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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불갑산사에는 그리워하면서도 끝내 이루지 못한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붉게 타오르고 있다.
ⓒ 한석종
▲ 불갑산 자락을 온통 그리움으로 붉게 물들인 꽃무릇
ⓒ 한석종


수천번의
애틋한 인연으로도
갈려버린 우리의 운명

기나긴 기다림에
그리움만 붉게 차올라
온통 노을 진 세상

솜털같은 바람결에
제 한몸 가누지 못해
그대를 목놓아 부르다가
그늘처럼 흔적없이 지리라

저승에서 다시 만나
내가 그대를 이루고
그대가 나를 이루는
한 사랑 크게 맺어 보리니

- <상사화> 한석종


전남 영광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누구나 머리속에 먹음직스러운 '굴비' 한 두름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 영광의 산과 들에는 온통 그리움으로 붉게 물들이고 있다.

단풍을 말하기엔 아직 이른 9월 중순, 가을의 들머리에 위치한 서남해 영광 불갑산 자락을 휘감고 그리워하면서도 끝내 만나지 못하는 이루지 못할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이며 흐르고 있다.

예로부터 영광은 산수가 아름답고 쌀, 소금, 목화 등 농수산물이 풍족하여 인심 좋고 살기 좋은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한국 불교의 고향 영광 불갑사는 전국 최대의 꽃무릇 군락지로 그 명성을 한층 더해주고 있다.

불갑사 인근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는 꽃무릇은 나무 그늘 아래 숨어 섬뜩하리만큼 붉게 피어난다. 한두 송이 피는 것이 아니라 무리 지어 끝없는 바다를 이룬다. 꽃무릇의 국내 최대 자생지인 불갑사 일대에는 그 군락지가 3만평을 웃돈다.

▲ 무리지어 끝내 그리움의 바다를 이루다.
ⓒ 한석종
꽃무릇은 꽃이 필 때 잎은 이미 말라서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해 꽃은 꽃대로 잎은 잎대로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꽃. 한 몸 한 뿌리에 나서 일평생 꽃과 잎이 해후하지 못하고 그리움만 붉게 차올라 산자락을 물들이고 있다.

꽃무릇은 9월초부터 피기 시작해 보름 정도 만개한 뒤 꽃잎을 떨군다. 꽃잎이 모두 떨어진 뒤 비로소 푸른 잎이 하나 둘 돋는다. 한 몸이건만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서로를 그리워만 하는 꽃. 꽃무릇을 '상사화(相思花)'라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잎 하나 달리지 않은 마른 줄기에 얹힌 둥근 꽃이 위태위태하고, 무거운 꽃을 지탱하고 꼿꼿하게 선 가녀린 꽃대가 안쓰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꽃무릇의 붉은 빛은 더욱 애잔해 보인다.

불갑사의 꽃무릇은 9월 중순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해 10월 초까지 조금씩 조금씩 불갑산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하루 하루는 별 차이가 없지만 간격을 두고 다시 보면 불갑사 입구에 피었던 꽃이 어느덧 산 중턱까지 차올라 있다.

꽃무릇의 본래 이름은 석산화(石蒜花)이다. 꽃무릇은 '꽃이 무리지어 핀다'해서 붙여진 애칭이다. 인도 사람들은 지상의 마지막 잎까지 말라 없어진 곳에서 화려한 영광의 꽃을 피운다 하여 피안화(彼岸花)라고도 했다.

꽃무릇은 여름에 잎이 다 말라죽고 난 후, 가을에 꽃이 피므로 그냥 상사화(相思花)로 잘못 부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와는 엄연히 다른 꽃이다.

두 가지 다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는 데다 줄기까지 비슷해 구별이 쉽지 않다. 그러나 개화 시기와 꽃의 색깔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상사화는 6∼8월에 꽃을 피우지만 꽃무릇은 9월 중순을 전후해 꽃을 피운다. 상사화는 연분홍이나 노란색 꽃이지만 꽃무릇은 붉은색에 가깝다.

꽃무릇은 9월부터 이듬해 5∼6월까지 자라다가 갑자기 시들어 버린다. 말라죽었다고 생각하면 땅을 뚫고 다시 연푸른 꽃대가 올라온다. 그리고는 붉은 꽃봉오리가 한없이 많이 피어난다.

불갑사에서는 한철 간격으로 상사화와 꽃무릇이 피어난다. 아쉽게도 개화기가 달라 한꺼번에 두 가지 꽃을 모두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여름에는 상사화, 가을에는 꽃무릇이 산사를 감싸고 있다. 그래서일까? 불갑사는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는 상사화처럼 언제나 애틋하다.

▲ 불갑사 대웅전 문살에도 꽃무릇의 그리움이 물들고 있다.
ⓒ 한석종
꽃무릇으로 더 유명해진 불갑사는 우리 나라 불교의 고향이다. 서기 384년에 백제에 불교를 전파하였다는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고찰이다. 일부에서는 백제 문주왕 때 행인이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또한 도선국사가 도갑사·봉갑사·불갑사 등 호남 3갑(甲) 가운데 하나로 창건하고 그 중 으뜸이라는 의미로 불갑사(佛甲寺)라 이름 붙였다는 설도 있다. 아직까지는 불갑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려지지 않는다.

대웅전 안을 들여다 보면 여느 법당과는 달리 부처님이 정면이 아닌 옆면을 보고 앉아 있는 모습이 참 기이하다. 항상 앞만 보고 달려가는 중생들에게 주변을 돌아보라고 설파하는 것 같다. 불갑사 입구의 왼편에 위치한 작은 부도밭은 온통 꽃무릇으로 둘러 쌓여 극도의 비애미를 자아낸다.

대웅전의 연화문과 국화문 꽃문살은 세월이 흐르면서 닳고 또 닳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완전하게 만들어지지 않은 문살이 눈에 띈다. 하지만 최근에 단청을 새롭게 하여 옛맛을 느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대웅전 꽃문살에는 남모르는 사연이 깃들어 있다. 옛날 어느 이름 없는 목수가 절로 찾아와 대웅전 문살을 조각했단다. 그는 자신이 작업하는 동안 절대 안을 들여보지 말라는 부탁을 남기고 칩거하듯 작업에 열중했다.

그러나 호기심을 참지 못한 공양주가 결국 안을 들여다보자 목수는 그만 피를 토하며 죽었고 그 핏속에서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대웅전의 꽃문살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그래서 대웅전 한켠 꽃문살은 아지도 미완성으로 남아 있고 불상 뒷벽에는 까치가 그려져 있다고 전한다.

사천왕상도 평범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 크기부터 기존의 것을 훨씬 뛰어 넘는다. 원래 불갑사의 사천왕상이 있던 곳은 도선국사가 창건한 전라북도 흥덕의 연기사인데 연기사가 폐사되면서 설두대사가 불갑사로 옮겨와 봉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풍을 타고 우리에게 성큼 다가선 이 가을에, 애절한 사랑과 그리움의 선율이 애잔하게 흐르는 서남해 들머리 영광으로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기다림에 지쳐 붉게 물든 꽃무릇의 영혼을 위로하며 위로받는 시간을 갖지 않으시렵니까?

▲ 애절한 그리움을 잉태하는 꽃무릇
ⓒ 한석종
▲ 온통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남을 그리움
ⓒ 한석종
▲ 얼마나 그리움이 깊으면 양산마저 저토록 붉게 물들여 놓았을까?
ⓒ 한석종
▲ 꽃무릇은 무리를 지어 끝내 바다를 이룬다
ⓒ 한석종
▲ 그리움이 붉게 차올라 온통 노을진 세상
ⓒ 한석종
▲ 불갑사에 이르는 도로변마다 무리지어 바다를 이룬 꽃무릇
ⓒ 한석종

 

덧붙이는 글 | <불갑사 꽃무릇 축제>

전남 영광군 불갑산 일원에서는 17 ~20일까지 3일간 꽃무릇 축제가 열린다. '상사화 꽃길 등반대회’'상사화 사진전' '분재 전시회' '짚공예 시연' '농악대 공연'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찾아오는 길>     
(서울출발) 서해안고속도로 영광IC→23번 국도→영광읍→함평방면→불갑삼거리에서 좌회전→불갑사

(광주출발) 22번 국도→ 함평 문장→밀재 →영광 →23번 국도 8km→불갑 초등학교 앞에서 좌회전→내산서원 불갑산 입구→불갑사

<'내 고향 명소'를 소개합니다>에 응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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