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 서울대학교에서는 안 쓰는 물건을 어떻게 처리할까.
성능이 떨어지는 구형 컴퓨터, 프린터, 스캐너와 OHP. 못 쓰는 건 아니지만 낡아서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게 된 책장과 책상, 의자들. 학교 마크가 들어간 여러 가지 소품과 매점에서 안 팔린 가방, 체육복, 운동화들. 이밖에도 버리기에는 아까운 쓸 만한 물건들을 우리 대학에서는 어떻게 처리할까.
여러분은 혹 관심이 있으신지…. 별로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미국 대학의 어느 큰 '장터'를 보기 전에는 솔직히 관심이 없었다.
대학장터에 지역주민이 귀한 손님?
미국의 제 4대 대통령이자 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메디슨. 그의 이름을 딴 JMU(James Madison University)는 인구 5만이 채 안 되는 버지니아주의 '해리슨버그'에 있는 공립 대학이다.
1만5000여명의 학생이 있는 JMU는 이곳 해리슨버그의 '핵'으로 도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JMU가 방학을 맞으면 도시가 공동화되어 삭막한 느낌마저 든다고 하니 JMU는 지역 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새 학기를 앞두고 이곳 해리슨버그에 큰 장이 열렸다. JMU가 해마다 벌이는 연례 세일에는 학생과 교직원뿐 아니라 주민들도 참여한다고 한다. 남편에게도 이번 '세일'을 알리는 이메일이 학교에서 왔고 시내 곳곳에도 이번 행사를 알리는 전단이 많이 붙었다.
"잘 고르면 제법 쓸 만한 것들을 살 수 있을 거예요. 7시 반부터 한다고 하니 7시까지 가보세요."
JMU에 재직 중인 최 교수의 말을 듣고 우리는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까지 쳐두고 이 날을 기다렸다. 혹시 길을 헤맬까 싶어 세일 전날에는 미리 지도를 가지고 길을 연구(?)하기도 했다.
이번 세일은 학교 캠퍼스가 아닌 시내 JMU 창고에서 벌어졌다. 큰맘 먹고 나선 우리 가족들은 오전 7시도 채 안 되어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열해 있었다. 7시 30분에 시작된다고 했지만 벌써 많은 '부지런한 새'들이 이곳을 찾은 것이었다.
꼭두새벽부터 기다릴 가치가 있다!
우리도 일어나자마자 서둘러서 왔는데 그렇다면 맨 앞에 있는 사람은 도대체 몇 시에 왔을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길게 늘어선 줄에서 빠져나와 앞으로 나갔다.
"지금 새치기하는 거 아니에요. 취재하는 거예요."
말없이 그들에게 동의를 구한 나는 맨 앞까지 용감하게 진출하여 결국 궁금증을 풀었다.
"도대체 몇 시에 왔기에 이 많은 사람들을 제치고 1등을 한 거예요?"
"(활짝 웃으며) 어제 이곳에서 잤어요."
"뭐라고요? 여기에서 잤다고요? 오 마이 갓!"
"큭, 아니 농담이에요. 새벽 5시에 왔어요."
"와우. (그렇게 할 일이 없어요?) 그런데 이번 세일이 그렇게 잠 안자고 올 만한 가치가 있어요?"
"물론이에요. 내가 필요한 것들을 아주 싸게 살 수 있으니 그 정도는 투자할 만하죠. 문이 열리면 내가 제일 먼저 들어가니까 필요한 물건을 다 살 수 있잖아요."
"저는 한국에서 온 인터넷신문 시민기자예요, 그런데 이번 세일에 대해 기사를 쓸 작정인데 당신 사진도 넣으면 좋겠어요. 괜찮아요?"
"Sure!"
제이콥이라는 '1등 남자'는 뒤에 선 남자와 함께 즐거운 표정으로 포즈를 취해 준다.
느긋하게 시작하는 결전의 순간?
7시 20분이 되자 주황색 조끼를 입은 관계자가 나와서 '전단'을 한 장씩 돌리며 이번 세일에 대해 설명을 했다.
"모든 품목에는 흰색과 노란색 태그가 붙어 있다. 만약 여러분이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거기 붙은 노란색 태그를 떼 가지고 와라. 그러니까 노란색 태그가 없는 물건은 이미 팔린 거다.
그런 다음 나같이 주황색 조끼를 입은 사람에게 와서 송장(送狀)을 작성해라. 그리고 데스크에서 물건값을 치르면 된다. 오렌지 동그라미가 붙은 품목은 무조건 50센트다. 여러분 모두에게 행운이 있길 바란다."
결전(?)의 H-아워를 기다리는 주민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내가 사고 싶은 물건을 싸게 건질 수 있을까?'
드디어 7시 반! 문이 열렸다. 우리 생각과는 달리 사람들은 느릿느릿 창고를 향해 걸어간다.
"어, 막 뛰어갈 줄 알았는데 천천히 가네."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큰딸도 한마디 거든다.
언젠가 우리나라 백화점에서 세일할 때의 일이다. 꼭 사고 싶은 싼 물건이 있어서 줄 서서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문이 열리자마자 무슨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돌진'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냥 발길을 돌린 적이 있었다. 그런 경험을 했던 나로서는 느긋하게 차례대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일찍 들어간 사람들은 분위기를 파악한 뒤 자기가 필요한 물건 쪽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음악대학이 있어선지 악기들도 종류별로 많다. 목관악기, 금관악기, 그리고 타악기들이 있는데 관심 있는 사람들은 우선 노란 태그부터 떼고 본다. 어떤 사람은 손등 위에 수많은 노란 태그가 붙어 있다. 아마 중고 악기상이라도 되는 모양인지 아예 싹쓸이를 하는 것 같다.
우리 대학도 이런 알뜰시장 열었으면...
원래 우리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져 당장 필요한 책장과 소파를 본 뒤 괜찮으면 노란 태그를 떼 가지고 와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쓸만한 것은 먼저 온 사람들에 의해 이미 선점이 된 탓에 많이 살 수는 없었다. 우리가 산 것은 아이들 운동화 두 켤레($20)와, 소파($7), 그리고 바인더 두 개($1)였는데 모두 합쳐서 28달러를 줬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알뜰시장이 많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규모가 큰 대학이라면 모르긴 해도 함부로 버려지는 쓸만한 물건들이 꽤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모아서 학생과 주민들에게 저렴하게 판다면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자원 재활용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실제로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