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경계란 것이 있을까. 특히, 음악의 선율을 가로막는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지난 18일 낮 2시, '사랑의 피리 보내기-통일열차 음악회' 참가를 위해 도라산행 기차를 타고 든 생각이었다. 임진각행 통근기차를 임대한 열차는 설렘과 기대를 싣고 때마침 올라오는 태풍 때문인지 잔뜩 찌푸린 북녘의 하늘 밑으로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정식 음악공연 축제가 아닌 만큼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의 모습에선 탱탱한 활기가 느껴졌다. 이번 행사를 마련한 <오마이뉴스>, (사)남북경제협력진흥원, 남북음악교류재단은 남북 음악인 공동의 노력으로 음악교류를 통한 문화적 동질감을 회복하고 나아가 통일의 기반을 만들어가기 위한 행사라고 설명한다. 지금 북한 어린이들은 음악 교육용 자재나 도구가 태부족하여 재단 측은 이참에 집에서 쓰던 악기를 수집하기도 하였다.
어쨌거나 한꺼번에 해방과 분단 60주년이라는 조금은 모순되고 안타까운 기념일을 맞는 우리 민족으로서는 며칠 전 거창한 8·15행사를 치른 바 있지만, 이렇게 민간 차원으로 작지만 단단한 걸음을 내딛는 것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어 보였다.
도라산 역사에 들어서자 곧바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아치형의 역사 위로 어느새 뚝뚝 떨어지는 빗줄기와 감미로운 콘트라베이스의 음율이 그야말로 비와 앙상블을 이루었다. KBS '혼' 수석 이석준 등 9명의 국내 정상급 솔리스트들로 구성된 게누인 앙상블, 콘트라베이스 4중주팀인 'Ensemble Dominant'의 연주와 늘푸른 소년소녀합창단이 함께 했다. 특히, 이번 음악회에서는 북한산 스톡하우젠 피아노로 전곡이 협주되었으며, 평소 접하기 힘든 북한 곡을 감상할 수 있어 더욱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음악회가 끝나자 셔틀버스를 타고 임진각으로 향했다. 오다 말다 하던 비가 굵어진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와 망향대에서 비에 젖은 북녘하늘을 보며 사뭇 호기심 어린 질문을 퍼붓는다. 이번 음악회는 가족 나들이로도 부족함이 없는 코스여서 아이들에게 생생한 민족분단의 아픔을 느끼게 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 될 듯하다. 또한, 여름방학의 막바지를 맞아 클래식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유익한 프로그램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남측의 최북단역이자 이미 남북 화해의 기념비적인 장소가 된 도라산 역은 머지않아 유라시아를 횡단할 열차의 출발역이 된다는 점에서도 조금 더 각별하게 다가왔다. 조선 초기에는 도라산 마루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국난시에는 송도와 한양으로 봉화불을 올렸다고 하니, 이것이 무슨 역사의 안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조국의 분단은 그 민족의 무능이다."
이는 통일로 인해 여러 가지 어려움에 빠져 있는 동독과 서독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갖고 있는 공통된 마음이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민족은 온전한 우리의 능력을 어느 정도나 발휘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 민족의 현주소는 어디쯤 있는 것일까.
통일은 지리적 통합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라산 역에서 들리는 낯익은 음악을 듣고 있자니 윤이상이라는 다소 낯선 음악가가 떠오른다. 우리네 근대사의 암울과 병리에 연루되어 67년 언 손을 비비며 형무소에서 작곡했다는 '꿈'과 '율' 등의 오페라나 81년의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가 지금 이 자리에서 남과 북, 협연으로 연주되는 꿈같은 장면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이번 음악회가 통일을 위한 자그마한 디딤돌이라면, 이제 민족음악 혹은 통일음악이라는 것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함께 있어야 할 것이다. 기자로서야 감히 그런 음악들에 대한 정의를 내릴 입장에 있지 못하지만, 그것은 남·북한 사람들이 함께 교감하는 음악적 공감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행사를 주도한 임미정 울산대 교수는 "이번 첫 번째 음악회는 도라산역에서 한정돼 열리지만 경의선이 개통돼 북한에 갈 수 있게 되면 부산, 대전 등지의 주요 역사에서부터 평양, 원산까지 어디에서든 음악회를 열 계획"임을 밝혔다. 이밖에도 북한 어린이에게 악보 및 악기 보내기, 남북 음악인 및 해외동포 음악인들의 교류, 공동 연주시디(CD) 제작 등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칠 계획이라고 한다.
얼마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우리 '아리랑'이 꼽혔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 사실이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느낌이어서 조금은 조바심이 인다. 하나의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과 자본을 기울이는 시대에 저 '아리랑'으로 대변되는 우리 음악의 '브랜드화'도 이제 서서히 새로운 고속레일을 달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시작은 아름다운 일이다. 새롭게 단장된 역사 옆에 핀 꽃들이나, 사랑의 피리 보내기 통일열차 음악회를 보러 온 아이의 해맑은 웃음 속에서 그러한 희망이 단초를 보았다면 지나친 기대인 것인지…. 음악회가 끝난 첫 날, 도라산 역은 조용히 비에 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