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골문의 발견과 연구 역사는 길지 않지만, 짧은 기간에 초유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번에 출간한 <갑골문해독>은 어떠한 책입니까?
"1990년부터 갑골문 해독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미 번역하여 출간한 <중국갑골학사>는 갑골문 전반적인 연구 개황과 상황을 설명한 책입니다. 발견에서부터 연구 과정, 보관, 다른 학문과의 연계성 등이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어 갑골문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기초자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갑골문에는 어떠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실제로 우리에게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갑골문을 읽을 줄 알아야 하는데 탁본을 보여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000년 전의 자형을 볼 수 있게 하는 것, 그리하여 그 글자가 현재에는 무슨 글자로 변모하였는가를 알게 해주는 것, 그리고 이 내용을 우리말로 번역해 보는 것입니다. 자해(字解)로 글자 한 자 한 자를 설명하고, 번역하고, 해설을 붙여서, 아울러 전해 주고 싶은 내용 등 관련된 사항을 해설에 붙여서 저술한 것입니다."
- 갑골문 자해(字解)가 쉽지 않을 텐데, 현재 완전하게 해석된 갑골글자는 어느 정도 됩니까?
"갑골문은 현재 16만 편 정도가 발견되었고, 그 중에서 약 5천여 자의 글자를 찾아내었으며, 해석 가능한 글자 수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다르지만 약 1천여 자 정도 됩니다. 고석(考釋)된 자가 그리 많지는 않으나 갑골문을 해독하는 데 큰 어려움 없이 풀이해 갈 수 있습니다. 갑골문에는 네 단계의 기록 체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단계가 생략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어떠한 갑골문도 이 네 단계 중에 한 단계는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1천여 자를 알면 갑골문 해독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 <갑골문해독>의 개요와 구성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갑골문합집(甲骨文合集)>에 수록된 4만2천 자 중에서 질이 좋고 자료적 가치가 있으며, 탁본이 선명한 것을 골라서 400편을 질병, 전쟁, 농업, 천문, 역법, 교육 등 22개 항목으로 나누어 수록했습니다. 글자풀이는 약 800자 정도 됩니다.
그렇다면 내용은 어떠한가를 생각해 볼 수 있겠는데, 갑골문 가운데 완벽하게 기록된 것은 '무엇을 했는데, 결과가 어떠하다'는 것까지 나옵니다. 가령 왕비가 아이를 낳은데 딸을 낳겠습니까, 아들을 낳겠습니까 묻는 것이 나와요. 언제 점을 쳤는데, 며칠에 낳으면 딸을 낳고, 며칠에 낳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점괘가 나왔어요. 그러면 예를 들어 열흘 후에 아들을 낳는다고 하면 열흘 후에 가서 확인을 해야 하는데, 과연 열흘 후에 아들을 낳았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처럼 갑골문은 단계별로 기록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갑골문해독>의 저술 동기, 출간 과정을 말씀해 주십시오.
"한국 학계는 물론 관심 있는 사람들이 갑골문을 읽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저술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갑골문 관련 학문 연구가 활성화될 수 있으며, 서예, 고고학, 한자학, 천문, 기상, 건축, 한의학 등 관련 분야에서도 갑골문 내용이 참고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상왕은 약 30여 종의 질병을 알았습니다. 갑골문에 기록된 내용들을 살펴보면 머리, 배, 다리, 발, 눈, 귀, 코, 혀, 치아, 마음, 기생충 감염 등 여러 가지 병에 대한 기록과 함께 심지어 치료 방법까지 나옵니다. 그러한 기록은 한의학 분야에서 관심과 참고가 될 만하다고 봅니다. 이 책은 1990년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더 좋은 도판을 찾아 교체하고, 추가하기도 하는 등의 교정 과정을 거쳐 출간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 | | 양동숙 교수 | | | | 저자 양동숙(梁東淑) 교수는 중화민국 국립대만사범대학 중문과를 졸업하고, 중화민국 국립대만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성균관대학교에서 중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문과대학장이다.
저서로 <갑골문해독> 외에 <한자에 세상이 담겼어요> <내 몸에 한자가 숨었어요>, 역서로 <중국갑골학사>가 있으며, <중국문자의 형성과 갑골문의 표의성> <중국청동기의 기원> <서주갑골문의 고찰> <갑골문으로 본 상대 무정비 부호> <갑골문에 나타난 상대의 천문학>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 | | | |
- 당시 귀갑(龜甲)이 진상되었다고 하는데, 갑골문을 기록하기 위한 용도로 진상된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용도로도 쓰였습니까?
"상나라 당시 남방의 제후국들은 거북이를 잡아서 진상을 했습니다. 뼈는 목축을 통해서 자급하였고요. 거북이의 복갑(腹甲)과 소의 어깨죽지 뼈에 청동칼로 문자를 새긴 것이 갑골문입니다. 거북이는 귀갑(龜甲)이라고 하고, 소뼈는 우골(牛骨)이라고 하여, 각 한 자씩 따서 갑골(甲骨)이라고 명명한 것이지요. 진상되어진 귀갑, 골판들이 다른 용도로 쓰인 기록은 없어요. 갑골문을 새기기 위한 용도로 진상되어진 것입니다."
- 그렇다면 기록의 필요성,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았으며, 당시에 이미 모든 상황에 대한 기록이 자유자재하였다는 의미가 될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한 문장이 100자가 넘는 기록도 있을 정도이니까요. 한자의 태동을 약 1만 년으로 잡고 있고, 이렇게 완벽하게 기록된 것은 약 3천 년 전입니다. 갑골문 이전에는 문장으로 기록된 것은 찾지 못했어요."
- 갑골문자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갑골문자들을 보면서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이 의미를 이렇게 표현했을까 놀랄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 '기른다'를 어떻게 쓰는가를 살펴보면 재미있어요. '기른다'는 것은 '기를 육(毓, 育)' 자인데, 그것을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것'으로 표현했어요. 꿇어앉은 여인 아래 아이가 거꾸로 있고, 그 밑에 양수가 떨어지는 형상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것을 기르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낳다'는 어떻게 표현했는가 하면, '자궁에서 손으로 아이를 받아내는 것'의 형상으로 하였는데, '명(冥)' 자입니다. 그것은 이후 '어두울 명(冥)' 자로 바뀌었어요. 당시 사람들도 어머니는 아이를 기른다는 생각과 연결지은 것이지요. 이처럼 당시에 삶에 대한 명확한 사유체계가 있었고, 또 그렇게 사물을 바라본 것이지요. 한마디로 갑골문자는 고대 인간의 사유 체계를 알려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갑골문자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합니다."
- 갑골문 서체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갑골은 딱딱하기 때문에 그 표면에 글자를 새기기 위해서 청동과 같은 단단한 칼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갑골문자는 직선적이고 가늘며, 다양한 형체의 특징을 지닙니다. 또한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사물의 모양을 그대로 묘사하여 문자화했기 때문에 회화적 요소가 강하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갑골문 서체의 대표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곧고 힘찬 아름다움, 대칭적인 아름다움, 상형적인 아름다움, 자연스러운 배치미, 정연한 네모의 아름다움으로 들 수 있습니다. 특히 갑골문은 왕실 사관들에 의해 쓰여졌으므로, 각자의 필세에 따라 특징은 다르지만 매우 훌륭한 서예가요 전각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답게 묘사했습니다. 따라서 갑골문 그 자체가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하겠습니다.
갑골문 원문들을 살펴보면 대소, 소밀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지요. 물론 후기로 갈수록 세련미가 있고, 엄격, 정련화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숙된 분위기가 서체에도 반영되어 문단, 행간, 필획이 분명하고 정돈되었어요. 반면 초기에는 칼의 운용이 경쾌하고 필획의 자유분방함 중에도 위엄 있고 강건하며, 큰 글자와 작은 글자들 각각에 필세의 오묘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 현재의 우리 나라에서 갑골문이 지닌 의미와 가치는 무엇입니까?
"현재 중국은 간체를 쓰고 있는데, 간체는 자원(字源)과는 거리가 멀어요. 앞으로 시간이 더 흐르게 되면 중국 사람들은 한자의 근원에 대해 어둡게 되는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나라가 한자의 근원 모색에 더 유리해질 수 있어요. 한국이나 일본이 중국보다 한자에 대한 조예가 더 깊어질 수 있을 가능성이 생겨난다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갑골문을 이해하고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 <월간 서예문인화> 9월호에도 송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