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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인물과 사상사에서 출간한 <이건희시대>
지난 22일 인물과 사상사에서 출간한 <이건희시대> ⓒ 인물과사상사
"이건희는 '삼성이 만들면 표준이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 바로 그게 문제다. 그건 하이테크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삶의 양식에도 적용되는 법칙이 되었다. '과도한 성공의 법칙'에 따라 갖게된 새로운 위상의 무게 때문에 이제 이건희는 신뢰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 역설해온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시험대 위에도 서게 된 것이다."

비판적 글쓰기로 잘 알려진 강준만(전북대) 교수의 말이다. 강 교수의 '칼'이 이번엔 '이건희 삼성 회장'을 향했다. 지난 22일에 낸 <이건희 시대>(인물과 사상사)라는 책을 통해서다.

그가 이 책을 쓴 까닭은 단순하다. '우리는 정말 이건희를 알고 있는가'다.

강 교수는 '이건희'라는 인물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일방적 비판 또는 일방적 지지가 여전한 풍토를 지적하면서, 이건희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과 해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지금 '이건희 시대'를 살고 있다"고 진단한다. 강 교수가 '이건희 시대'라고 말한 데에는 경제를 우위에 두는 시대 상황, 그 핵심에 위치한 '삼성공화국'론, 그러한 삼성을 지배하는 이건희 체제론이 똬리를 틀고 있다.

강 교수의 '이건희 품성론'

강 교수는 이건희 체제론의 분석 틀을 '인간 이건희' 자체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는 "이건희는 어려서부터 특수한 환경에서 특수한 교육을 받고 자라난데다, 그렇게 자란 극소수의 사람들 중에서도 워낙 특수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우리의 기존 지식으로는 파악이 잘 안되는 인물"이라며 "그렇다고 해서 이건희에 대한 '팩트'가 모자라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과잉"이라고 적었다.

특히 그는 이건희 '다중적 품성'에 관심을 보였다. 그동안 이건희와 삼성을 다룬 수많은 책들 중에 이같은 이건희의 '품성' 문제를 건드리지 않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눈곱 만큼도'라는 표현까지 썼다.

강 교수는 "이건희의 괴이한 면은 가끔 운동권 학생의 생각이나 정서를 드러내기도 한다"면서 삼성내부의 획일, 이기주의, 권위의식, 흑백논리, 불신풍조에 대해 강한 분노를 전달한다. 이어 "삼성의 미래를 위해서는 사회와 더불어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건희의 발언도 소개했다.

강 교수는 또 "지금 이 시절은 '노무현의 시대'라기 보다는 '이건희의 시대'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라며 "한국경제의 상징이자 실체는 삼성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노 정권의 각종 구호나 정책도 삼성을 베낀 것이라고 혹평했다.

이어 '이건희'를 중요한 사회적 화두로 삼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강 교수는 "'이건희 모델'이 모든 기업들은 물론 국가 차원의 이상적 표준이 되고있는 마당에 그 모델의 정체를 따져보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수 없다"면서 "가치 판단을 내리기 전에 이건희의 실제 권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걸 양지로 드러내놓고 사회적 화두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삼성공화국에 대해서도 긍정과 부정의 목소리를 담았다. 삼성의 경영실적과 해외 활동의 예를 들면서 "삼성의 활약상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국가적 자존심의 원천이 됐다"고 쓰고 있다. 대신 삼성의 사법, 입법, 정권 핵심부에 대한 막대한 영향력과 함께 지배구조의 낙후성 등에 대한 전문가들의 지적도 빼놓지 않고 있다.

"'삼성왕국' 담장 허물고 사회와 소통해야"

무엇보다 이처럼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삼성의 가장 큰 병폐 가운데 하나로 강 교수는 '소통 부재'를 꼽고 있다. 그의 말이다.

"(비판 세력에 대해) 삼성과 이건희는 몸을 낮추는 자세를 보이긴 했지만, 그 알맹이를 들여다보면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관리'하려 들 뿐 그것과 '소통'할 뜻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어 "이건희는 자신의 위상에 걸맞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 '삼성왕국'의 높은 담장을 허물고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성찰적 경영의 길을 모색하면서 자신의 다중적 품성도 왕성한 의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의 충고는 계속된다.

"그가 '모든 면에서 존경받는 기업인'은 실현 불가능한 꿈이 아니며, 그 꿈의 실현이 장기적으로 삼성의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닫거나 아니면 반박해야 한다. '이건희 시대'가 오명이 아닌 영예가 되게끔 하기 위해서는 그건 꼭 필요한 일이다."

그는 비단 삼성과 이건희 회장에게만 '발상의 전환'과 '시각 교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들을 흑백 논리로만 바라보려는 우리 사회의 '제로섬 게임 방식'에 대해서도 강 교수는 불만을 토로한다.

"(우리는) 한국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과 그 총수인 이건희 문제에 대해 레드 오션(Red Ocean: 피 튀기는 경쟁과 투쟁이 지배하는 시장) 전략으로 임하고 있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모두가 '윈-윈' 하는 블루 오션(Blue Ocean: 경쟁 없는 시장 창출) 전략은 불가능한가? 쉽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처음부터 그 가능성을 배제한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

삼성과 이건희에 대한 비판자들에게는 '성찰의 필요성'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건희 '제왕적 경영'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망정, 모든 분야가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한국사회의 특성과 분리된 채 (비판만) 이뤄지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제왕적 경영'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점에 상응하는 수준의 매를 때림으로써 실현가능성이 높은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것이 강 교수의 생각이다. 이와 함께 이해가 상충하는 모든 당사자들이 사회적 '블루오션'의 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갖고, '불신의 소용돌이'에서 탈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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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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