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에 있는 옛 발해 성터에서 이제까지 발굴된 것 가운데 가장 크고 완벽한 형태의 온돌 유적이 발견됐다.
이 온돌 유적은 중국 헤이룽장성 닝안시 발해진 상경용천부에서 나온 온돌 유적 보다 훨씬 큰 규모다. 전형적인 고구려식인 크라스키노 온돌 유적은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지난 1일부터 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과 러시아과학원 극동지부 역사·고고·민속학 연구소 공동 조사팀은 크라스키노 성을 발굴했다. 크라스키노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쪽으로 약 200㎞,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에서 동쪽으로 40㎞ 지점에 있는 촌으로 한국의 리(里)급 마을이다.
발굴팀이 처음 크라스키노 성터 '34구역'의 표토층을 걷어내자 석렬(石列)이 드러났다. 유적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발굴팀은 2~3일에 한번씩 장대비가 쏟아지는 악조건하에서도 작업에 박차를 가해 지난 21일 거의 완벽한 형태로 남아있는 온돌 유적을 찾아내는 개가를 올렸다.
겔만 극동대 교수 "크라스키노 온돌은 발해와 고구려의 계승관계 증명"
현장 발굴팀장인 에브게니 겔만(46) 극동과학기술대 교수는 "발굴된 온돌은 'ㄷ'자 형태로 총 길이는 14.8m, 폭은 가장 넓은 곳이 1.3m, 좁은 곳이 1m 가량"이라며 "온돌은 두겹으로 된 '쌍구들'로 돌을 양 옆으로 세우고 위에 판판한 돌을 얹은 전형적인 고구려식"이라고 말했다.
또 아궁이 2곳과 연기를 배출하던 굴뚝도 드러났다. 온돌이 있는 건물터의 총 면적은 50㎡이며 현재 50㎝정도 깊이로 판 상태다. 발굴팀은 일단 층위로 볼 때 온돌 유적의 연대를 서기 10세기 발해 말기로 추정하고 있다.
겔만 교수는 "온돌 유적이 나온 곳은 크라스키노 성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행정의 중심지 였을 것"이라며 "따라서 이곳에 살았던 사람은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크라스키노 성터의 온돌은 발해가 고구려와 계승관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한다"며 "앞으로 발해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이 유적발굴의 의미를 평가했다.
고구려연구재단 발해팀의 임상선 박사는 "일본이 지난 1930년대 중국 헤이룽장성 닝안시 발해진에 있는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 성터를 발굴했을 때 온돌 유적이 나왔다"며 "그러나 이번 것은 길이 2.7m 폭 1.5m 가량으로 크라스키노 온돌 유적보다 훨씬 작다"고 설명했다.
연해주 지역의 경우 지난 1987년 노보가르제옙스코에 지역에서 온돌의 흔적만 발견됐었다. 고구려연구재단 윤재운 박사는 "이번 온돌 유적은 거의 완벽한 형태로 발견됐다"며 "이제까지 발굴된 발해 온돌 유적 가운데 가장 완벽하고 가장 큰 것"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밖에 철제 삽날·청동제 과대(허리띠의 버클)·유약을 발라 구운 발해 도자기(발해 삼채) 파편·물결 무늬가 있는 토기편 등 140여점의 유물이 나왔다.
온돌은 한민족의 문화를 상징하는 것 가운데 하나다. 중국·일본·거란·말갈 등 주변 민족 가운데 온돌을 사용하는 민족은 없다. 2000년 전 고구려의 첫 수도였던 홀승골(중국 환인현 오녀산성)에도 온돌 유적이 확실하게 남아있다.
현재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히터 시스템을 갖춘 현대식 아파트에 입주한 뒤 따로 많은 돈을 들여 온돌 시공을 한다. 수천년을 이어올 정도로 온돌 문화의 생명력은 끈질기다.
2주 전 몽골 지역의 말갈 유적을 조사했던 알렉산드르 이블리예프 극동 역사·고고·민속학 연구소 부소장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 서쪽 톨강 부근에 11세기 말갈의 유적이 있다"며 "이곳에서도 온돌이 나왔다. 서기 926년 발해가 망한 뒤 거란에 끌려갔던 발해 유민들이 남긴 것으로 현지 학자들은 보고있다"고 전했다.
중국, 발해 유적을 자국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할 계획
중국은 동북공정을 진행하면서 고구려사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고 있다. 또 집안과 환인에 있는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
발해 역사는 더 심각하다. 발해를 '당나라의 지방정권'이라고 규정한 중국은 상경용천부 유적을 모두 복원해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시킬 계획이다.
지난해 6월24일 <중국교육보> 보도에 따르면, 중국 국가문물국 세계유산처의 왕다민은 '세계문화유산 청년논단'이라는 회의에서 "앞으로 수년 안에 발해 유적, 안양의 은허유적, 윈난성에 있는 하니족의 계단식 논밭 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가문물국 세계유산처는 바로 중국이 자국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직접 관장하는 곳이다.
지난해 7월 24일 <중국신문> 보도에 따르면, 흑룡강성 여행국의 쑨쟈거우 처장은 "발해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한 신청서를 이미 국가문물국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국내 학계에서는 빠르면 오는 2008년 중국이 발해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것으로 보고있다. 2008년에 베이징 올림픽이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발해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약간 더 늦출 가능성은 있다.
중국 정부가 발굴 작업을 하고 있거나 진행 예정인 곳은 발해의 수도였던 흑룡강성 영안현의 동경성(상경용천부), 연길 부근의 서고성(중경현덕부), 훈춘의 팔련성(동경 용원부) 등 8곳이나 된다. 중국 정부는 발굴 현장에 공안원을 배치하는 등 철저하게 외부인, 특히 한국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오는 2006년까지 발해 유적 발굴 및 보수 작업을 끝내기 위해 최소 13억위안(1885억원)을 투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집안의 고구려 유적 정비에 들어간 비용 3억위안(435억원)의 4배나 되는 돈이다.
고구려 유적은 평양을 중심으로 북한 지역에 상당수 남아있다. 그러나 발해의 경우 왕성 등의 중요 유적지가 중국에 집중된 상황이다. 중국은 지난 1960년대 북한과 딱 한번 발해 유적에 대한 공동발굴을 한 이후 외부 학자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발해를 둘러싼 '역사 전쟁'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셈이다. 따라서 국내 학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연해주 지역 발해 유적에서 성과를 올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번 크라스키노 성에서 최대 규모의 발해 온돌 유적을 발견한 것은 더 큰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