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실패하면 국정원은 '파괴'다. 그동안의 정권의 파괴 행위 속에서 국정원은 만신창이가 됐다고 본다. …(중략)… 참여정부는 국정원을 국내정치와 분리하는 성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그 반작용으로 국정원을 정보기관으로서의 능력을 상실해가는 '골다공증 환자'로 만들어가고 있다."
30여년 동안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에서 근무했던 정영철 전 국정원 국장은 최근 'X파일 사건' 파문으로 인해 논란이 되고있는 국정원 개혁 문제와 관련해 이와 같이 주장했다.
17일 오후 2시부터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개혁 관련 긴급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정 전 국장은 "너무 과거의 문제로, 현재의 국정원을 재단하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기분이 들었다"면서 말을 꺼냈다.
이어 그는 최근 국정원의 불법도청 고백에 대해 "대단한 결단이었다"며 "국정원이 아직도 불법도청을 하지 않느냐는 의구심을 갖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고 소회를 밝혔다.
또 그는 "최소한 참여정부 이후에는 불법 도·감청이 없다고 확신한다"며 "국민들도 알다시피 YS·DJ 정부와 참여정부 들어서면서 국정원 개혁이 계속됐고 탈정치, 탈권력이 이뤄져 이제는 국정원이 정치공작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YS, DJ는 의지 박약, 참여정부는 반작용으로 국정원 환자 만든다"
정 전 국장은 이어 "국정원은 KGB와 아주 유사한데 (두 기관 모두) 탄생의 업보 때문에 정치개입이 많았고 무소불위의 권력행사가 많았던 게 사실"라면서도 "지금 국정원은 과거 업보를 청산해 나아가는 과도기에 있고, 새롭게 문제가 잉태되는 집단이 아니라 문제를 정리해 가고 있는 집단"이라고 진단했다.
또 그는 "국가정보기관은 대통령의 판단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에 국정운영과 매우 밀접한 관계"라며 "5·16 군사정부가 혁명을 하고 내건 명분이 민생보호·경제발전인데, 이 과정에서 (정부가) 중정을 통해 통합력과 동원력을 이용하니까 자연히 정보기관이 힘의 중심에 서고 권력기관화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국장은 YS 정권과 DJ 정부의 국정원 개혁 실패에 대해 "국정원 하나만을 놓고 개혁할 때는 성공 확률이 적고, 국가운영 전반을 놓고 국정원 개혁을 논의할 때만이 성공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국정원의 존재 이유 자체가 국가통수권자에 대한 보좌 기능인데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한 다음에 국정원 기능이 정지됐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YS와 DJ 정권은 정치적으로 국정원 기능을 정지시킨 뒤 국정 운영을 하다보니 나중에는 답답함을 느꼈고, 결국 다시 국정원의 필요성을 느껴 다시 과거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는 "YS와 DJ는 애초부터 국정원이 가지는 국내정치의 효율성을 버리겠다는 의지가 박약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정 전 국장이 참여정부의 국정원 개혁에 대해 매긴 점수도 높지는 않았다.
정 전 국장은 "과거 폐해에 대한 불신 때문인지는 몰라도 참여정부는 국정원을 정보기관으로써의 능력을 상실해가는 골다공증 환자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노 대통령이 국정원의 국내 정보보고조차도 듣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국가통수권자는 정보기관의 보좌를 받을 권리와 동시에 (보좌를 받을) 의무도 있다"며 "국가정보기관이 개인적인 편견이나 오판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 만큼 나라 운영을 위해서는 반드시 국가정보기관의 보좌를 받아야 한다"고 요청했다.
"국정원 후배들, 변화된 시대상황 인식하고 성공 신화 극복해야"
정 전 국장은 또한 다른 국정원 개혁 실패 이유로 "정보기관의 특성을 무시하고 일반행정기관에 준하는 개혁조치를 시행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동안 국정원 개혁조치는 정보업무의 특성을 무시한 채 이뤄졌다"며 "시스템을 바꾸고 내부 의식구조도 바뀌었어야 하는데 형식적, 정치적인 구호에만 개혁이 머물렀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국정원 후배들에게 ▲변화된 시대상황 인식 및 관료주의 탈피 ▲과거 성공신화의 매몰된 의식 극복 ▲정보업무의 특성 이해 등을 국정원 후배들에게 충고했다. 그러나 현재 국정원은 이를 이루지 못했기에 '환자 수준'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또한 그는 국정원 개혁 방향과 관련해 ▲국정원의 수사권 보장 ▲국정원 업무의 국내외 통합 유지 ▲'정치사찰'이 아닌 '정책 모니터링'으로 방향 전환 ▲특별법을 통한 국정원 직원 신분 보장 ▲국정원 내부예산 자율화 등을 주장했다.
한편, 정 전 국장은 이날 토로회 참석에 대해서 "국정원 개편 문제가 정치적인 쟁점과 분리돼서 다뤄졌으면 한다는 바람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국정원 개편 문제가 정치적으로 쟁점화돼 도마에 오를 경우 국정원 해외 활동에 애로점이 많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우리나라 정보기관의 활동이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상황을 맞이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정 전 국장은 지난 1968년 공채 5기로 정보기관에 입사한 이후 31년 동안 활동을 했으며, 1999년 퇴직한 뒤 연세대학교에서 국가정보학을 가르치고 있다.
| | "국정원 해체하고 초선들이 새 기구 만들자" | | | 4당 의원들의 각양각색 국정원 수술법 | | | | 불법도청 'X파일 사건'으로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본격적으로 정치권에서 국정원 개혁 문제를 수술대에 올렸다.
17일 오후 2시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국정원, 수술로 회생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국가정보원 개혁관련 긴급토론회'에는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 배일도 한나라당 의원,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이상열 민주당 의원 등 각당 의원들과 정영철 전 국정원 국장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토론회는 4당이 모인만큼 '국정원 수술' 방법에 대한 목소리도 다양했다.
첫 번째 토론자로 나선 최재천 의원은 "국정원이 과거 소련이 국가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통신과 암호 해독 등 국가안보 모든 분야를 다루도록 했던 KGB와 비슷하게 정권보위 기구 성격을 가지게 됐다"면서 "CIA처럼 해외 정보 전문기구의 성격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 의원은 "국정원의 국내 정보 기능을 줄이고,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국가정보위원회'를 신설해 '문민통제'로 가자"며 "시대의 흐름을 읽어 산업정보, 경제정보에 보다 무게를 두고 스스로 개혁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회찬 의원 역시 "불법도청은 불법 정치사찰이라는 뿌리에서 자란 줄기의 하나일 뿐"이라며 "국정원은 해외 정보 전문조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헌법 어디에도 국정원의 정치사찰 권한을 보장하는 부분은 없다"며 "국정원은 즉각 국내 정치영역을 업무관할에서 도려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노 의원은 "해외 정보를 전문으로 하는 인력과 예산을 확충해서 업무와 효율성과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배일도 한나라당 의원은 "현재 정보 기관은 단지 문제점을 치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상황이므로 이를 해체하고 시대변화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보 기구를 재창출해야 한다"며 보다 강경한 주장을 폈다.
이어 배 의원은 "그동안 기득권을 갖고 있었던 국정원, 검찰 고위층, 재선 이상을 한 국회의원을 제외한 초선의원들이 모여 역할과 범위가 확대된 미래지향적인 기구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반면, 이상열 민주당 의원은 "범죄가 국경을 초월해 국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정보의 통합이 필요하므로 국정원이 국내외를 구분해서 정보를 전담 처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현재 조직 체계 유지를 주장했다.
이어 이 의원은 "국회의 예산통제권을 강화해 국정원 예산의 투명성을 높이고, 국정원의 수사권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이은정 기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