없는, 하지만 참으로 많은 의미를 닮고 있는 듯한 아버지의 웃음에서 나는 ‘부모’라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나도 내 자식의 우울한 표정 하나에 한도 끝도 없이 애달파하는 그런 부모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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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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