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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지산
민주지산 ⓒ 정성필
우선 물이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지도상에는 정상에서 약간 내려가면 물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었는데, 물이 일 리터도 채 안 남아 있어 진행 방향에서 물을 구하고 싶었다. 시간을 아끼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다음 우두령까지 가야하는 코스는 확인도 안하고 물을 찾아 나섰다. 삼도봉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석기봉으로 가야 물도 있고 대피소도 있단다. 지도에도 석기봉이 표시 되어있었다. 또 밤에는 비가 올 듯하다. 서둘러 석기봉으로 갔다. 석기봉 가는 길에 백두대간 종주기가 달려있어 한치 의심도 없이 석기봉으로 갔다.

가는 길비가 떨어진다. 비를 피할 곳을 찾아야 했는데, 다행하게 석기봉 가는 길에 팔각정이 있어, 팔각정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 비를 피할 수 있었다. 팔각정 밖에는 비가 좌악 좌악 쏟아진다. 비를 맞고 걷는 일보다, 비 맞고 자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은 이미 월경산에서 경험했다.

비가 쏟아지는 팔각정에서 얼마 없는 물에 밥을 한다. 씻는 것은 빗물을 코펠에 받아 씻는다. 아침엔 비가 그쳤으면 한다. 낮에 만난 사람들에게 얻은 빵과 과자를 먹으며 오랜만에 일지도 쓴다.

아침에 일어나니 햇살이 온통 나뭇잎의 물방울과 어우러져 투명 방울방울 떨어진다. 석기봉으로 간다. 물이 있는지 살핀다. 없다. 종주기를 따라 가다보니 석기봉 험한 암릉을 넘는다. 배낭이 없으면 가벼이 가는 길인데 배낭이 무거우니 뒤뚱거린다. 까딱 균형을 잃는다면, 매우 위험한 순간을 맞이할 듯하다.

물한계곡 낙엽송
물한계곡 낙엽송 ⓒ 정성필
석기봉에서 내려보는 풍경이 비에 얼굴 말갛게 씻은 숲이 높아진 하늘만큼 푸르게 보인다. 아름답다. 종주기는 계속 민주지산 쪽으로 나있다. 지도를 확인하고 가야하는데 지도 보는게 귀찮게 느껴져 그냥 종주기만 따라 가기로 한다.

그리고 얼핏 민주지간이 백두대간일거야라는 생각이 든다. 아주 유명한 산이라는 게 아마 백두대간상의 산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나 보다. 결국 잘못된 백두대간 종주기기를 따라 민주지산 까지 간 후에라야 길을 잘못 들었음을 확인한다. 다시 돌아갈까 하다, 물이 없다. 물 때문에 하산하기로 결정한다. 지도를 보니 물한계곡이 있다. 물한계곡으로 해서 다시 올라서야겠다 마음먹는다.

민주지산을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다. 하지만 하산길엔 물이 많았다. 물한 계곡으로 해서 해인리 마을로 간다. 가는 길 아름드리나무가 아름답다. 계곡의 물은 차갑고 맑고 투명했다. 옷을 훌러덩 벗고 물에 들어간다.

해인리 마을에서 아기를 업은 아주머니를 만난다. 집으로 가는 길이란다. 자신은 외할머니고 아이의 이름은 은혜란다. 앞서 가는 젊은 여자가 애 엄마이자 자신의 딸이란다. 손녀가 참 예뻐 업고 가는 중이란다. 아이의 엄마는 김천에 사는데 놀러 왔단다. 아이의 엄마를 보니 눈이 사슴 같다. 앳되 보이는 게 도저히 아이 엄마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해인동에서
해인동에서 ⓒ 정성필
밥이나 먹고 가란다. 집을 잘 지었다. 목조로, 언덕진 곳에 꽃밭도 가꾸었다. 주인아저씨의 세련미가 느껴진다. 김치가 맛있어 밥을 두 공기나 비운다. 감사하다 하니 괜찮단다.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자고 가란다. 산 밑이었고, 산을 오르려면 두 어 시간 걸릴 듯해, 염치 불구하고 잔다. 나무향이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집이 아름답다.

아침밥도 얻어먹는다. 식후에 가려 하니 검은 봉투를 주신다. 김치란다. 되었다 해도 주신다. 출발하기 전에 무언가 나도 주고 싶어, 아이를 위해 기도해준다.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아이에게 축복을 빌어준다.

다시 삼도봉을 오르는 길. 해인리의 맑은 물을 따라 걷다 보니 해인리 산장이 나온다. 물이 참 맑아 백두대간이 끝나면 이곳에서 정착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 지루하게 걸어간다. 샘터를 지나니 우측으로 정상이라 한다. 다시 삼도봉이다. 알바로 하루를 까먹은 셈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물한계곡을 보았고, 아름다운 집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 하루를 함께 보냈다.

우두령을 향해 간다. 능선이 완만하고 시야가 넓다. 화주봉을 지나 우두령을 지난다. 황악산을 오르다 삼성암에서 하룻밤 잔다.

덧붙이는 글 | 2004년 5월 16일 부터 7월 4일까지 혼자 걸은 백두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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