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황우석 교수의 이름이 세계에서 빛나고 있지만, 옛날에도 우리 나라에는 뛰어난 과학자가 많았다. 전(前) 한국과학사학회장 전상운 교수가 "15세기 과학사의 중심"이라고 찬양한 세종대왕, 우리나라 화학병기의 선구자인 최무선, 조선시대 최고 기계기술자인 장영실, 조선의학의 전통을 우뚝 세운 명의 허준, 한국에 헌신한 세계적 유전육종학자 우장춘 등…
한반도가 낳은 뛰어난 옛날 과학자 12인의 삶을 다룬 책이 마침 나왔다. 2004년 1월부터 12월까지 매월 한 차례씩 한국과학사학회가 주최하고 한국과학문화재단이 후원한 학술세미나 '이 달의 과학기술 인물'에서 발표된 것들이 한 권으로 묶어져 나온 것이다. <한국 과학기술 인물 12인>. 이 책에 수록된 인물들은 2002년에 한국과학사학회와 한국과학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선정하여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모신 분들이다.
앞서 말한 위인 외에 세종이 총애한 최고의 테크노크라트 이천, 전방위적인 업적을 남긴 천문역산학자 이순지, 무한우주를 바라본 경계인 홍대용, 조선 지리학을 완성한 김정호, 사막에서 홀로 몸부림친 천문학자 이원철, 한국 화학계의 큰 별 이태규, 황무지에서 삼림부국의 꿈을 키운 임목육종학자 현신규가 수록되어 있다.
<한국 과학기술 인물 12인>의 필자로는 김근배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김호 경인교육대 사회교육과 교수, 나일성 연세대 명예교수, 문중양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박재광 전쟁기념관 학예연구관, 배우성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송상용 한국과학기술사편찬위원장, 신동원 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연구교수, 이문규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임종태 한국과학기술원 연구교수, 전상운 성신여대 총장, 전용훈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 전임연구원이 참여했다. 한국과학기술사학계의 제1세대부터 제2, 3세대에 해당하는 중진, 중견, 신예 학자들이 모두 망라된 셈.
황상익 한국과학사학회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한국의 과학기술 인물들에 대한 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학술적인 면에서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가장 충실히 반영하면서 동시에 대중적으로 널리 읽힐 수 있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고 '추천의 글'에서 밝혔다.
내용 중에 특히 자주적 과학기술을 혁신적으로 전개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간 세종이 <훈민정음>(해례본) 첫머리의 어제문에 쓴 글은 책 안 읽는 이 땅의 현대인에게 자신을 돌이켜보게 만든다.
'우리나라 말소리가 중국과 달라서 한자와는 서로 뜻이 통하지 않으므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로 쓰기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글을 쓸 수 있게끔 훈민정음을 창제해 주었지만, 쓰기는 그만두고 많은 사람들이 읽기도 게을리하는 중병을 앓고 있으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스웨덴 한림원에서 한 때는 "대한민국이 군사독재국가라서 노벨문학상을 줄 수 없다"고 했다는데, 이제는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책 안 읽는 대표적인 나라라서 노벨문학상을 줄 수 없다"는 구실을 붙일까 겁난다.
<한국 과학기술 12인>, 이 책에서 다룬 12인 외에 앞으로 더 많은 유명·무명 과학자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준 책이다.
덧붙이는 글 | <한국 과학기술 인물 12인> 김근배 외 11인 지음/2005년 8월 11일 해나무 펴냄/223×152mm 376쪽/책값 1만5000원
●김선영 기자는 대하소설 <애니깽>과 <소설 역도산>, 평전 <배호 평전>, 생명에세이집 <사람과 개가 있는 풍경> 등을 쓴 중견소설가이자 문화평론가이며, <오마이뉴스> '책동네' 섹션에 '시인과의 사색', '내가 만난 소설가'를 이어쓰기하거나 서평을 쓰고 있다. "독서는 국력!"이라고 외치면서 참신한 독서운동을 펼칠 방법을 다각도로 궁리하고 있는 한편, 현대사를 다룬 6부작 대하소설 <군화(軍靴)>를 2005년 12월 출간 목표로 집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