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디지털 산업단지 2단지에 있는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이 계속되고 있다. 파견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에 맞서 지난 8월 24일 오전 80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생산라인을 점거한 지 벌써 11일째에 접어들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문자 메시지로 해고통보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
기륭전자는 '네비게이션'을 만드는 회사로 사원 500명 정도의 중견기업이며 코스닥 등록업체이기도 하다. 생산직 사원 300여 명 가운데 정규직이 10명, 계약직이 30~40명, 나머지 250명 가량의 노동자가 파견직으로 일하고 있다.
2004년 220억의 단기 순이익을 올렸지만, 생산직 사원의 임금은 많지 않다. 법정 최저임금보다 불과 10원이 많은 64만1850원이다. 10년 넘은 정규직 사원의 기본급도 78만원에 불과할 정도로 저임금 사업장이다. 이 회사의 노동자들은 불안전한 고용과 저임금, 그리고 한 달에 70~100시간의 잔업을 하면서 어렵사리 일을 해 왔다.
이 회사 한 노동자는 "주말이 무섭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쉬고 있는 주말에 해고통보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난 5월초 일부 파견직 사원들은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00입니다.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세요. 궁금한 점 있으면 저에게 전화하세요'
문자메시지로 해고 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이 회사를 찾아가 해고 사유를 묻자 회사측은 '근무중 잡담', '말대답을 했다'는 이유를 댔다.
노동부도 불법 파견 인정
이런 상황을 지켜본 서울 남부지역의 시민사회단체가 지난 6월 30일 노동부에 기륭전자의 상황을 진정했고 7월 5일에는 200여 명의 조합원이 기륭전자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노동부는 지난 8월 5일 기륭전자를 불법파견사용자로 판정하고 25일까지 개선계획서를 노동부에 제출하도록 했다. 노동부도 기륭전자의 불법행위를 인정한 것.
노동부 비정규직 대책과 장화익 과장은 "기륭전자의 경우 혼재 근무를 실시하고 있어 불법"이라면서 "적법한 체계로 전환, 개선하겠다는 의사를 담은 계획서가 체출됐으며 현재 지방 노동사무소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륭전자는 노동조합이 결성되자 정문을 2m 높이로 개조하고, 현장 곳곳에 20여 개의 카메라를 설치했다. 지난 1일에는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이 현장을 방문해 회사측과 면담을 진행하려 했지만 회사측이 정문조차 열어주지 않았다.
농성 중인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은 "현재는 각 층마다 철문을 만들어 농성 노동자들을 격리시키고 있다"면서 "회사가 점점 감옥처럼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륭전자는 현재 1년 이하 파견 노동자를 모두 계약해지하고, 현장을 완전 도급화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성실한 교섭 원할 뿐"
농성 노동자들의 요구는 해고중단과 성실한 교섭 두 가지다. 농성을 시작한 뒤 두 차례 교섭이 있었지만 먼저 농성을 끝내라는 회사측의 요구를 노동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아 무산됐다.
김소연 분회장은 "노동부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회사측은 해고를 계속 진행중"이라면서 "노동부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분회장은 이어 "계약해지 중단, 대표이사 면담이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설사 공권력이 투입된다고 해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륭전자는 지난 8월 27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분규를 일으키고 있는 금속노동연맹 서울지부 남부지회는 합법적 대표성이 없으며 기륭전자가 노동부에 의해 '불법파견사용자'로 예비판정 난 것도 서류 및 운영상 미숙에 따른 것이지 불법은 전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오마이뉴스>는 기륭전자 사태와 관련 보다 자세한 회사의 입장과 이후 계획을 듣기 위해 한관수 관리이사를 비롯 총무팀과의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사측은 "현 상황과 관련 회사측의 입장을 말할 수 없다, 다만 추석을 전후해 회사측의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만 알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