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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김철수.

같은 이름의 인연이 참으로 묘하다. 공교롭게도 영어 이름마저 '찰스'로 똑같다. 김철수 대표는 지난 3월 부사장에서 CEO로 전격 취임하면서 안철수연구소의 새 선장이 되었다. 주주총회 의장으로 물러난 안철수 전 대표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지 5개월째. '안철수'라는 그늘에서 벗어난 그의 홀로서기는 어떤 모습일까. 안철수 의장이 성공 벤처의 신화를 일궜다면 김철수 대표는 '세계 10대 보안 기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세계 10위를 향해

▲ 안철수연구소 김철수 CEO
ⓒ 월간 PC사랑
"국내 1위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글로벌 업체들과 맞붙어 싸워야지요. 세계 10위 보안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피할 수 없는 전쟁입니다. 성공 벤처에서 글로벌 회사로 거듭나기 위한 진통이 시작되었습니다."

김 대표는 취임 직후 해외 사업을 강화하고, 신기술을 개발하며, 조직을 다듬는 데 애를 썼다. 선장이 바뀌면서 걱정 어린 시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안연구소의 순항은 계속되고 있다.

올 상반기 결산 결과는 김 대표의 어깨를 한결 가볍게 해준다. 매출액은 175억3천만원, 영업이익은 63억7천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25.9%, 51.9%가 늘었다. 2005년 상반기 매출과 영업 이익은 상반기 기준으로 창사 이래 최대 성적이다. 영업이익률도 36.4%로 지난해 1분기 이래 6분기 연속 30% 대를 유지하고 있다.

"IT 경기는 어렵지만 안연구소는 올 상반기에도 매출과 이익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이는 온라인 보안 사업 호조, 해외 사업 성장 등 그동안 집중했던 성장 엔진에서 본격적인 성과를 거둔 덕분입니다."

숭실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김 대표는 한국IBM에서 18년간 영업 전선을 누볐다. 2002년 1월 안연구소 COO(최고운영책임자)로 스카우트되기 전에는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과 스탠포드 공대 벤처 비즈니스 과정을 거치면서 사업 감각을 키웠다. 실리콘밸리의 벤처 기업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안연구소에 들어와서 조직 개편을 단행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안연구소가 성공 벤처에 만족하지 않고 한 단계 높은 무대로 나아가려면 경쟁력 있는 구조로 거듭나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반발이 있었지만 변화의 필요성을 모두들 받아들이더군요."

성취욕이 강한 초록색 리더십

1995년 3월 18일, 직원 4명으로 닻을 올린 안연구소는 10년 뒤 매출액 300억원의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여기에는 안철수 의장의 유연하면서 인간적인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 가족 같은 기업 문화는 그렇게 뿌리를 내렸지만 세계적인 업체들과 경쟁하려면 강한 조직력이 필요했다. 2001년 김 대표의 합류는 그 출발점이었고, 지금은 이를 완성시켜나가는 기간이다.

"'영혼이 있는 기업'으로 압축되는 안연구소의 경영철학은 이어가지만 세부적인 전술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을 뽑을 때도 안철수 의장은 성실성을 봤지만 저는 실력을 먼저 따집니다. 착하고 고운 심성만으로는 글로벌 업체들과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 조직은 너무 착하고 순합니다."

"충분히 착하고 순하기 때문"에 이제는 독해져야 한단다. 김 대표의 경영 스타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안연구소의 직원 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김 대표의 리더십은 '초록색'이다. "실행력이 돋보이고 성취욕이 강하다"는 얘기다. 노란색도 20.83%로 나타나 치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직의 화합을 위하고 소신을 지킬 줄 안다"는 뜻의 빨간색과 보라색은 각각 16.67%와 12.50%다. 같은 조사에서 안철수 의장은 노란색과 빨간색이 강했다. 섬세하고 부드러우면서 철학을 중시한다는 뜻이다. 반면에 초록색과 노란색이 돋보이는 김 대표는 현실적이면서 합리적이다.

"안연구소는 2010년 세계 10대 보안전문기업, 매출액 2500억을 달성하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투명하고 윤리적이고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영, 사회에 기여하는 철학은 계속 이어가면서 세계적인 회사로 거듭나기 위한 조직력과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탄탄한 조직, 강한 경쟁력

김철수 대표는 취임하자 김익환 최고연구위원을 CTO 겸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연구 개발을 이끌도록 했다. 기술 개발을 부사장에게 맡기는 대신 자신은 경영과 국내외 사업에 매달릴 수 있게 되었다. 김 대표가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해외 진출이다. 취임 직후 1주일 이상을 해외에서 발품을 판 이유도 수출 길을 열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중국과 일본에서 3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렸고, 하반기에는 동남아시아에서 잇따라 공급 계약을 따내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50% 이상의 매출을 거둘 것으로 기대합니다."

일본 안티 스파이웨어 시장에서 '안랩 스파이제로'는 40% 이상의 시장 점유율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안연구소는 2004년 일본 B2C(기업과 소비자간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5위에 오른 성과를 발판으로 올해는 내심 3~4위를 노린다. 중국에서도 B2C 인지도가 넓어지고 있어 유료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해외 진출을 향한 그의 발걸음은 숨 가쁘다. 지난 5월 19일에는 동남아 최대 통신업체 '텔레콤 말레이시아 그룹'의 대표 일행이 안연구소를 찾았다. 텔레콤 말레이시아 그룹(www.tm.com.my)은 말레이시아 국영 통신업체이면서 안연구소의 주요 파트너인 티엠넷(www.tm.net.my)의 모회사다. 김 대표는 티엠 그룹의 닷둑 압둘 와히드 대표, 티엠넷의 파드훌라 수하이미 부사장 등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동남아 진출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6월 29일에는 중국 최대 통신회사인 차이나텔레콤(www.chinatelecom.com.cn)의 자회사 GDCN(www.gdcn.com)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에 관한 보안 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10월, 중국 인터넷 서비스 2위 업체인 CNC 그룹에 온라인 보안 상품을 공급한 데 이어 중국 국영기업이자 최대 통신그룹인 차이나텔레콤 그룹과 협력 관계를 맺으면서 중국 시장에 더욱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동남아와 남미에서도 희소식

동남아와 남미에서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8월 3일에는 싱가포르의 팬아이엠엑스사(www.panimx.com.sg)와 파트너십을 체결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브루나이 등으로 수출 무대를 넓혔다. 이미 팬아이엠엑스를 통해 안랩 시큐리티 팩, V3넷, 안랩 폴리시 센터 등을 브루나이 교육청에 공급했던 안연구소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지역에서 안랩 시큐리티팩, 스파이제로 2.0 등 개인 제품으로 승부를 걸기 시작했다.

"안연구소 글로벌화 전략의 핵심은 일본과 중국이지만 동남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난해부터 동남아 주요 인터넷 서비스와 게임 사이트를 통해 쌓아온 신뢰를 기업과 개인 시장에서도 이어갈 것으로 기대합니다. 동남아 시장을 일본, 중국에 이어 가장 중요한 성장 무대로 만들어 갈 예정입니다."

해외 진출의 성과는 아시아에만 그치지 않았다. 8월 11일에는 러시아 보안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안연구소가 온라인 게임 보안 솔루션 '핵쉴드'와 키보드 보안 솔루션 '마이키디펜스'의 공급 계약을 맺은 네오싸이언(www.neocyon.com)이 그라비티(www.gravity.co.kr)의 온라인 게임 '라그나로크'를 러시아에 시범 서비스하면서 자연스레 동구권에 도전하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얼마 전에는 남미에서도 반가운 소식이 날아왔다. 브라질에서 서비스되는 온라인 골프 게임 '팡야'와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탄트라' 등에 핵쉴드를 얹기로 한 것이다. 올해 2월 소프트닉스의 온라인 게임 '건바운드'로 남미 시장을 두드렸던 안연구소는 이번 계약으로 브라질에서 서비스되는 5개의 온라인 게임에 한국 보안 제품을 서비스하는 쾌거를 일궜다.

"국산 게임의 인기와 세계 온라인 게임 시장의 빠른 성장, 여기에 온라인 게임 보안 솔루션을 통한 안연구소의 해외 진출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해외 진출을 노리는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 온라인 컨텐츠 업체들과 협력해서 동남아를 비롯해 북미, 남미 지역을 적극 공략할 예정입니다."

김 대표는 아시아와 남미에서 쌓은 경험을 앞세워 미국과 유럽을 공략하는 큰 그림을 그려 놓았다. 유럽과 미국은 글로벌 보안 회사가 오래 전부터 뿌리를 내린 탓에 "지금 당장 전면전을 펼칠 상황이 아니라"며 조심스러워하지만 "틈새시장을 뚫다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백신에서 보안 업체로 거듭나

안연구소의 미래 전략에는 해외 진출과 함께 '보안'이 빠지지 않는다. 사이버 공격이 백신에서 웜, 스파이웨어, 트로이목마, 스팸 메일, 해킹 등으로 늘어나면서 안연구소는 백신에서 보안 업체로 자연스럽게 거듭났다. 현재 안연구소는 V3 제품군 외에 스파이제로, 핵쉴드, 시큐리티팩, 게이트스캔, 폴리시센터 등 여러 가지 보안 제품을 내놓는다.

백신은 PC에서 쓰는 'V3프로' 외에도 윈도 서버용 'V3넷', 그룹웨어 서버용 'V3넷 그룹', 게이트웨이용 'V3바이러스월'로 세분화되었고 휴대폰과 PDA 등 무선 기기용 백신 'V3모바일'도 개발을 끝낸 상태다. '안랩 시큐리티팩'은 진화와 악성화를 거듭하는 바이러스와 웜, 트로이목마를 막고 해킹을 차단하는 통합 보안 솔루션이다. 스파이웨어를 막는 '스파이제로'는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핵쉴드'는 온라인 게임의 보안을 지키고, '폴러시센터'는 기업 네트워크를 안전하게 방어하고, '게이트스캔'은 e-메일로 침입하는 외부 공격을 게이트웨이 단계에서 필터링한다.

지난 7월에는 네트워크 보안 어플라이언스(보안 하드웨어)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이번에 선보인 '트러스가드'는 웜, 스파이웨어, DoS 공격 등을 효과적으로 막는 하드웨어 솔루션이다. 이로써 안연구소는 개인 PC에서 기업 네트워크까지, 백신에서 해킹까지 아우르는 네트워크 보안 기업으로 기틀을 마련했다.

"안연구소는 백신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 보안이라는 큰 바다로 들어섰습니다. 바이러스, 웜, 스파이웨어, 트로이목마, 해킹 등 여러 가지 유형의 사이버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자연스러운 변화입니다. 외국 업체들의 경쟁력이 대단하지만 그동안 쌓은 기술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해외 진출'과 '보안 강화'라는 큰 숙제를 떠안고 있어서일까. 김 대표의 어깨가 무겁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담배도 늘었다. 부사장 시절에는 안철수 의장의 권유로 몇 번 금연에 도전했지만 "대표가 된 뒤에는 다시 늘었다"면서 또 한대를 집어 물었다.

미군 클럽에서 밴드 활동

안철수 의장이 의사에서 백신 개발자로 변신했듯이 김철수 대표는 뮤지션이라는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김 대표는 4살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면서 줄곧 악기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재즈기타의 매력에 푹 빠졌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밴드 생활을 시작했다. 밴드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너무 유치하다"며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입을 뗐다. "수퍼스타즈…."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미 8군 클럽에서 밴드 활동을 했습니다. 그때 만난 길거리 아이를 집에 데려와 먹이고 재웠는데, 이 녀석이 몰래 담배를 피우다가 불이 나서 기타를 태워버렸지요. 목숨처럼 아끼던 것인데…."

기타리스트 김철수? 부모의 반대가 심하지 않았다면 그는 프로 무대에 섰을지도 모른다. 못다 이룬 꿈은 직장인 밴드를 만들어 신촌 클럽에서 연주하며 풀었지만 가게가 문을 닫으면서 지금은 활동(?)을 접었다. 지난해에는 '안랩 올스타즈 밴드'를 결성해 종무식 무대에서 실력을 뽐냈다. 대표 자리에 오른 지금은 그마저도 버거울 만큼 바쁘지만 건강만큼은 애써 챙긴다. "아무리 바빠도 건강은 꼭 챙기라"는 안철수 의장의 애정 어린 충고를 가슴에 담고 있다.

"안철수 의장과 가끔씩 e-메일로 안부를 묻습니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조언을 구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대표인 제가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안 의장이 그랬듯이 저 역시 회사를 잘 키워서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어야지요."

그가 요즘 즐겨보는 책은 '피도 눈물도 없이 경영하라'(북@북스 펴냄)다. "1등 기업이 되려면 하드볼 플레이어(hardball player)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하드볼 플레이어'는 강타자의 기를 꺾기 위해 위협구를 잘 던지는 투수를 가리킨다. 제목만큼이나 거친 내용이지만, 김 대표는 그보다 몇곱절 더 거친 시장에서 안연구소를 키워나가기 위한 지혜를 배운다.

안연구소, 새로운 도약 준비

"안철수라는 이름이 갖는 그림자는 큽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후광 없이 우리끼리 나아가야 합니다. 해답은 '실력'입니다. 세계적인 보안 기업이 되려면 국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시련을 이겨내야 합니다. 지금보다 훨씬 탄탄한 조직력과 경쟁력이 필요한 이유이지요."

김 대표의 취임으로 안연구소는 '출범 2기'를 맞았다. 활동 영역도 백신에서 보안으로, 국내에서 해외시장으로 차근차근 넓혀왔다. 또 다른 '철수'가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안연구소를 힘차게 이끌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IT 전문지 'PC사랑' 10월호도 실렸습니다. 이정일 기자는 PC사랑 취재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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