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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우리 엄마. ⓒ 주경심
우리집은 바닷가 중에서도 선창가 일번지였다. 마당에서 낚싯대를 던져도 망둥어, 놀래미 정도는 가뿐하게 끌어올리는 곳에 위치한 고향집의 탯자리 덕에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모닝콜 삼아 하루를 넘기고 그 바다에서 나는 걸로 삶을 살찌우며 바다에 돌을 던진 포물선에 사춘기를 무르익게도 했다.

그런데 그 바다에 마음대로 뛰어들 수가 없다니. 누구는 여름이면 피서며, 휴가를 맞아 바다로 바다로 누구 불러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꾸역꾸역 모여 들어서 수영을 하고, 보트를 타고 바다에 바다에 의한 바다를 위한 여름을 난다는데…. 나는 바다를 지척에 두고도 매일 이루지 못한 첫사랑처럼 동경만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아직 채 여물지 못한 가슴이 쓰린 상처로 얼룩이 지고 있었다.

내가 중학교 때였을까.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친구들은 아침 저녁으로 까만 플라스틱공에 줄을 연결해서 만든 튜브를 가슴에 차고는 내 집 앞을 지나 바닷가로 향했다. 수영을 하기 위해 그 나이쯤에는 잠수를 해서 고동을 잡고, 꾸적도 잡아서 돌멩이를 사용해서 까 먹을 수 있기에 친구 중에서는 스티로폼 끝에 빨간 그물을 매달아 망태를 준비해서 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모든 신경이 귀로 몰렸다. 개구진 친구들은 이런 나의 사정 또한 빤히 알기에 집 앞을 지나면서 "갱심아~ 수영허로 가자! 오늘은 고동이 겁나게 많이 나와불겄구만. 잉"하는 염장지르기용 멘트를 삼절까지 날려 주는 건 기본이었다.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내 엄마! 젊은 나이에 그새 귀를 잡숴버리셨나…. 미동도 없다. 들고 있던 숟가락을 살짝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이런 썩을~~."

엄마는 다 듣고 있었던 것이다. 다 듣고 있으면서도 결코 수영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을 텔레비전의 화면 흔들림에 오버 멘트로 반응을 보임으로써 일축했다.

하지만 그날은 유난히도 더웠다. 삼복에도 가끔 내복을 입으시던 그 아버지도 오늘만은 벌써 세 번이나 등목을 하셨고, 몇몇 어른들도 벌써 더위를 식히기 위해 바닷가로 내려가셨다. 최대한 애처로운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봤다. 그리고 가장 안쓰러운 표정으로 벽에 기댔다. '더위 먹은 표정!' 내 옆으로는 오빠와 동생도 엄마의 허락을 기다리며 머리를 기대 왔다.

저 빨간통은 어디에다 쓰는 물건인고?

두 평도 안되는 방에 인간 보일러가 다섯 대에 한창 열이 오른 슬레이트의 그 열기까지 고스란히 쏟아지다 보니 엄마 역시 무진장 더웠던지 서서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그리고는 잠시 뒤 우리 삼형제를 불러내셨다.

'아, 드디어 우리도 수영을 할 수 있구나…. 입술이 새파래지도록 돌멩이로 까먹은 꾸적 때문에 입에서 신물이 넘어오도록 바닷물에 푹 절일 수 있겠구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쁜 마음으로 뛰어나갔다.

그런데 마당 한가운데 덩그마니 놓여진 빨간 통 세 개에 우리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엄마는 땀을 삐죽삐죽 흘리시며 빨간통 세 개에 각각 바닷물을 퍼다 채워놓으셨다.

제일 큰 통에는 오빠가, 조금 작기는 하지만 그래도 멀쩡한 통에는 동생이, 그리고 나는 깨진 부위를 불쏘시개를 달궈서 구멍을 뚫어 얼기설기 엮어서 물이 줄줄 새는 통에 들어갔다. 아쉬운 대로 시원하긴 했다.

하지만 가장자리가 깨어진 내 통은 물이 금세 바닥을 보였다. 엄마는 두어 번 바닷물을 더 길어다 주셨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서 숨쉬는 일도 귀찮을 만큼 더운 날에 아무리 지척에 있는 바다라지만 몇 번을 종종 걸음치며 퍼온다는 건 엄마로서도 힘이 드셨던가 보다.

마지막 수단으로 엄마는 그토록 아끼시던 민물을 부으시더니 창고로 달려가셨다. 그리고는 소금을 한 바가지 퍼오시더니 바닷물과 똑같이 만들어주시겠다면서 소금을 풀어 휘휘 저어주셨다. 나는 마치 배추가 된 것 같았다. 채 녹지 않은 소금들이 엉덩이 밑에서 꿈틀거렸다. 결국 환상적이어야 할 수영은 빨간통 안에서 허무함으로 마감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니 엄마가 그토록 수영을 못하게 했던 이유가 다름 아닌 사랑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바닷물에 빠져 몹쓸 일이라도 당할까봐, 수영을 해도 갈아입을 여분의 옷가지도 없어 다 큰 아이들을 벗겨 놓아야 할까봐, 아침에 빨아 놓은 그나마의 옷 한 벌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셨던 것이다.

그리고 몸을 헹궈야 할 민물을 그 더위에 샘까지 리어카를 끌고가서 끌어올 그 어린 손들이 불쌍해서 엄마는 그토록 여름이 되면 진저리를 치고 바닷가 일번지에 자리잡은 그 탯자리에 그토록 치를 떨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했던 수영 중 유난히 더웠던 여름날 엄마가 바닷물을 손수 길어다 채워 주신 그 빨간통에서 했던 수영이 가장 행복했던 수영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날은 가장 돌아가고픈 반나절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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