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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이외에 강연 등을 통하여 경제적 수입을 올리는 대학교수들. 그러나 대부분이 경제 관련의 강좌들이다.
월급 이외에 강연 등을 통하여 경제적 수입을 올리는 대학교수들. 그러나 대부분이 경제 관련의 강좌들이다. ⓒ 김대오
개혁 개방 이후 중국에서 지식인의 위상은 과연 달라졌는가? 중국의 지식인 논쟁은 뜨거운 감자처럼 늘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1990년대 초 소설가 왕슈어(王朔)는 중국 사회의 위선은 불의와 부패와 타협하면서 겉으로는 깨끗한 척하는 지식인의 위선에서 비롯된다는 독설을 통해 지식인 논쟁에 불을 지폈다. 지식인이 갖고 있던 기존의 권위와 위선을 정면으로 공격한 왕슈어는 ‘부활한 홍위병’으로 불리며 기존의 제도와 질서에 대해 도전하는 ‘왕슈어 현상’을 만들기도 하였다.

또한 상하이 변호사사무소소장 궈궈딩(郭國汀)은 2003년 2월 대기원(大紀元)에 실은 <중국의 지식인은 죽었다> 라는 제하의 글에서 중국의 낙후는 지식인의 비판적 기능을 수용하지 않는 정치체제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신좌파로 불리는 칭화대학의 쾅신니엔(曠新年)교수는 1989년 6.4 톈안먼(天安門)사건 이후로 중국의 지식인들은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다)의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이는 성숙되지 못한 비판의 표출로 크나 큰 희생과 부작용이 있었다는 뼈저린 반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현실을 직시하고 또 비판하며 정치적 고민과 연구들을 계속하고 있지만 아직 그 요구들을 소리 높여 외칠 때는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은 지식인을 ‘지식분자’라고 부른다. ‘분자’라는 말은 화학적인 개념에서처럼 어떤 운동이 지속되는 상태에 있다는 의미이다. 즉 지식분자는 계급이 고정되지 않고 언제든 반동, 우파, 파괴분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계심과 회의적인 인식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현 후진타오체제하에서도 별 다른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늦가을의 매미처럼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다.(금약한선 : 禁若寒蟬) 민주와 자유 등 정치적인 국사(國事)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을 강요당하며 그저 경제적 대우와 사회적 지위가 조금 개선되는 것에 안도하며 멀리 있는 여름이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차이나]는 그날 그날의 중국 근현대 소사(小史)를 전하며 중국 역사 속의 오늘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국정넷포터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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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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