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일본에서 나온 이나미 리츠코의 <인물 삼국지>가 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 수상의 믿을 만한 번역가 김석희씨 번역으로 최근에 나왔다. 한국어판 발행일은 2005년 8월 20일이다. 인물 따라 골라 읽는 재미도 재미지만, 문장도 쑥쑥 잘 나간다.
교토대학에서 중국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나미 리츠코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교수는 서진(西晉)의 진수(233~297)가 편찬한 <삼국지>와 남송의 배송지(372~451)가 주를 단 <삼국지>를 자료로 삼았고, 더불어 명나라 나관중(1330~1300)의 대하소설 <삼국지연의>를 참고하여 <인물 삼국지>를 썼다고 한다.
이나미 리츠코는 역사책 <삼국지>와 역사소설 <삼국지연의>의 공통점과 차별점을 ‘들어가는 글’에다 이렇게 정리해 놓았다.
역사책도 소설도 후한(後漢) 말기(2세기 말)의 난세에 영웅호걸들이 구름처럼 무리를 지어 일어나 격렬한 주도권 쟁탈전을 벌인 뒤, 결국 조조의 위(魏), 손권의 오(吳), 유비의 촉(蜀)이라는 세 나라의 정립으로 천하의 형세가 굳어져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른 점은 역사책 <삼국지>가 시종일관 공정하고 신중하게 역사적 사실을 기술한 반면, 소설 <삼국지연의>는 촉나라를 정통으로 보고 유비를 선한 정의파, 조조를 미움받는 악역으로 꾸며냈다는 것이다.
-<인물 삼국지> 8~9쪽에서
동탁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아주 통렬하게 표현하여 쓴, 재미가 여간 아닌 부분을 살펴보면 이렇다.
생각해보면 동탁만큼 흉포하고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인물은 중국 역사에서도 보기 드물다. (중략) 천도로 말미암은 혼잡을 틈타 동탁은 몸소 병사들을 이끌고 낙양의 궁전과 시가지를 돌아다니며 값비싼 물건을 모조리 약탈한 뒤 불을 질러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장안으로 도읍을 옮긴 뒤 동탁은 장안 교외에 지은 요새에 수탈한 재물을 잔뜩 쌓아두고 30년 분이나 되는 곡물을 저장해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강제로 이주당한 수십만 명의 민중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서로 잡아먹었고, 2년 사이에 거의 다 죽어버리는 참상이 빚어졌다. 이 악귀 같은 동탁은 초평 3년(192년)에 양자로 삼은 여포의 변심으로 겨우 그 숨통이 끊겼다. 동탁은 엄청난 뚱보였는데, 시장에 전시되었던 시체를 감시하던 관리가 커다란 심지를 만들어 동탁의 배꼽 속에 놓고 불을 붙였더니 며칠 밤을 계속 탔다고 한다. 정말로 추악한 비곗덩어리였다.
-<인물 삼국지> 12쪽에서
이나미 리츠코는 조조에 대해서 ‘그는 초일류 군사가이자 정치가였고, 게다가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다. 그릇의 크기로는 유비나 손권과 비교가 안 되는 걸물’이라고 썼다. 한편 “내가 남을 배신할망정 남이 나를 배신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조의 말을 빌려, 그야말로 먹느냐 먹히느냐의 난세를 살아가는 간웅의 논리를 소개했다.
유비 이야기인데, 나관중이 <삼국지연의>를 쓰기 이전에도 유비는 정의파로 구전되어 내려온 모양이다. 11세기 말, 송(宋)의 소동파(1036~1101)가 쓴 수필에 이런 내용이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따분해서 장난을 치기 시작하면 부모들이 귀찮아서 설화 구연을 들으라고 용돈을 주었다고 하는데, 재담꾼들이 삼국시대 설화를 들려주다가 유비가 싸움에 진 대목에 이르면 울상을 짓거나 심지어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도 있고, 조조가 졌다는 대목에 이르면 너무 기뻐서 춤을 추는 아이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이나미 리츠코는 ‘역경에 빠진 유비를 지탱해 준 것은 의형제인 관우와 장비의 헌신이었다’는 글로써 ‘관우와 장비 없는 유비는 형편없었을 것’이라는 논리를 펼쳐놓았다. 그런데 어디 관우와 장비뿐인가.
관우와 장비가 질투할 만큼 유비가 중(重)히 여긴 제갈량에 대해서는 ‘화북의 조조, 강동의 손권이 손을 대지 않은 중국 서남부의 형주와 익주에 눈을 돌려, 이곳을 유비의 근거지로 삼아 삼국을 분립시켜려 한 것은 과연 제갈량의 탁견’이라고 극찬했다. 대국(大局)을 내다보고 전략을 세우는 브레인이 없던 유비의 치명적 약점을 해소시켜 준 위인이 바로 제갈량이었다는 것이다.
인물별로 모두 52꼭지로 나누어져 있는데, 인물마다 그려낸 내용이 5~6쪽이니 틈나는 대로 하루에 두 인물씩만 읽어도 한 달이면 다 읽을 책이다. 그렇게 다 읽고 나면 거대한 삼국지의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대하소설의 웅대함이야 맛보지 못하겠지만, 바쁜 세월에 선택할 수 있는 경제적 책읽기로 독자들에게 <인물 삼국지>를 권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인물 삼국지> 이나미 리츠코 쓰고 김석희 옮김/2005년 8월 20일 작가정신 펴냄/223×152mm 256쪽/책값 1만원
●김선영 기자는 대하소설 <애니깽>과 <소설 역도산>, 평전 <배호 평전>, 생명에세이집 <사람과 개가 있는 풍경> 등을 쓴 중견소설가이자 문화평론가이며, <오마이뉴스> '책동네' 섹션에 '시인과의 사색', '내가 만난 소설가'를 이어쓰기하거나 서평을 쓰고 있다. "독서는 국력!"이라고 외치면서 참신한 독서운동을 펼칠 방법을 다각도로 궁리하고 있는 한편, 현대사를 다룬 6부작 대하소설 <군화(軍靴)>를 2005년 12월 출간 목표로 집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