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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도입을 추진중인 간편납세제가 공평과세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세무사 사무소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정부가 도입을 추진중인 간편납세제가 공평과세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세무사 사무소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정부가 조세제도 개혁방안의 하나로 도입을 추진중인 간편납세제도가 조세 형평성과 공정한 과세를 훼손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영세자영업자나 중소기업들의 세무 업무 부담을 줄이겠다는 정부 방침과 달리, 실제로는 별다른 효과도 없을 뿐더러 일부 사업자들의 탈세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등 조세정책의 후퇴라는 의견이 높다.

26일 재정경제부는 간편납세제도 등을 담은 2005년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날 오전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 회관에서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열어 정부안에 대한 심의에 착수하고 차관과 국무회의를 거쳐 오는 9월말 국회에 이를 제출할 계획이다.

조세개혁한다는 '간편납세제도', 실효성과 과세투명성에서 역행 우려

정부가 내놓은 간편납세제도는 별도의 표준 전자장부를 만들어, 업체들의 세금 계산절차를 크게 간소화시키고 세무관련 비용을 절감시켜준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표준 전자장부는 국세청에서 개발, 무상으로 중소영세 자영업자들에게 공급해 회계장부 작성의 투명성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는 현재의 복잡한 세금계산 방식을 대신해 전자장부를 개발보급함으로써 영세 자영업자나 중소기업들의 납세협력비용(회계장부 작성 등 대행료)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간편납세제도에 대해 세금전문가를 비롯해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정책의 실효성과 과세 투명성 확보에 역행한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중소기업중앙회 등 기업들도 중소기업에 대한 세제지원을 오히려 악화시키려는 것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크게 네 가지. 우선 이번 간편납세제도는 세액 경감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매출 일정금액 이하의 중소사업자의 경우 현재의 세금 신고 방식보다 오히려 복잡한 전자장부에 직접 써넣어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강조하는 '납세절차의 간소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현재 개인사업자의 경우 회사 매입매출에 대한 증빙서류에 기초한 각종 경비를 적어야 한다. 법인으로 등록돼 있는 회사의 경우는 정부가 도입하려는 전자장부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상법에 따른 기존의 세금 신고를 별도로 해야 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는 것이 조세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탈세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이우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법인사업자는 상법 규정에 따라 대차대조표·손익계산서 등의 재무제표를 주주나 노동조합 등에 제시해야 하고, 대출이나 입찰·납품 등의 경우에는 금융기관 및 관공서 등에 재무제표를 제출해야 한다"며 "전자장부 기장을 하더라도 기업회계기준에 따른 복식부기 기장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문제는 간편납세제도가 자칫 일부 사업장의 경우 탈세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업장의 위장 분산을 통한 세금 면제 혜택과 함께 수입금액 탈루 등을 통해 실제 수입보다 적게 신고하는 행위가 더욱 횡행할 것이라는 것이다.

송쌍종 시립대 세무대학원 교수는 "이미 현행 세법에서도 간편납세제와 관련된 제도가 마련돼 있다"면서 "일부 사업장에서는 이 제도를 악용해 세금을 탈루할 가능성도 높다"고 우려했다. 송 교수는 "성실하게 납세하는 사람에게도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이는 조세개혁이 아니라 후퇴"라고 비판했다.

정부의 세무관련 비용 절감에 대해서도, 오히려 중소업체들에게 부담을 늘리는 꼴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세법지식이 없고 경리인력이 부족한 중소법인의 경우, 현행 제도에서는 한 번만 세금신고 대행 비용을 내면 되지만 간편신고제로 인해 오히려 이중의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간편납세제로는 자영업자 소득파악 어려워"

이우택 교수는 "전자장부보다 훨씬 간단한 간편장부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영세 중소·자영업자들로서는 간편납세제가 도입되더라도 세무전문가를 찾지 않을 수 없다"며 "전자장부 도입으로 영세사업자가 세무사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회계능력이 떨어지는 대다수 영세사업자에게 복잡한 새로운 전자장부 제도와 기존의 제도를 비교해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납세자로 하여금 세제·세정에 대한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면서 "사실상의 간편납세제도인 현재의 간편장부제도와 기준경비율제도의 미비점을 검토·보완해 기장인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상민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간사도 "재경부가 추진중인 간편 신고납부제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면서 "올바른 조세형평을 위해서는 자영업자에 대한 소득파악이 필요한데, 간편납세제도는 이같은 소득파악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관계자는 "정부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간편신고 납부제를 적용하려는 것으로 안다"면서 "이 제도와 연계해서 중소기업의 세금 감면제도를 정비하려 하는데 이는 중소기업의 세제 지원을 약화시키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재경부 관계자는 "간편납세제도는 의무 적용이 아니라 간편신고 납부 방식을 선택한 납세자에게만 해당된다"면서 "성실하게 세금을 내고, 신고하는 사업자에게는 세무조사 면제 등의 혜택도 주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표준 전자장부, 문제 없나?

재정경제부는 간편납세제도가 국세청이 개발한 표준 전자장부를 활용해 거래내용을 기록하고, 간편한 세무조정 방식을 통해 세액을 계산하여 신고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전자장부 방식에 대해 완벽한 표준전자장부 프로그램 개발이 가능한 것인지, 또 표준 전자장부로 기장하면 기업의 투명성과 간편성이 모두 확보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정부 발표로는 표준 전자장부가 기존의 복식부기 방식에 의해 기업회계(재무회계)를 기장하고 간편한 세무조정 방식을 적용한다는 것인지, 처음부터 복식부기와는 다른 간편한 방식에 의해 기업회계를 하고 간편한 세무조정을 한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전자의 경우라면, 조정계산서 부분만 추가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되는 것이므로 간편납세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단지 '조정계산서 간편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후자의 경우라면 새로운 기업회계 이론을 적용하는 것이 된다.

이에 대해 재정경제부 고위관계자는 "표준전자장부는 복식부기와는 별도로 간편한 장부기장과 세무조정으로 납세자 스스로 장부를 작성할 수 있고 재무제표도 작성되는 장부"라며 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에 반해 전산회계 쪽에서는 복식부기에 의한 장부만이 제대로 된 재무제표를 작성할 수 있으며 세계 모든 나라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장부 조직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정부가 만든 전자장부로는 완벽한 재무제표가 나올 수 없다는 말도 나온다.

또 표준전자장부 프로그램 개발에는 수백억원 이상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자장부는 간편납세제도를 수행하는 핵심수단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입법화를 서두르기 전에 회계학회나 회계정보학회로부터 정부가 구상하는 표준전자장부가 학문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으며 국제표준과도 부합하는지 검증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 김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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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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