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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사랑하기 좋은 계절일까? 전방 부대의 아들이 그립고 홀로 식사를 할 남편의 어깨가 안쓰러우며, 집에 남겨 두고 온 딸아이가 염려되고 힘든 공부를 이겨내는 제자들의 근황이 그리운 걸 보면….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진 가을 기운이 외로움을 몰고 오는가 보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가을은 가르쳐 준다. 이렇듯 당연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며 홀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며, 사랑하지 않고 살아가기에는 너무 먼 길이다. 찬바람이 불기 전에 부지런히 짝을 짓는 물잠자리도 나비들도 짧은 가을이 생의 전부임을 아는 듯 교정을 수놓는다.
남편과 아내로 사이로 만난 그와 나는 20년이 넘은 결혼 생활에도 불구하고 주말부부로 지내온 시간으로 따진다면 같이 산 세월이 1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나에게 지상에서 허락된 단 한 사람으로 만났으니 그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늘 미안하고 부족한 아내의 자리.
먼 후일 언젠가 전원주택을 장만하고 강아지와 고양이를 기르며 텃밭을 가꾸고 책을 읽고 시를 쓰는 낭만적인 노후를 생각하며 일이 먼저인 삶을 살아온 우리들. 자식들에게도 나중에 더 좋은 것을 해주리라 미루며 사랑의 표현을 자제하며 살아온 것 같아 조바심이 나는 계절. 늘 곁에 있을 것만 같은 가족들과 이웃들은 시간이라는 배를 타고서 세월의 파도에 밀려 내 곁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 왔음을 불현듯 느끼게 하는 것도 가을 탓일까?
교실 밖에서 이른 열매를 맺은 동백나무가 나를 보며 이야기를 걸어온다. '가을은 음미할 시간이 짧은 계절이라고. 그러니 미루지 말고 빨리 사랑하고 열매를 맺고 씨를 남기라고….' 추운 겨울에 붉은 가슴을 자랑하던 동백나무의 열매가 눈에 들어온 것도 이 가을에 달라진 점이다. 늘 볼 수 있는 열매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나무는 한 순간의 쉼도 허락하지 않고 할 일을 다 하고 서 있다.
닭 벼슬 같은 왕관을 자랑하는 키 작은 맨드라미도 부지런히 씨앗을 저장하느라 하루가 다르게 짧아지는 가을 해님에게 매달린다. 세찬 바람에도 제 몸 하나 부서지지 않고 열매를 위해 대지에 뿌리 박은 녀석의 옹골찬 기색이 참 대견하다.
가을은 나를 야단치고 불러 세우는 나무들과 꽃들의 아우성으로 귀가 먹먹해지는 계절이다. 대숲에 이는 잔바람마저도 그만 자고 일어나서 달님의 속삭임을 받아 적으라고 채근한다.
'겨울이 오기 전에 숙제를 마치라고. 가을이 전하는 사랑의 메시지를 한 글자도 빠뜨리지 말고 받아 적으라고. 사랑하기를 미루지 말라고….'
덧붙이는 글 | 가을이 일찍 찾아오는 산골 학교의 풍경을 전합니다. 서툰 사진찍기에 용기를 내본 첫 작품(?)을 올리는 부끄러움까지 담아 가을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