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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몸이 하나가 된 날. 멀리서 마음으로나마 축하한다는 말 전하고 싶네요.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그래. 잊고 있었던 건 아니었구나. 일하느라 정신없을 텐데 이렇게 축하메시지까지 보내주고. 정말 훌륭한 남편임에 틀림이 없군.’
행복에 겨워 메시지를 보고 또 보고. 그런데 마지막 문장이 좀 이상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라니. 결혼기념일이란 게 나 혼자만의 기념일이 아니라 남편과 내가 함께 하는 기념일인데 어째서 나더러 행복한 시간을 보내라고 한 것일까.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급하게 발신자 번호를 눌렀다. 순간 튀어 나오는 한 마디.
‘어? 신랑이 아니었네.’
문자메시지는 대구에 사는 언니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 언니와는 방송에 사연이 소개가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서로 언니, 동생이라는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었고 1년이라는 세월 동안 가끔 안부를 주고받으며 정답게 지내오고 있는 터였다.
언니나 나나 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어도 피를 나눈 자매 못지 않게 지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성치 않은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것에 대한 동병상련의 정이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기 때문인 것 같다.
언니는 겪으면 겪을수록 참 배려가 깊은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가끔 속상한 일이 있어 하소연이라도 할 요량으로 내가 먼저 전화라도 할라치면 전화세 많이 나온다고 끊으라며 언니가 다시 내게 전화를 한다. 그리곤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 어떨 땐 구구절절한 하소연이 지겹기도 할 텐데, 단 한 번의 귀찮은 내색도 없이 그저 ‘그래, 그래’ 하면서 끝까지 들어만 준다.
비가 오면 비 오는데 어떻게 지내냐고, 더우면 더운데 어떻게 지내냐고 언니는 늘 메시지를 보낸다. 그러고 보면 배려도 깊은 사람이지만 참 살뜰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도 같다. 몇 줄의 문자메시지에도 안부와 사랑을 가득 실어 보낼 줄 아는 살뜰한 성격을 가진 참 따뜻한 사람이다.
언젠가 한 번쯤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했을 내 결혼기념일. 바로 오늘이 그 결혼기념일인 것이다. 그런데 언니는 그것을 흘려듣지 않고 꼼꼼하게 기억해 두었다가 이른 아침에 축하메시지를 보내주었던 것이다. 참 세심하고 사려 깊은 너그러움이 아닐 수 없다.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눈물이 났다. 신랑이 아니었다는 것에 대한 실망의 눈물이 아니라 고마움에 북받치는 감동의 눈물이었다. 스치는 인연으로 만나 짧은 시간 정을 나누었을 뿐인데 내 기념일을 기억해두었다는 것, 더불어 잊지 않고 축하를 해주었다는 것. 눈물 날 만큼 고마운 게 사실이었다.
결혼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지방으로 일을 간 남편. 남편은 아마 결혼기념일을 잊고 있는 것 같다. 아직 전화 한 통 없는 걸 보니. 내심 서운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남편을 향한 내 서운한 마음이 왠지 부끄러운 건, 이른 아침에 도착한 언니의 축하메시지가 너그러움과 배려에 인색한 나를 충분히 부끄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혼기념일! 언니 말처럼 둘이 하나 된 아주 특별하고도 의미 있는 오늘 아침. 난 너그러움과 배려를 배웠다. 서둘러 남편에게 내가 먼저 축하메시지를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