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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 사는 나로서는 클래식 음악회에 참가한다는 것은 정말로 드문 일이다. 대도시라면 문화회관서 시립교향악단이 정기공연을 하므로 큰 돈 안들이고도 음악회에 갈 수 있지만 촌사람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없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산사 음악회'라는 플래카드를 보고 반신반의했다.
'가수들이 오는 건가? 아닌 것 같은데, 음악회라는 이름에서 클래식한 분위기가 팍 나잖아. 클래식 음악회가 분명해. 해질 무렵 산사에서 듣는 음악, 꽤 괜찮은 경험이 될 것 같네. 가서 들어야지.'
이렇게 해서 지난 18일 저녁 7시 30분 낙산사서 개최된 '양양 낙산사 산사 음악회'에 참석하게 됐다. 줄리아드 음악원 강효 교수가 음악 감독을 맡고, 대관령음악제의 상임악단인 세종솔로이스츠가 비발디의 <사계>를 시작으로 해서 막스 브르흐의 <콜 니드라이>와 베버의 <클라리넷 오중주>를 연주했다.
솔직하게 고백해서 난 클래식에 무지한 사람이다.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회에 참석한 게 아니라 색다른 경험 차원에서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연주곡 제목도, 작곡가가 누군지도, 어떤 경로로 이 곡이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고, 그 음악이 무엇을 표현하는지도 몰랐다. 정말 모르는 것투성이인 나는 외계인의 말소리를 듣는 것처럼 그 자리에서 철저히 소외감을 느꼈다.
음악회 내내 눈을 감고서 음악을 들었다. 더 집중해서 듣기 위한 노력이었다. 지겨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고. 생소한 음악소리는 내게 졸음을 안겨와 잠을 쫓느라 꽤 힘들었다. 앞에서는 땀을 비오듯 쏟아내며 열심히 연주하고 있는데 고개를 끄덕거리며 조는 모습은 차마 보일 수가 없어서 나 자신과 무한히 싸웠다. 솔직히 한 곡 마치고 객석으로 불이 들어올 때마다 이제 끝난 건가, 하고 은근히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음악회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졸면서도 자리를 지킨 보람이 있었다. 음악회 지정곡을 다 연주하고 마지막에 가서 서비스 차원에서 한 곡 더 연주했는데 그 곡을 들으면서 비로소 음악에 몰입을 했다. 그 곡은 고등학교 때 즐겨 듣던 '대니 보이'였다. 내가 아는 곡이라서 그런가, 바이올린 소리의 아름다움을 정말 제대로 느낄 수가 있었다. 음이 살아서 혈관 속에서 흘러다니는 기분이었다.
집에 오는 내내 그 곡을 흥얼거리면서 음악회 다녀온 티를 팍팍 냈다. 이 마지막 곡으로 인해서 음악회를 제대로 다녀온 것 같았다. 이 곡을 듣지 못했다면 졸면서 참가한 음악회는 씁쓸한 기억으로 남게 되고, 클래식 음악은 나와는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할 뻔 했을 것이다. '대니보이'로 인해 화음의 감동을 느끼게 된 만큼 기회가 또 온다면 난 '대니보이'를 듣던 순감의 감동을 재현하려는 욕심에 만사를 재치고 음악회를 찾게 될 것 같다.
내가 무지해서 그렇지 연주된 곡들은 모두 명곡으로 오랜 시간 살아남은 곡들이다. 그리고 연주자들 또한 수준급이었다. 세종솔로이스츠는 미국에서 클래식 음악계로부터 '최고의 현악실내악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악단이고, 클라리넷을 연주한 와킨발데페냐즈(토론토 오케스트라 수석) 또한 세계정상의 클라리넷 연주가이다. 공연은 완벽했지만 청중이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청중은 연주가들이 빠져있는 세계에 공감을 할 수가 없었다. 한 할머니가 연주만 계속 하자 참다못해 "가수는 언제 나와?" 하니까 옆에 있던 사람이 가수는 안 나오고 이렇게 계속 악기만 연주한다고 알려주자 "에이, 그냥 가야 되겠네"하면서 자리를 떴다. 뒤에 남은 사람이 무식한 할머니라고 욕했지만 거기 참석한 대부분 사람은 앞에서 연주자가 연주하는 악기가, 바이올린인지, 콘트라베이슨지 클라리넷인지 잘 몰랐다.
그래서 그런가, 박수를 쳐야할 시점이 아닌데, 음악이 연주되는 중간에 박수를 치는 사람들도 있고, 알아들을 수 없는 음악에 몰입하지 못한 사람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가기도 했다. 심지어 수박 먹으며 잡담하는 사람까지 보였다.
물론 그곳에 참석한 대부분 사람이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음악회가 엉망이 돼버렸을 텐데 음악회는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은 채 성황리에 끝났다. 공연 예절이 부족했던 사람은 뒷자리 내 주변에 앉은 몇몇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앞자리의 조용한 관객들에 대해서도 난 의문이 든다. 정말 그들은 음악에 심취했을까? 완벽한 화음을 들으며 만족감을 얻었을까, 하는 의문.
우리나라에서 클래식, 서양 고전음악 애호가는 많지 않다고 본다. 살아오면서 봐도 악기를 배우거나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이나 클래식을 즐겼다. 이런 사람들 이외에 고전음악을 즐긴다고 하면 특별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았다. "당신의 낮은 수준을 예로 들어서 전체가 그런 것처럼 합리화 시키지 말라"고 시비를 걸면 할 말이 없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지만 클래식 애호가는 정말 찾기 어려웠다.
클래식이 우리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만큼 수준이 높아서라기보다는 '습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음악소리가 우리의 귀에 낯설기 때문이고, 우리가 고전음악이 흐르는 환경에서 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클래식은 대중 곁으로 다가올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음악회가 자주 열려야 한다. 유명한 음악가의 연주가 아니라 작은 음악회라도 자주 열려 대중의 귀를 열어줘야 한다고 본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무슨 소리든 자꾸 듣다보면 그 소리에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즐기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지 않을까.
이번 연주회는 강원도가 '예술의 고장, 강원'이라는 목표로 기획한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일환으로 열렸다. 부산이 영화의 도시로 거듭난 것처럼 강원도는 아름다운 풍광과 음악의 조화를 지향하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매우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음악회가 자주 열려 음악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으면 한다. 음악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노력도 고전음악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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