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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노는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자 눈을 가린 큰딸과 몸을 가린 작은 딸
신나게 노는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자 눈을 가린 큰딸과 몸을 가린 작은 딸 ⓒ 한나영
사실 이런 아이들이 내게는 실험 대상이었다. 학원이나 과외 교육 없이 그야말로 ‘순수하게’ ‘순진하게’ 학교 교육만 받은 아이들이 받아올 성적표가 어떠할 것인가는…. 아이들은 ‘그런 대로’ 했다.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반에서 1, 2등을 한 적도 있었지만 대개는 중상위 정도의 성적을 유지했다. 욕심을 부리자면 아이들에게 닥달을 할 정도의 성적이었다.

영어 성적도 그냥 봐줄만했다. 두 아이들은 학교에서 하는 공부만 하면서 숙제나 시험을 볼 때면 내게 물어봐서 해결하는 정도의 공부만 했다. 이웃에 사는 큰딸 친구가 원어민으로 구성된 영어 전문학원에서 ‘미국 교과서’로 일주일에 세 번씩 미국식 수업을 들을 때에도 우리 애는 자유롭게(?) 살았다. 유학을 준비하는 아이도 아닌데 영어를 열심히 하는 그 친구 엄마에게 언젠가 물으니 “국제화 시대에 영어는 기본, 필수!”라고 대답하여 무식한 나를 책망하기도 했다.

하긴 작년 겨울 방학에 만난 초등학생인 서울 조카 역시 학원에서 ‘원어민 회화’와 ‘토익’을 공부한다고 했다. “초등학생인데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동서에게 물으니 서울에선 그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게 ‘보통’은 아니라는 걸 나는 잘 안다. 이런 식의 유별난 우리 나라 영어 사교육은 미국에서도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워싱턴 근처의 페어펙스에서 내가 만난 30대 초반의 한 젊은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 온 건 참 잘 한 것 같아요. 그동안 고생은 좀 했지만요. 오랜만에 한국에 나가 봤더니 아주 난리더군요. 영어 때문에요. 서너 살 되는 꼬마들까지 영어를 배우려고 학원에 다닌다면서요? 비싼 돈을 들여서요. 그러니 우리 애들은 얼마나 다행이에요. 여기서 ‘거저’ 배우고 있으니까요.”

영어 공부 좀 하라고 하니 수학책만 잔뜩 빌려왔다
영어 공부 좀 하라고 하니 수학책만 잔뜩 빌려왔다 ⓒ 한나영
하여간 한국에서 그렇게 유난을 떨지 않고 영어를 배웠던 아이들에 대해 솔직히 걱정이 앞섰는데 이곳 미국에 와 보니 아이들은 그런 대로 했다. 학교 선생님에게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말하기’였다.

아이들과 함께 다닐 때면 늘 내가 곁에 있어서 저희들이 따로 말할 일은 없었지만 가만 보니 못하는 것이었다. 영어듣기처럼 학교에서 따로 시험을 보는 일도 없고, 수업 시간에도 말하기를 하는 일이 거의 없었을 테니 훈련이 전혀 안 된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따로 영어 회화를 시켰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영어 수업 시간에도 독해와 문법 위주로 공부를 했을 것이고 잘해야 테이프로 듣는 정도가 고작이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영어 수업이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학생들에게 영어로 질문하고 대화를 나누는 선생님도 많이 계실 것이다. 하지만 ‘시험 지상주의’에 빠져있는 우리 나라 교육 특성상, 시험에도 안 나오는 영어 말하기를 훈련하는 선생님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들 역시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회화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할 것이고, 또한 유창하게 영어 회화를 할 수 있는 선생님 역시 많지 않아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영어회화를 위해 따로 사설 학원을 찾게 되고 기왕이면 원어민 교사를 원하다 보니 ‘무늬만 원어민’인 무자격자가 영어 교육을 망쳐놓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 것이다.

공교육에서 영어 말하기를 가르칠 수는 없을까. 학생들이 자유롭게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의사 표현을 하게 할 수는 없을까. ‘누가 뭐래도 민사고 특목고 안 가고라도’ 그런 정도의 말하기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영어를 처음 배우고 난 뒤 벌써 강산이 몇 번 변했지만 아직도 영어 말하기는 학교 담장 밖 몫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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