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 넘게 심사숙고해 만든 부동산 대책, 그러나 알맹이는 없었다. 정부는 배고프다고, 먹을 것을 더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공급확대론자들을 위해 강남 미니 신도시 등의 먹잇감을 던졌을 뿐이다.
무주택 806만 세대(행자부 8월 30일 발표 기준)는 정부가 발표한 8.31 부동산 종합 대책 앞에서 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정책의 기본방향으로 "서민주거 안정과 투기수요 억제를 목표로 잡았다"면서 "핵심정책은 확고하게 추진하되 서민의 불편과 부담을 최소화하고 경제 활성화에 큰 차질이 없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분양가에 대한 '답'이 없다
8.31 부동산 종합대책의 뼈대는 ▲서민주거 안정▲ 부동산 거래 투명화 ▲주택시장과 토지시장 안정이며, 구체적인 정책은 ▲'생애 최초 주택구입 자금' 지원 재개와 전세 자금 대출 확대 ▲보유세 강화와 거래세 인하 ▲강남 미니 신도시 건설과 수도권 공공택지 1000만평 공급 ▲도심 광역 개발과 규제 완화 ▲개발이익 환수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무주택 서민 주거안정 지원책으로 제시한 '생애 최초 주택구입 자금 지원'은 전용 면적 25.7평 이하 주택을 첫 구입할 때 시중 금리보다 낮은 이자로 주택 구입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이뿐 아니라 비투기지역 내 25.7평 이하 주택구입 지원을 위한 모기지 보험 제도를 도입해 대출 비율을 높여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천정부지로 오른 분양가에 대한 대책 없는 대출 늘리기는 가계에 부담만 안겨준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정보업체에 따르면 99년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 조치 이후 서울 동시분양 아파트 평당 분양가는 걷잡을 수 없이 치솟고 있다. 99년 평당 분양가는 604만원에 불과했지만, 2003년 서울의 평당 분양가는 1082만원으로 1.8배 늘어났다. 2005년 현재 평당 분양가는 1409만원으로 99년에 비해서 2.3배 가격이 오른 상태다.
8.31 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분양가 규제를 위한 방안으로 공공택지의 경우 25.7평 이하에 대해 원가연동제, 25.7평 초과에 대해 원가연동제와 주택채권을 병행하기로 결정했으며, 민간분양의 경우 분양가를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그러나 원가연동제가 첫 적용을 받는 판교 신도시의 경우 전용면적 25.7평 이하 아파트 평당 분양가는 토지조성원가(용적율 160%적용 기준 500만원)와 표준건축비(평당 339만원)만 합쳐도 839만원이다. 원가로 33평형 분양가를 계산해도 2억 7천만원 수준이다. 산술적으로 매월 100만원씩 20년을 저축했을 때 모을 수 있는 원금이 2억 400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결국 앞으로 공공 택지를 통해 공급되는 아파트 분양가가 획기적으로 낮아지지 않는 한 무주택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은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인 김남근 변호사는 "정부가 투기수요억제로서 보유세와 양도소득세 강화 정책을 발표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고분양가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은 문제"라면서 "서민들 소득 수준으로는 현재의 분양가를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에 평당 분양가를 400~500만원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세제를 통한 투기수요억제책이 실효화되기 위해서는 1~2년이 필요한데도 이번 대책에서 정부는 주택공급정책을 너무 남발하고 있다"면서 "오히려 송파 미니 신도시 개발로 인한 주변 지역의 집값 상승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로또 '송파 신도시'... 강북 뉴타운 규제 완화
실제로 강남 미니 신도시 예정지로 지목되는 송파구 거여지구는 벌써부터 집값이 급등하고 있다. 주변 부동산중개업소의 설명에 따르면 미니 신도시 호재가 발표되자 30평대 아파트가 한달 사이에 1억원 이상으로 뛰어올라 호가를 치고 있다.
정부는 송파 미니 신도시 대상 지역으로 육군 종합학교 95만평, 특전사 부대 65만평, 육군 체육부대 12만평, 군부대 골프장 28만평 등 국공유지 200만평을 개발해 5만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이 같은 정책은 강남의 가수요를 열어주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강남을 대체한다고 만든 판교 신도시가 첫삽도 뜨기 전에 분당과 용인 그리고 강남 지역의 집값을 34조 끌어올린 것을 감안한다면 송파 미니 신도시는 또 다른 '로또'가 될 공산이 크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강팔문 건설교통부 주택국장은 "판교처럼 토지 보상가격이 주변에 풀리지는 않기 때문에 인근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부작용이 완전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판교같은 문제점은 최소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송파 거여 주변 집값 상승에 대한 효과적인 대책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강 국장은 "그 문제는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남 미니 신도시 뿐 아니라 정부는 재개발 사업시행시 광역적 공공개발 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특별법까지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강북 뉴타운 개발을 염두에 둔 발표다.
정부는 재개발 추진시 사업시행자 지정 요건을 주민 동의 2/3에서 1/2로 완화, 소형의무비율 완화 (현행 25.7평 이하 80%에서 60%축소), 층고제한 완화, 용적율 50~100% 상향 조정 등 규제 완화를 대폭 제시했다. 강남 뿐 아니라 뉴타운 개발 계획에 따라 강북 등 서울 시내 집값이 동반 상승할 가능성을 열어준 셈이다.
반면, 세제 강화 대책은 상당 부분 후퇴했다. 1가구 2주택 양도세 중과 대상자는 전체 국민의 2% 수준에도 못 미치지만 '세금 폭탄'을 앞세운 일부 언론의 반발로 인해 세율이 60%에서 50%로 인하됐다.
또한 대상자도 수도권, 광역시의 경우 기준 시가 1억원 이상, 기타 지방의 경우 기준시가 3억원 이상으로 축소됐다. 여기에다 시행 시기마저 1년 유예를 두고 2007년 부터 적용된다. 종합부동산세 역시 상한폐지를 상정했다가 대책에서는 상한선을 300%로 조정했다. 집 부자들의 반발을 의식한 결정이다.
"빈부 격차 강화하는 15점 짜리 대책"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서민주거 안정 등 공공성 강화보다는 공급 확대와 규제완화에 무게를 둔 것과 관련,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 교수는 "그 어느 때보다 정부에서 노력을 많이 했지만 결과적으로 발표된 부동산 대책은 '개혁'이 아니라 '개선'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이 정도 대책으로 집 없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평가했다.
홍 교수는 "공공 택지를 공영개발해 무주택자를 위한 정책을 펴겠다고 했지만, 그 혜택이 무주택자 등 실수요자들에게 돌아간다는 보장이 없다"면서 "전체적으로 50점에 불과한 대책"이라고 꼬집었다.
판교발 집값 폭등을 예견하며 '판교 택지 공급 중단, 공공택지 전면 공영개발'을 주장했던 경실련 '아파트 거품빼기 운동본부' 역시 정부의 8.31 대책으로는 '집값 거품 빼기'가 불가능하다고 반발했다.
김헌동 아파트 거품빼기 운동본부장은 "정부가 집값의 거품을 빼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올라간 집값을 그대로 유지시키겠다는 것인지 정책 방향이 명확하지가 않았다"면서 "이번 대책은 15점짜리에 불과하며 빈부격차를 더욱 강화시키는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고 혹평했다.
김 본부장은 "판교 신도시로 집값이 오른 것도 모자라 정부가 송파 신도시, 강북 뉴타운으로 집값을 폭등시켜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을 앗아가고 있다"면서, "이번 대책은 집 부자들에게 '세금 조금만 내, 그러면 대신 집값 왕창 올려줄께'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