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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초 통방산과 처음 인연을 맺었을 때의 모습
8월 초 통방산과 처음 인연을 맺었을 때의 모습 ⓒ 정곡스님
"그냥 무관심으로 넘겨주셨으면 합니다.
귀엽다고 쓰다듬거나 먹을 것을 주지 마세요.
아셨지요. 물론 겁주지도 말아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견공들이 사람들의 손을 타서 자꾸 쓰다듬을 받고 먹을 것을 얻어먹는 것에 길들여지다 보면 본래 제 본성를 잊을 뿐더러 사람들을 따라 가 버린다고 했다. 밖에서 살아남는 것을 배우는 동안, 세상을 살아낼 능력이 생길 동안 그저 지켜보는 것이 가장 큰 애정의 표현이라 했다.

어느 곳에서나 터줏대감과 신입들의 보이지 않는 텃세 다툼이 있듯 두 꼬맹이 견공들이 들어온 후 견공들 사이에 작은 세 다툼이 일어났다. 우선 같은 날 정곡사 식구가 된 통장이와 통도의 서열다툼이었다. 온 지 채 며칠 되지 않아 물을 뿌려 두 녀석의 싸움을 가까스로 말렸던 스님의 그 날 상황을 옮겨본다.

"뒤에서 강아지들이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예사로 생각하고 그냥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좀 심한 것 같다. 하지만 요놈들 싸움에 상관 않고 가던 길을 갔다. 따라 오려니 하면서... 헌데 가다 봐도 그냥 싸우고 또 가다 돌아 봐도 계속 싸우고 있어 뛰어 가는 척을 하면서 꽤 멀리 한 이백 여 미터를 가서 기다리고 있어도 영 오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오던 길을 돌아가 싸우던 장소로 가보니 강아지들이 없었다. 한참을 찾아도 보이지 않고... 헌데 저 아래에서 뭔가 꿈틀거린다. 자세히 보니 아직도 굴러가며 싸우고 있는 것이다. 가까이 가서 어떻게 말리려 해도 뭔가 잘못 개입하는 것이 될까 염려스러워 그냥 두고 보는데 입술이나 혀가 새파랗게 변색이 되었다. 한 녀석이 깨갱거려도 또한 녀석은 그냥 물고 흔든다."


통방산 정곡사의 견공 4형제, 통천·신통·통장·통도

통장이와의 싸움 후 야성을 가진 통도의 본래 모습. 친구를 잃은 통도는 누구하고 놀까?
통장이와의 싸움 후 야성을 가진 통도의 본래 모습. 친구를 잃은 통도는 누구하고 놀까? ⓒ 정곡스님
결국은 이기고도 분이 덜 풀린 통장이가 완전히 꼬리를 내리고 평상 속으로 숨은 통도를 찾아내 다시 분풀이를 하는 것을 끝으로 통장이의 완벽한 승리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잠시 견공들 사이에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다.

이기고도 분이 덜 풀렸는지 적의를 잔뜩 드러낸 채 하늘을 보고 있는 통장이 표정이 섬뜩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정말 사소한, 기억에도 없는 일을 가지고 흥분해 세상을 향해 적의를 드러내 씩씩거리고 있는 우매한 내 표정을 보는 것 같았다. 두 녀석의 싸움 이후 견공들의 서열이 확실히 매겨진 듯했으나 그 또한 오래 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오랜 시간 오두막에 살고 있던 암놈 신통이와 통장이와의 신경전이었다. 아무리 통도를 이겼다한들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은 하룻강아지가 성견인 신통이에게는 무리였다. 팔월 중순 스님이 잠시 출타 틈에 신통이와 통장이의 싸움이 벌어졌다.

이미 싸움이 벌어진 뒤였으니 신통이의 심통이었나 통장이의 도전이었는가는 모르겠다. 저대로 두었다가는 덩치 큰 신통이가 어린 통장이를 물어 죽일 것 같았다. 전화로 스님의 코치를 받아 물을 뿌려 두 녀석의 싸움을 간신히 뜯어말리긴 했지만 이미 어린 통장이의 어깨 죽지에는 허연 살이 드러나고 꽤 심한 상처가 난 뒤였다.

8월 16일 신통이와의 첫번째 싸움 뒤. 그때처럼 빨리 회복하길 빌었는데...
8월 16일 신통이와의 첫번째 싸움 뒤. 그때처럼 빨리 회복하길 빌었는데... ⓒ 이승열
온 몸에 부상을 당한 통장이는 싸움 후 무척 놀랐는지 두 번쯤 토하고 기운 없이 앓긴 했지만 그래도 통도와 함께 오두막 마당을 돌아다니며 조금씩 기운을 차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식음을 전폐하고 기운 없이 부엌 흙바닥에 누워 있었다.

신통이가 왜 자꾸 통장이를 물까 여러 의견이 오갔다. 지난 장마 때 벼락을 두 번이나 맞고도 살아난 신통이건만 올해 유난히 부상이 많다. 목에 동물의 뼈가 걸려 사경을 헤매는 것을 스님이 손전등을 들고 입 속에 손을 넣어 뽑은 적도 있다. 발바닥에 상처가 심해 아직도 다리를 조금 절고 있다. 이러한 모든 주변 상황이 신통이를 예민하고 독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벼락을 맞아 생긴 것이 신통력이 아니라 '심통'인가 보다.

다시 태어나도 독 품은 뱀은 되지 말거라

아무래도 신통이 집 앞이 너무 축축하고 물이 고여 있어 예민해져 그런 것 같다는 의견이 모아져 신통이의 집을 옮기기로 했다. 수맥이 흐르는 곳에 오래 살다 보면 수맥의 영향으로 예민해지고 허해진다고 하지 않는가? 끈으로 묶고 힘을 합쳐 신통이 집을 뽀송뽀송한 해우소 앞 공터로 옮기고 당부했다. 이젠 통장이와 잘 지내라고.

하루종일 누워 앓던 통장이는 결국 한 끼도 먹지 못하고 앓아 스님을 안타깝게 했다. 우황청심환을 반으로 나누어 먹이는 것을 보고는 어두워진 산을 내려왔다. 빨리 털고 일어나 쫄랑쫄랑 통방산이 좁다는 듯 누비고 다닐 통장이의 건강한 모습을 기대했다.

8월 27일 토요일. 고요한 눈으로 고통을 감내하던 통장이. 결국 짧은 생을 마감했다.
8월 27일 토요일. 고요한 눈으로 고통을 감내하던 통장이. 결국 짧은 생을 마감했다. ⓒ 이승열
일요일 늦은 밤, 통장이의 안부가 궁금해 스님의 홈페이지를 찾았다. 난 사실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스님의 당부가 아니더라도 통방산 견공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진 적도 표현한 적도 없지만 통장이의 눈빛이 자꾸 생각났다. 통장이의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보리차를 끓여 먹여보고 죽을 다시 쑤워 물만을 먹여봐도 금방 토하고 만다. 한참을 쓰다듬어 용기를 주어도 눈빛엔 정 깊어질 뿐 머리를 땅에 떨군다. 한참을 자고 난 뒤 아장아장 걸어 물을 먹고 숲 속으로 들어가 용변을 본다. 아 ~ 이젠 살아나려나... 그토록 멀리 가서 일을 보는 것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헌데 힘을 주어 한 덩이 떨구고는 힘없이 주저앉아 있다."

마음이 짠해지면서 계속 글자를 따라 내려가면서도 사태 파악이 되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통장이가 결국 일어서지 못했던 것이다.

"강아지는 이미 숨을 거두웠고 큰 파리만 벌써 왱왱거린다. 통장아! 되더라도 독을 품은 뱀은 되지 말거라. 보리심을 내어라. 염원하며 꼭꼭 밟아 땅에 묻어 준다."

총명한 눈빛을 잃어가고 있는 통장이가 진지한 모습으로 정을 담아 스님을 바라보던 모습이 뭉클하다고 했다. 통방산을 다녀와 통장이의 쾌유를 빌며 올렸던 통장이의 모습은 이미 이 시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린 강아지 통천이의 죽음을 애도하고 안타까워할 방법을 잘 모르겠다. 총명했던 눈동자를 잠시 떠올리는 것으로 이승에서의 짧은 만남을 접은 통장이와의 인연을 되새겨 본다. 따뜻한 눈길 한번 보내지 못한 아쉬움만이 남아 있다.

덧붙이는 글 | 모든 죽음 앞에서는 마음이 숙연해진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 인연이 짧으면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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