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풍자는 누구나 하지 않나. 우리는 남들이 다 하는 게 지겹다. 이제는 '섹스'를 말할 차례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딴지일보>의 초점은 정치 풍자에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변했다. '정치풍자'에서 '섹스'로의 의제 전환. 이것은 가히 '변신'이라고 할 만한 <딴지일보>의 선택이었고, 그 선봉에는 본격 성인 저널리즘을 표방한 '남로당(http://www.namrodang.com)'이 있었다.
2001년 '명랑 사회 창달'을 슬로건으로 창당된 남로당은 올해로 창당 4년째를 맞았다. 딴지일보의 선택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들을 풀어 보기 위해 지난 8일 남로당의 '너부리' 사무총장과 칼럼니스트 '리버럴'을 만났다. 다음은 이들과의 일문일답.
"이제 '섹스'를 말할 차례라고 생각했다"
- <딴지일보>가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풍자는 제쳐두고 섹스 관련 이슈에 집중하는 걸 일부에서는 '변절'이니 '후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너부리 : "원래 딴지의 모토가 '끝까지 파고들어서 끝장을 본다'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재미로 시작한 거고 그러다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서 이렇게 커졌을 뿐이다. 왜 예전처럼 정치 풍자에 초점을 맞추지 않느냐고 말들이 많은데 그런 것들은 이제 우리가 아니라도 누구나 하는 일이 돼 버렸다.
<조선일보>의 수구성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일 같은 건 이제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었고 <오마이뉴스>나 과거의 <우리모두> 같은 다른 개혁적인 매체들도 할 수 있는 일이 됐다. <한국논단>을 비롯한 '수구보수'에 대한 비판도 꼭 딴지가 입을 보탤 필요가 없을 만큼 지식사회의 공감을 얻지 않았나. 굳이 우리까지 그 문제를 계속 얘기해야 할 필요를 못 느끼는 점도 있다.
그러나 '성'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매체도 본격적으로 꺼내서 의제화해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이제 '섹스'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라고 생각했고, 새로운 의제로 그것을 선택했다. 딴지는 스스로를 매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권력을 비판했던 만큼 우리 스스로 '매체'라는 이름으로 권력이 되는 걸 경계했고, 그저 이 일이 재밌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영향력이 감소했다거나 그런 것들에 아쉬워하지는 않는다. 돈이 아쉽다면 아쉬울 뿐이다."
"우리는 성을 말하면서 법적, 제도적 제재를 감수해, 상업적이란 비판은 억울"
- 그러나 <딴지일보>의 예전 의제들이 상식 차원에서 모두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면 '섹스'라는 의제 설정은 많은 곳에서 공격을 받고 있다. 가령 섹스 산업에 뛰어들더니 '돈독'이 올랐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로당>의 시각이 그다지 진보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리버럴 : "우리는 기존의 '섹스'를 대하는 어느 사람들의 입장과도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혼전순결' 따위를 얘기하는 구성애 류의 보수주의자와는 당연히 다르고, 또 페미니즘 진영에서 말하는 성 담론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욕을 많이 먹는 것 같다. 알다시피 기존의 성에 대한 금기들에 남로당은 정면으로 도전한다. 그것은 스포츠신문 같은 데서처럼 '성'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것과는 다르다.
예를 들면 '스와핑(몇 쌍의 부부들이 파트너를 교환해가며 관계를 가지는 것을 일컬음)' 같은 성 관련 이슈를 다루는 스포츠신문의 태도를 보자. 이들은 우선 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 선정적인 제목이나 아슬아슬한 사진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판매 부수를 올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뻔뻔하게도 결론에 와선 짐짓 근엄한 척 문란한 세태를 꾸짖는 방향으로 나간다. 성을 대하는 태도가 이중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우리는 '확신범'이다. 당당하게 '섹스'를 말하고, 자신의 '욕망'에 대해서 말하고, 어떻게 그걸 해방 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다. '섹스'는 죄가 아니라 떳떳한 일이니 내놓고 얘기하자는 것이다. 가령 내가 스와핑을 다룬다면 이렇게 하겠다. 나는 사실 스와핑이 왜 범죄인지 모르겠다. 피해자가 없을 뿐더러 참여하는 사람 모두가 만족을 얻는다면 옹호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식으로 접근하겠다."
| | | <남로당>은 어떤 정당? | | | |
| | ▲ 한나라당 로고를 패러디한 남로당의 로고 | ⓒ남로당 | | 딴지일보는 창간때부터 성 관련 이슈에 대한 칼럼을 지속적으로 실어오는 한편, 성인용품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딴지는 그에 대한 독자들의 호응을 바탕으로 '민족 발기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2001년 12월 남로당을 창당한다. 남로당은 '안으로 명랑 체위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흥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남로당은 국내 최초의 공식적인 포르노 리뷰들을 게재하고 2002년에는 '온라인 음란영화제'를 개최하는 등 본격 성인 저널리즘으로서 파격적인 행보를 계속해 왔다.
'성' 국어사전의 편찬과 지속적인 개편을 통해 음지에 있던 '성' 관련 속어들을 양지로 끄집어내는 한편, '성'에 관한 통념을 한발짝 앞서는 칼럼들로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2005년 1월에는 제2기 남로당을 출범 시키고 본격 성인 저널리즘의 자리 확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 | | |
너부리 : "성을 다루는 남로당의 태도가 상업적이라는 이야기는 좀 억울하다. 예를 들어 당원들끼리의 만남을 주선해 주는 '접선특위' 같은 경우에 우리는 당당히 '원 나잇 스탠드(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은 하룻밤의 관계를 일컫는 은어)'를 표방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몇 사람이나 당당히 원 나잇 스탠드를 지지할 수 있겠는가.
원 나잇 스탠드를 당당히 표방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선 많은 사람들의 비판과 법적, 윤리적 제제를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어떻게 이 걸로 돈을 많이 벌 수 있겠는가. 우리는 옳다고 생각하고, 재밌다고 여겨지는 주제를 끄집어낼 뿐이다. 물론 돈이 따라오면 좋은 일이겠지만."
리버럴 : "페미니즘 진영에서 딴지와 남로당을 비판하는 걸로 안다. 하지만 상식 차원에서 우리 역시 '페미니즘'에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있다. 페미니즘은 한국 사회에 반드시 필요하고, 더 많은 발언권을 얻어야만 한다.
그러나 남로당의 성을 대하는 태도가 페미니스트들보다 진보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매매춘 여성들을 태하는 몇몇 페미니스트들을 보면 매매춘 여성들의 입장에서 접근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지식인 특유의 오만함으로 '피해자'라는 틀을 상정해 놓고, 매매춘 여성들을 끼워 맞추는 식의 권위주의적 태도가 발견되는 것 같다."
"우리는 페미니즘에 많은 부분 공감하고 있다"
- 딴지의 대부분의 독자들이 남성이라는 인식이 있고, 특유의 문체 때문에 여성들이 접근하기 힘들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던 걸로 안다. 남로당의 경우도 '섹스'를 말하면서 과연 여성을 동등한 참여자로 인정하고 있는가라는 문제 제기가 가능할 것 같은데.
너부리 : "'딴지체'라고 부르는 우리 특유의 문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딴지체'는 꼭 지켜야 할 규범이나 정형화된 틀이 아니다. 딴지체는 '쉽고 재밌게'라는 가치 이외에 어떤 틀이나 규범도 없는 문체다. 물론 남성성기를 빗댄 욕설이나 속어들을 딴지체 안에서 많이 사용하는 건 사실이다. 그런 표현 때문에 딴지를 잘 모르는 여성독자들이 다가서는 데 문제를 일으키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속어들을 사용할 때도 딴지가 정말 남성 성기가 대단하고 존중받을 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비난'하고 '조롱'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생각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남성들만 딴지를 보고 남로당에 가입한다고 생각하는 건 오해고 편견임을 밝혀야겠다. 남로당 당원의 30퍼센트 이상은 여성들이고 이 비율은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다."
리버럴 : "여성을 동등한 성적 주체로 인정한다는 이미 현대인의 상식이 아닌가? 물론 우리 사회에서 그것을 '상식'으로 만들기까지 페미니스트들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말이다. 성적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면 그런 페미니즘의 보편화된 주장들은 상식으로 바탕에 깔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페미니즘과 같이 가는 명랑사회'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드라마의 이데올로기에 비하면 포르노의 해악은 '세발의 피'"
- 남로당의 '페미니즘과 화해해야 한다'는 글에 대해 정작 페미니스트들의 반응은 냉소적인 것 같다. 직접 페미니스트들에게 글을 의뢰할 생각은 없었나?
딴지의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는 그저 '공감'한다는 데 그치고 직접적인 '행동'이 없다는 비판이 가능할 것 같다. 양쪽 다 '욕망의 해방'을 이야기하면서도 아직도 화해할 수 없는 '균열'이 있는 것 같은데?
너부리 : "사실 '화해해야 한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페미니스트들과 싸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월장 사태'에서도 예비역이 아니라 '월장'의 편을 들었던 게 딴지였고, 그 이후에도 되도록 우리는 페미니스트들을 도우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남로당은 여성의 섹슈얼리티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관련된 글을 실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직접 페미니스트들에게 글을 의뢰하기는 어려웠다. 딴지에 실리는 글은 '쉽고 재밌게' 쓰여져야 하는데, 그걸 보장하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리버럴 : "페미니스트들과 입장이 다른 지점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포르노'에 대한 태도에서 우리는 일부 페미니스트들과 입장이 극명하게 갈린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포르노를 여성 섹슈얼리티를 왜곡하고 억압하는 근거지로 이해하고 있는데, 난 포르노의 해악이 지나치게 과장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포르노에 담겨 있는 노골적인 영상은 남자들의 원초적인 성적 판타지를 그리는 것일 뿐, 여성 비하와 성 왜곡의 의도를 드러낼 목적은 아니라고 본다. 과학적 조사 결과 남자들은 시각적인 면에서 성적 흥분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남자들이 포르노물을 많이 찾게 되는 것은 그런 신체적 특징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반대로 여자들의 성적 성향이 그런 시각적인 감각에 많이 의존해 있다면 포르노 시장은 여성 중심으로 재편되었을 것이다. 나는 오히려 TV의 드라마가 포르노보다 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부장제의 미덕을 은근히 내면화 시키는 내용들이 얼마나 많은가? 드라마는 놔두고 그에 비하면 '세발의 피'도 안되는 영향력을 가진 포르노만 걸고 넘어지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