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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풀 수 없는 고차 방정식을 만났을 때, 수학자들은 '이것은 신의 문제다'라고 외칠 것이다. 이 수학자는 신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인식 한계를 고백하는 것일까?
케임브리지 대학의 크라이스트 칼리지에서 아름다운 펠로 가든(fellow garden)을 끼고 돌아 한 쪽 구석에 다가서면, 오랜 세월만큼이나 낚은 크라이스트 학장 집 담장을 이웃해 한 쪽 구석으로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의 조각상이 안치되어 있다. 주의하지 않으면 찾기가 좀 힘들다.
왜 그곳에 그 조상이 서 있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그 대학이 다윈이 공부하던 곳이었기에 다윈의 조상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지만 말이다. 다윈은 1825년 에든버러 대학에 입학하여 의학을 배웠으나 성격에 맞지 않아 중퇴하고, 1828년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가서 신학을 공부했다.
이것도 아이러니이다. 신학을 공부했던 사람이 근대 진화론을 연 최초의 생물학자가 되다니. 물론 고대 그리스에도 유사-진화론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생물들은 태양에 의해 증발되는 <습한 것에서> 생긴다. 사람은 다른 생물, 즉 물고기와 아주 비슷했다'라고 말했다 한다.
과학의 역사에는 '뜨거운 감자'로 해묵은 여러 논쟁이 전해진다. 그 중 하나가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일 것이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이 양자의 논쟁에 관련해서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문제에 개입하면서(<뉴욕타임스> 2005년 8월 21일자) '양쪽을 적절하게 가르쳐야만 한다'라는 보수적 시각의 일단을 내밀었다.
종교적으로 근본적 보수주의자를 대변하는 부시의 입장은 미국인의 절반을 대표하는 정치적 정책일 수 있다. 미국인의 절반 가량이 '신의 존재'를 믿고 있으니, 결국 창조론을 따른다고 봐야 할 것이다. 최근 <뉴욕 타임즈>(8월 20일~23일자)는 이 뜨거운 문제에 대하여 여러 측면의 과학 기사를 통하여 연속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폭소는 해방'이라는 말이 있다. 다윈의 <종의 기원>(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 1859)이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을 때, 옥스포드의 윌버포스 주교와 토마스 헉슬리가 대중 앞에서 공개 토론을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주교는 과학 이론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헉슬리를 향하여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당신이 원숭이를 조상으로 가지고 있다고 하는 그 주장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나요, 아니면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았나요?" 이렇게 진화론을 주장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토론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갔다고 한다.
원숭이의 손자라고 조롱하는 주교에게 헉슬리는 '만일 나에게 과학자의 업적이나 과학의 진실을 우스개 거리로 만드는 경박한 지식인과 정직한 원숭이 중에 한 쪽을 조상으로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원숭이를 선택할 것'이라고 답했다 한다.
일반적으로 생물학적 증거를 제시하는 진화론이 더 과학적이라 믿는다. 사실상 생명의 기원과 발전을 설명하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생물학적인 진화론적 증거들이 발견된다.
그런 방면에 진화론도 자체적으로는 어떤 불충분한 논리적 결함을 가지고 있으며, 그 논리적 결함을 설명할 수 있는 생물학적 증거를 충분히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진화론이 가지고 있는 블랙박스(Black Box)일 수도 있고, 잃어버린 고리(Lost chains)일 수도 있다.
이런 약점을 파고드는 이론들이 있다. 이런 입장들은 과학의 외부에서뿐만 아니라, 과학의 내부에서도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지성 설계론>이다. 이 이론은 철학적 세계관뿐 아니라 과학적 가설을 내세움으로써, 어떤 생명 기관들은 너무도 복잡해서 진화 이론만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런 주장을 통해서 다윈의 <자연 선택론>(Daewin's theory of natural selection)에 도전한다.
창조론을 과학적으로 옹호하는 <지성 설계론>(intelligent design)의 핵심이 이 주장에 다 담겨 있다. <지성 설계론>은 초자연적 영향력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신실한 대중들은 진화론과 신의 존재를 본능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지만, <지성 설계론>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태도를 실험실에서는 검사할 수 없는 <이교도적 태도>로 회피할 것이다.
<지성 설계론>에 관련된 논쟁의 핵심은 '생명의 역사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보이지 않는 보다 높은 존재의 행위를 포함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이론의 옹호자들은 생명 현상의 복잡성과 다양성은 진화론이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선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을 '생각의 생각', '부동자의 동자(動者)'라고 불렀다. 신은 세계의 최초의 운동의 원인이면서도 자신은 움직이지 않은 채 더 이상 이 세상에 개입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에 대한 생각이, 생명을 포함한 자연 세계에 무언가 놀라운 힘을 부여했지만, 그 힘에 대해서 더 이상 설명하지 않는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면, <지성 설계론>에 가까운 입장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신관을 흔히 <이신론(理神論; deism)>이라 부른다.
어쨌든 생명의 복잡성을 설명함에 있어 이 지점에서 다윈이즘과 그 의심자들간에 견해들이 충돌하기 마련이다. 지성적 설계의 옹호자들과 학교 내에서 진화론과 병행해서 이런 사고를 가르쳐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생명의 복잡성과 다양성은 진화론이 설명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런 입장에 서는 과학자들은 이를테면, 눈의 시각적 정확성과 같은 생물학적 기적, 박테리아를 추진하는 작은 회전하는 모터들, 피를 응고시키게 하는 단백질의 캐스케이드와 같은 것들은 세계 속에서 작동하는 <보다 높은 존재의 손>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성 설계론자인 펜실베이니아 레이대 생화학 교수인 마이컬 베히(Michael J. Behe, a professor of biochemistry at Lehigh University)는 피를 응고시키는 것과 같은 복잡한 생물학적 현상들을 쥐덫에 비교한다.
쥐덫을 구성하는 스프링, 널판, 쥐를 낚아채는 금속 조각들과 같은 것들 중에서 어떤 하나의 구성부분을 제거하면, 쥐덫은 생쥐를 잡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예로 든다.
베히 박사는 다른 예를 들어, 만일 혈우병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피를 응고시키는데 포함된 20개의 단백질 가운데 어떤 하나가 빠지거나 결여된다면, 응고는 적절하게 형성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전부 혹은 전무 시스템(Such all-or-none systems)은, 생명은 원초적 박테리아로부터 보다 큰 뇌와 인간의 보다 정교한 능력으로 진화되어 왔음을 수용하는 진화론자들의 말하는 바와 같은 <점증적 변화>를 통하여 생겨날 수 없다고 베히 박사와 다른 지성 설계론자들은 주장한다.
결국 베히는 이 복잡한 시스템은 "항상 설계와 연관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러한 시스템을 생물학에서 발견했다. 다윈주의자들이 어떻게 주장하든 관계없이 이런 것들이 만들어 질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이 설계되었다고 합리적으로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많은 미국인의 신앙에 호소하는 논증이기도 하다.
이와는 달리, 이들에 반대하는 주류 과학자들은, 지성 설계론자들의 주장이 다윈적 진화론의 설명과 그 예측적 힘을 지지하는 오랜 기간의 연구 활동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과학의 한계 내에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을 과학의 외곽에서 끄집어들임으로써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고, 설명으로서 보다 높은 존재에 호소함으로써 비과학적이라는 혐의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과학은 기적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갈릴레이가 말하듯, 우주는 수학 방정식으로 쓰여 있어서 신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얼마든지 이성의 힘만으로 경험 세계 안에서 해명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인 듯싶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자들이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과학자들은,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가 혹은 어떻게 우리가 살아야만 하는가에 관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채로, 어떻게 물질세계가 작동하는지를 발견하려는 노력만을 보여줄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류과학자들은 우리가 직면한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서 <다른 세계적인 설명들>에 기댈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생물학자들은 가장 복잡한 자연적 현상들조차 설명할 수 있는, 그리고 기존 이론 체계에 생겨난 어떠한 공백이든지 그것을 메우기 위한 많은 증거들이 진화론적 연구에 의하여 충분히 주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앞서 지성 설계론자들이 예로 든 피의 응고나 박테리아 추진 운동과 같은 현상들도 초기 동물 화석의 흔적이나, 유전자의 연구를 통해 밝혀진 DNA에서의 화학적 흔적과 같은 자국들을 통해서 충분히 해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정부분 주류 과학자들과 지성 설계론자들은 진화론에 의한 과학의 결과들을 공유한다. 창조주의자들과 달리 지성 설계론자들은 현대 과학의 많은 결과들을 받아들인다.
지성 설계론자들은 우주의 나이가 성경의 축자적인 해석이 보이는 바와 같은 만년이 채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136억년이라는 천체 우주론자들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들은 변이와 자연적 선택, 진화의 중심 메커니즘이 작은 범위 내에서 자연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도 받아들인다. 또 어떤 설계론자들은 진화론의 핵심이론까지도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많은 과학자들은 지성 설계론을 '창조론이 사이비 과학적 옷으로 치장한 데 불과한 것'으로 간주한다.
설계론자들도 과학적 언어를 사용하고, 과학자라는 사실을 허용하면서도 그들이 채택하는 설계론적 학문 방법은 기껏해야 진화론에 대한 철학적 반대만을 내세웠지, 설계자의 개입에 대한 어떤 긍정적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도 자연의 법칙에 관해서보다 성경에 관해서 더 많은 글을 썼다고 한다. 어떤 과학자들은 종교와 과학은 영역을 달리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자신의 목적과 가치와 세계관에 따라 신의 존재를 믿기도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어떤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 과학 저널 <네이처>의 1997년 조사 통계를 보니, 생물학자, 물리학자, 수학자들의 40%가 신을 믿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사실 자연적 관찰에 토대를 두는 과학은, 왜 우리가 여기에 있으며, <인간임>이란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변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어찌 생각해 보면 이런 궁극적 질문들이 자연과학적 물음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도 관찰의 세계를 떠나 <보이지 않는 세계>로 환상의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르겠다.
저녁 노을빛에 물든 거대한 비행기가 하늘을 가볍게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저거 대단하구나. 환상적이야'라고 외치는 그 순간, 저것은 과학의 승리라고 받아들이면서도 저 속에 숨어 있는 신(deus absconditus; hidden god)의 손이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면, <신과 과학>이 양립할 수 있다는 <지성 설계론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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