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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이나 한 번쯤 찍어둠직한 가족 사진. 이렇게 단란해 보이지만 사진 속의 남자 천원만은 기회만 있으면 다른 여자에게 한 눈을 판다.
어느 집이나 한 번쯤 찍어둠직한 가족 사진. 이렇게 단란해 보이지만 사진 속의 남자 천원만은 기회만 있으면 다른 여자에게 한 눈을 판다. ⓒ KBS
섹스 강사로 변신했던 톰 크루즈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매그놀리아>나 배꼽 옆 장미 한 송이가 먼저 떠오르는 <아메리칸 뷰티>는 비슷한 주제를 담고 있는 영화들이다. '가정의 붕괴'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혼과 새로운 만남이 일상적인 미국에서도 가정의 붕괴는 개인에게도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문제다.

가족주의가 지배적 사회 이념인 우리나라에서 '이혼', 즉 '가정 해체'는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최근 이런 가정의 붕괴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속속 나오고 있다. 좀 지난 영화 <바람난 가족>이나 현재 화제의 중심에 있는 영화 <외출>, 그리고 문영남 작가의 일련의 드라마 <애정의 조건> <장밋빛 인생> 모두 가정 해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불륜'이라는 코드로 흥미를 돋우자는 게 아니라 진지한 어조로 가정 해체를 문제 삼고 있다.

안전해 보이는 가정이 사실은 모래성으로 지어져 언제 무너질지 모르고, 아내와 남편 사이 또한 '헤어지면 남'이라는 말처럼 아주 섬약한 끈으로 연결된 불안하기 그지없는 관계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주장이 보편적이지는 않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정을 견고한 성으로 생각하고 부부간은 1촌보다도 가까운 무촌으로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런 일반적 주장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근거 없는가를 깨닫게 된다. 그냥 이유도 없이 무턱대고 부부간은 아주 단단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부모 자식 사이처럼 혈연으로 연결된 그런 관계도 아닌 마당에 이성적인 느낌도 없다면 도대체 무슨 근거로 가깝다고 주장해왔을까?

튼튼한 동아줄이라고 생각하는 건 자식이다. 자식을 통해 연결된 끈은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그 자식이 사라지자 금방 허물어지는 모래성이었다. <바람난 가족>에서는 이미 황폐해진 관계가 자식 때문에 간신히 버티다가 그 매개체가 사라지자 험악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내 툭 끊겨버렸다. <장밋빛 인생> 또한 관계에 대한 드라마다. 가정의 중심인 부부관계를 문제 삼고 있다. 불륜이 등장하지만 불륜은 주제를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자기 가정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맹순(최진실 분)이 남편 반성문(손현주 분)의 진심을 알게 되고, 사실은 자신이 거짓의 평화를 즐기고 있었음을 자각하는 장면은 맹순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살 떨리는 시간이었다.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도 금방 자리에서 일어서지를 못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강한 펀치였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수작거는 모습을 기둥 뒤에서 오열하며 지켜보는 맹순이.
남편이 다른 여자와 수작거는 모습을 기둥 뒤에서 오열하며 지켜보는 맹순이. ⓒ KBS
지하 주차장서 맹순의 남편 반성문이 내연녀 오미자(조은숙 분)에게 진심을 털어놓는다. '내가 사랑하는 건 바로 너다. 나에게 여자는 너뿐이다. 집 사람은 애들 때문에 사는 거지 이미 정 떨어진 지 오래'라고 말한다. 반성문의 아내 맹순이는 기둥 뒤에서 자기 남편의 수작을 다 지켜보게 되고 강한 배신감에 치를 떤다.

신뢰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아니 벌써부터 신뢰라고는 없었지만 맹순이만 맹하게도 그걸 모르고 있었다.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고 혼자 애쓰는 게 안돼 보인다'며 남편에 대해 신뢰감과 연민의 정을 갖고 있었다. 이는 가족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감정인 것이다. 혼자만 이렇게 가족의 도리를 다하고 있을 때 반성문은 다른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아내를 떼어내야 할 혹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맹순이는 참으로 평화로웠다. '속 안 썩이는 남편 만난 걸 운 좋은 줄 알라'는 시어머니의 유세까지 들어가면서 자기 남편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가정을 지키고 가족을 생각하는 것 외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남편과 자신은 가족이라는 강한 끈으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했다. 그 끈은 부모와 자식 형제간의 그것처럼 결코 끊을 수 없다고 믿었었다.

맹순에게서 남편 반성문은 이성적 존재라기보다는 그야말로 가족이었다. 흉허물 없는 가족이었다. 이런 가치관을 갖고 있었기에 남편의 헤어진 속옷을 다시 기워 입는 등 아무렇게나 옷을 걸치고, 외모에 신경도 쓰지 않았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해도 "자식, 까불고 있어"하면서 남동생에게 하듯이 누나처럼 포용할 수가 있었다.

결혼하고 10년이 되고 아이가 둘 정도 생기면서 아내와 남편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가족이 되고, 이게 우리의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을 매개로 해서 연결된 이 가족이라는 관계는 혈육처럼 결코 끊을 수 없는 완고한 관계라고 맹순이처럼 믿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안주하고 있다.

그런데 <장밋빛 인생>이 던져준 충격은 그 연결고리가 사실은 매우 불안하다는 데 있다는 걸 우리에게 확인시켜준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는 현실적 설득력을 갖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세계 2위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아내와 남편은 이성적 만남이지 결코 가족이라는 '혈연' 유사한 관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남남이 만나 이뤄진 '가족'이 도대체 무엇일까? 이성적 끌림이 있어 만났다가, 그 느낌이 사라지면 바로 헤어져버리는 미국식 가정은 너무 불안하고, 누나나 언니나 엄마처럼 느껴지는 우리나라식 가족주의 또한 불안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이성적 만남이라는 원래 가정의 형성에서 다소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우리나라식에서 미국식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가족'이 굴레가 아니라 행복을 주기 위한 만남이 되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떤 가치관 안에서 묶여야 할까? <장밋빛 인생>은 진지한 의문을 제기한 드라마였다.

여름동안 판타지의 세계를 즐겼었다. 이제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곧 낙엽도 떨어지겠고 정신을 차리고 판타지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와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런 시점에 현실을 반영한 드라마가 나온 게 반갑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판타지도 재미있고 즐겁지만 현실적인 드라마도 나름의 문제의식이 있어서 좋다. 드라마시장이 이렇게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그동안 그렇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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