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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책표지 ⓒ 예담
아주 간간히 <다빈치 코드> 같은 지적 모험을 자극하는 소설이 등장하곤 하지만 요즘 들어 나오는 소설들의 깊이는 할리우드 영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은 게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중설계> 또한 이런 비난을 벗어나지 못할 내용인 것 같지만, 이 책에서는 크게 세 가지의 색다른 점을 엿보게 되는 재미가 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몽생미셸’이다. 책 앞부분과 뒤표지에 나와 있는 몽생미셸의 그림과 갖가지 사진만으로도 과연 이러한 곳을 배경으로 이 소설이 어떤 얘기를 펼칠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성 미카엘의 산이라는 이름의 몽생미셸의 건축에 얽힌 중세의 전설을 따라 소설은 현재와 중세를 넘나드는 얘기를 풀어낸다. 영국과 프랑스간의 전쟁사나, 브르고뉴와 노르망디 지방에 얽힌 과거사, 베네딕트 수도회와 같은 중세의 수도승들에 대해 무지한 점이 책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부분들도 있겠지만(아는 사람들에게는 더 재미를 주는 부분일 것이다) 이런 배경 지식이 필수는 아니어도 될 만큼 몽생미셸에 대해 자연스럽게 소개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몽생미셸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꼭 다시 한번 책을 들추어보고 간다거나(들고 가기에는 두 권의 무게가 꽤 묵직하다) 아니면 지하 예배당과 건물 구석구석을 호기심과 스릴을 느끼며 숨겨져 있는 새로운 어떤 것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둘러보게 될 정도로 이 책은 본의 아니게(?) 몽생미셸에 대한 관광안내서 역할을 한다.

몽생미셸위치
몽생미셸위치 ⓒ 아래웹사이트
두 번째는 바로 중세와 현재를 넘나드는 이야기 구조와 거기에 들어있는 비밀 혹은 음모이다. 이중설계라는 제목은 몽생미셸의 이중설계를 바탕으로 출판사에서 지어낸 것이겠지만(표지에 있는 프랑스 원제는 천사의 약속이다), 책의 구성 또한 현재와 중세라는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면서, 현재의 주인공인 조안나와, 중세의 주인공인 로망 수도사와의 얘기가 진행되고 마침내 한 가지 이야기를 향해 나아간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처럼 수도원이 배경이며 동시에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추>에서처럼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속되는 ‘음모’에 대해 얘기하면서 에코의 소설에서처럼 중세나 현재 한 시점에 머무르지 않고 1000년을 오가며 생동감 있는 진행을 보여준다.

비록 그 ‘음모’라는 것이 아주 치밀하거나 복잡한 것이 아니어서, 책을 읽는 어느 순간 당연한 결과가 기대되는 내용이기도 하고, 또한 독자를 일부러 머리 아프게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지치게 만들지도 않기 때문에 아주 편하게 그리고 약간은 조바심을 가지고 들춰보고 싶은 정도이지만, 하나의 건축물만을 놓고 이러한 역사적인 내용과 결합시켜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독자를 가벼운 흥분으로 이끌어가기엔 충분하다. 움베르트 에코의 <푸코의 추>같은 경우에 그 음모에 대한 주인공들의 추적을 따라가기가 얼마나 힘들었던가.

“난 내가 보아야만 했던 것을 보지 않았어요. 날 둘러싼 존재들을 경계하지 않은 채 아무 생각 없이 앞으로 나가기만 했죠. 당신이 그랬듯이 나도 너무 늦게야 깨닫는 바람에 이 출구 없는 감옥에 갇히고 말았죠! “
몽생미셸야경
몽생미셸야경 ⓒ 예담


세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비록 건축물과 역사와 음모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지만 이 책은 각기 다른 형태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세의 로망 수도사와 모이라의 사랑, 주인공 조안나의 사랑, 그리고 종교나 권위에 대한 집착으로 잘못을 빚어내는 중세의 알모디우스와 현대의 브라르에서 우리는 같은 모습을 본다.

켈트족의 전설과 중세 기독교의 마녀 사냥을 재료로 동원해서, 이 책은 종교나 자기 일에 대한 집착으로 주위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어 가는 사람들을 보며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당당하게 자신의 신념과 사랑을 지켰기에 처참하게 죽어갔던 모이라나 자기가 사랑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죽였지만 죽이고 나서야 진정한 사랑을 깨달았던 알모디우스, 그리고 감당할 수 없어 도망친 후에야 기도와 회한 속에 살아간 로망 수도사의 모습들은 글을 읽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든다.

몽생미셸전경
몽생미셸전경 ⓒ 아래웹사이트
전반적으로 책은 아주 서서히 템포를 빠르게 만들어간다. 후반에 가서 감추어 놓았던 하지만 대충은 예상은 하고 있던 비밀들을 풀어내며, 여기에 중세부터 죽 이어진 연쇄 살인 사건과 반전 등을 통해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 막상 책을 덮는 순간에는 약간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초반의 더딘 템포에 한 몫 단단히 하는 것은 눈에 꽤 거슬리는 번역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초반에 문장 전체를 덮어대는 지시 대명사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 때문에 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만(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갑작스레 나오는 ‘사부’나 ‘오의’ 같은 단어들은 갑작스레 무협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한번 사부면 영원한 사부든지, 아니면 스승이든지 통일을 했어도 무방했지 않을까? 사부와 스승을 오가는 느베르 수도사의 탄식이 들린다. 하지만 사랑에 가득 찬 모이라가 로망 수도사에게 ‘몸이 편찮으시군요. 피골이 상접했어요’ 할 때보다는 약과다) 하지만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번역이 더 매끄러워 진 것인지, 번역체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지 모르게, 속도가 붙는다.

예상외로 꽤 많은 분량의 내용이긴 하지만, 진지하고 머리 아플 정도의 환희에 가득 찬 지적 모험을 기대하는 것만 아니라면, 훗날 몽생미셸로의 여행을 꿈꾸며 한여름 몇 시간 정도의 가벼운 지적 여행을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몽생미셸에 서서 이곳에서 있었던 역사적인 이야기나 아니면 소설 같은 사랑 이야기를 옆 사람이나 내 아이들에게 해주며 한층 더 여행의 재미를 돋울 수 있는 ‘꺼리’를 하나 얻기에 딱 좋은 책이다.

덧붙이는 글 | [도서정보]
도서 제목 : 이중설계
저자 : 프레드릭 르누아르, 비올레트 카브소/ 이재형 옮김
출판사 :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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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지도와 사진을 얻은 곳입니다.
http://xenophongroup.com/montjoie/st-mont.htm
http://www.pbase.com/anjens/image/2399965


이중설계 1 - 몽생미셸의 지하

프레데릭 르누아르.비올레트 카브소 지음, 이재형 옮김, 예담(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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