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주한미군의 필요성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해야 할 가장 큰 이유는 동맹의 비용이 편익을 추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데 있다. 동맹의 비용과 편익을 계량화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지만, 21세기의 주한미군은 '안보'를 포함해 한국에게 너무 많은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주둔론자는 북한의 위협이 여전히 존재하고, 중국 등 주변국가들의 위협에 독자적인 대처가 불가능하며, 안보비용 절감을 통해 경제성장을 발판들 마련해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이 없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미국과 동맹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한반도의 통일 과정과 통일 이후의 안보를 지킬 수 있는 방책이라는 점도 자주 거론된다.
이와 같은 주한미군 주둔론의 근거들은 일정 정도 논리적·현실적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대체로 '주한미군의 철수=안보불안'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가정에 바탕을 둔 것이다. 또한 주한미군이 갖고 있는 동북아 안정화 효과 못지 않게 불안정 요소도 크다는 점을 간과한 측면도 있다. 특히 주한미군 주둔이 한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면, 미군 주둔의 근본전제는 재검토될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 위협대응형에서 위협초래형으로
먼저 안보 위협의 측면이다. 한미동맹이 미국이 말하는 새로운 위협에 대처하는 방향으로 가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주한미군이 재편되면, 한국은 감당하기 힘든 안보 위협에 봉착할 수 있다. 얼마전 논란이 되었던 '전략적 유연성'도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이나 인권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군사적인 조치를 취하면, 한국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북-미간의 군사적 긴장이나 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이미 선제공격 대상에 북한을 포함시킨 부시 행정부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작전계획 5026과 5029를 마련한 상태이고 주한미군 재배치와 전력증강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레온 라포트 주한미군 사령관은 8월 29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은 새로운 기술과 전략을 바탕으로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주한미군 재편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 한반도는 상당한 수준의 전쟁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또한 주한미군 기지 및 전력 재편이 마무리되어 한국이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전초기지화가 될 경우, 한국은 중국의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점 역시 중요하다. 한국이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전초기지화가 된다는 것은, 한국이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 체제에 편입되고 미국에게 기지 사용권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미국은 중국과 가장 인접한 남한의 서남부에 군사력을 집중시키면서 수원-오산·평택-군산-광주를 잇는 'MD 벨트'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중국은 이를 자신에 대한 적대 행위로 간주하고 한국을 공격 대상에 포함시키게 될 것이다. 한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주둔하고 있다는 주한미군이 한국에게 감당하기 힘든 안보 딜레마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고,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지정학적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가장 요구되는 지혜는 불필요한 위협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미동맹이 '위협 대응형'에서 '위협 초래형'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되물어봐야 한다. 이는 '안보'를 위해서는 다른 가치의 손실을 일정 부분 감수해야 한다는 주한미군 주둔론의 근본 전제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폭등하는 주한미군 관련 비용
주한미군 주둔에 따른 '금전적 비용'도 커지고 있다. 주한미군 주둔이 경제적으로 남는 장사라는 주장의 가장 큰 근거는 약 140억 달러에 달하는 주한미군의 장비 가치와 함께 미국이 주한미군 주둔을 위해 매년 약 35억 달러를 쓰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에는 주한미군 운영유지비 30억달러와 한국인 고용인 인건비를 비롯해 방위 분담금에서 미국이 지출하는 비용 3~4억달러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비용은 미군이 한국에 있든, 일본에 주둔하든, 미국 본토에 있든 치러야 할 비용이다. 인건비 등 미군 1만명을 운영유지하는데 대체로 10억 달러 정도의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 비용으로 매년 20억달러 안팎을 지원해주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인 고용원 인건비, 미군 가족 주택자금, 식료품 구입비 등으로 쓰이는 방위 분담금, 임대료로 계산되는 미군 공여지, 조세 감면, 미군 시설 운영유지비 등이 포함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방위 분담금에서 한국이 부담하는 액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방위 분담금은 분담금 제도가 처음 도입된 1991년 1억5000만 달러를 시작으로 꾸준히 늘어오다가 IMF 이후 등 경제위기로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다가 2001년부터 다시 급등하기 시작해, 2001년 4억4000만 달러, 2002년 4억9000만 달러, 2003년 5억4000만 달러, 2004년 6억2000만 달러에 달했고, 2005년에도 약 7억 달러 안팎이 소요되고 있다.
한국의 국방비 인상액의 상당 부분이 방위 분담금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91년부터 2003년까지 방위비 분담금 증가율이 686%로 국방예산 증가율 135%의 5배에 달했다는 것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밖에도 주한미군 재배치 비용,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 이라크 파병 비용, 한미연합방위체제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도입하고 있는 무기와 장비 등을 고려해보면, 주한미군 주둔이 비용적 측면에서도 우리에게 '남는 장사'라고 말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앞으로도 미국이 주한미군 재배치 비용을 한국에게 전담시키고, 주한미군 주둔비의 75%를 한국에게 부담시킨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동맹 유지 비용의 한국 측 부담은 계속 늘어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주한미군과 기형화된 한국군
주한미군이 한국군을 비롯한 엘리트 집단에 미치고 있는 '정신적 영향'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무형의 비용이다.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었고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라는 지위는 군을 포함한 한국의 엘리트 집단의 거의 맹목에 가까운 대미 의존을 가져왔다.
이는 두 가지 차원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하나는 "미국 없이는 안 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첨단무기 중독증"이다. "미국 없이 안 된다"는 맹목적 의존 심리는 '정당성의 여부'와 관계없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서 한미동맹을 유지해야 한다는 근거로 작용하는 한편,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전략을 기획하고 작전계획을 수립해보려고 하는 노력을 근본적으로 제약해왔다.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미국제 무기체계를 구경하다가 걸린 "첨단무기 중독증"은 가용 자원과 현존 무기체계를 가지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미국이 갖고 있는 무기를 가져볼 수 있을까'라는 병리 현상을 만들고 말았다.
이러한 병리적 현상은 군의 사기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전술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한국군이 독자적인 전략 기획 및 작전계획 수립 역량의 부족으로 절름발이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북한군보다 좋은 무기로 무장하고 교육훈련도 잘 받으며 영양 상태도 월등히 좋은 한국군이 미군 없이는 북한에게 질 것처럼 '세뇌'를 받아온 현실은, 가장 중요한 무형의 전력이라고 일컬어지는 군의 사기를 저해시켜 왔다. '주한미군이 한국군을 응석받이로 만든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다른 수단에 의한 안보 전략을 마련하는데 제약을 가해왔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이는 주한미군 주둔의 '기회비용'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 기회비용은 두 가지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는데, 하나는 국방이고 다른 하나는 외교이다.
먼저 국방과 관련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막대한 주한미군 주둔 비용과 대미 의존적 사고는 한국의 독자적인 국방 역량 확보를 어렵게 해온 물질적·정신적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예를 들어 1991년부터 14년 동안 미국에게 지원한 직·간접적인 비용은 300~400억 달러 정도로 추산할 수 있는데, 이 비용을 독자적인 군사력 건설에 투입했다면 현시기 한국군의 전력구조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또 한가지 문제는 외교의 문제인데, 안보가 국방과 외교라는 두 가지의 수단을 통해 달성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안보는 국방, 특히 한미동맹에 의존하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외교의 역할과 가치를 줄어들게 한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이와 관련해 김대중 정부가 외교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과 주변국과의 균형관계를 추진했을 때, 한미동맹에 균열이 발생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외교의 역할이 커지면 국방의 역할이 축소되는 경향이 있는데, 한미동맹이 안보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의 현실에서 외교의 역할 증대가 한미동맹의 긴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위와 같은 주장이 주한미군이 당장 철수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점차 분명해지고 있는 것은 주한미군의 득과 실을 비교할 때, 갈수록 '실'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주한미군 주둔 60주년을 맞이한 우리에게 던져진 가장 큰 숙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