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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가을 한가운데 자리잡은 '한가위'. 오고 가는 정성이 담긴 선물 속에서 사람 사는 정을 느낍니다. 올 한가위엔 어떤 선물이 좋을까요?
풍성한 가을 한가운데 자리잡은 '한가위'. 오고 가는 정성이 담긴 선물 속에서 사람 사는 정을 느낍니다. 올 한가위엔 어떤 선물이 좋을까요? ⓒ 박봄이
추석(秋夕). 그 뜻이 다분히 감성을 자극합니다. 한가위는 풍요로운 느낌도 좋고, 감성을 자극하는 것도 좋고, 가을 한가운데 날도 좋아 이래저래 기분 좋은 명절입니다. 정성을 담은 선물을 주고받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서울과 고향을 오가며 오랜만에 함께 정을 나누는 사람들에겐 더욱 그렇지요.

하지만 제겐 한가위가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뭔가를 해 줘야 하는 입장이거든요.

저는 지금 작은 규모의 디지털 콘텐츠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는 1999년 말 디자인개발회사로 출발, 최근에는 정부 주도의 문화콘텐츠사업 결과물을 진행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6년여 동안 임원과 팀장급 4명 정도를 포함해 열 명 내외의 직원이 전부였을 정도로 규모가 그리 큰 것도 아닙니다.

우리 회사는 2년 전 최악의 터널 속으로 들어와 이제 막 헤치고 나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IMF 못지않은 경제 상황이라는 오늘을 견디느라 한 푼이 아쉬운 상황입니다. 게다가 추석 후에는 사무실을 이전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든 그렇지 않든 한 회사를 운영하는 저로서는 한가위를 맞이한다는 것 자체가 힘겨운 일입니다. 이젠 한가위라는 말만 들어도 진짜 '가위'에 눌려 버릴 것만 같습니다. 열심히 고생한 직원들에게 고향 부모님께 드릴 선물이라도 챙겨줘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기 때문이죠.

떡값아, 떡값아... 넌 도대체 정체가 뭐니?

'떡값'이 정말 고민입니다. '어떤 게 좋을까? 비용은 어느 정도로 하지? 어떻게 하면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꾀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 동안 가장 넉넉하게 준 떡값은 현금 30만원 정도였습니다. 그 외 10~20만원 정도의 상품권이나 3~5만원 안팎의 선물 세트 등을 줬고요. 선물 종류와 액수는 자금 상황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그때그때 정했는데 대부분 중소기업이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떡값은 명절을 잘 지내라는 '성의' 표시입니다. 살면서 하게 되는 이러저러한 성의 표시에는 대개 일정한 선이 있습니다. 결혼 축의금 같으면 보통 3만원에서 5만원 정도고 많이 친하면 10만 원대입니다. 조의금도 마찬가지죠. 하다못해 세뱃돈도 어느 정도 액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떡값은 모르겠습니다. 뇌물로 건네는 것도 아닌데 얼마가 적당한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도무지 답이 안 나옵니다. 게다가 떡값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벤처기업에 따라 다르고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업종별로도 다릅니다. 그뿐인가요. 여기는 얼마고 저기는 어떤 선물이라는 등 언론이 기업별로 전하는 떡값 규모와 선물의 부피, 무게 등도 천차만별이지요.

사장들 "20만원선" vs 직원들 "못해도 30만원"

'비누와 치약'으로 몸을 정결히 하고, 고소한 '참기름'처럼 사람 내음 물씬 풍기는 세상에서, 모든 일들이 '술술' 풀려, '꿀맛' 같은 달콤함을 느낄 수 있다면 참 행복하겠죠? 한가위 선물에는 금액보다는 정성과 의미를 가득 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비누와 치약'으로 몸을 정결히 하고, 고소한 '참기름'처럼 사람 내음 물씬 풍기는 세상에서, 모든 일들이 '술술' 풀려, '꿀맛' 같은 달콤함을 느낄 수 있다면 참 행복하겠죠? 한가위 선물에는 금액보다는 정성과 의미를 가득 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 박봄이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몇몇 사람들에게 한가위를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습니다. 물론 떡값으로는 어느 정도 계산을 했느냐고 덧붙였죠.

A벤처기업을 운영하는 김 모 사장은 "직원 입장에서야 넉넉하게 받으면 좋겠지만, 현금은 곧 중소기업의 숨줄과 같은 것이어서 떡값은 그 자체가 부담"이라며 "떡값이 정말 성의 표시로 이해되려면 주고받는 사람들이 금액과 선물 종류를 떠나 그 순수한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김 사장이 준비한 백화점상품권과 생활용품세트는 15만 원선입니다.

B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정 모 사장은 "아무리 어려워도 추석과 설날만큼은 선물을 꼭 챙긴다"며 "하지만 넉넉한 형편이 아닌데도 무리해서 지출하다 보면 나중에 꼭 탈이 난다"고 하네요. 정 사장은 "직원들이 다른 회사와 비교하는 것도 그렇지만 무조건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위기 때문에 무리하는 것"이라고 전합니다. 정 사장은 이번에 현금 20만 원선으로 지급한다고 합니다.

이번엔 중소기업 회사원들에게 물었습니다(대기업은 연봉 자체가 워낙 높아 제외했습니다). 솔직히 톡 까놓고 어느 정도 떡값이면 만족하느냐고요. 자신의 연봉, 능력, 회사의 자금 상황 등을 기준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몇몇이기는 하지만 의견을 종합해 보면 이들은 현금으로 30만원에서 50만원 정도를 원합니다.

최소한 30만원 정도는 있어야 교통비와 음식 준비가 가능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물론 쓰다 보면 50만원이라도 남는 게 없지만, 떡값을 무조건 요구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이 선에서 멈춰섭니다.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하자 "우리는 회사에서 주는 월급만 보고 산다, 명절이 즐거워야 일도 즐겁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떡값이 아니라 떡갈비값이라도 주고 싶다"

저는 '더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절반은 그렇게 되길 원하고 나머지 절반은 그렇지 않길 바랍니다. 원하는 절반은 보름달을 벗 삼아 가족들과 즐겁게 누리는 행복이 계속됐으면 하는 바람이고, 원치 않는 나머지 절반은 떡값을 어느 정도 줘야 하느냐는 고민을 늘 하기는 싫기 때문입니다.

어서 빨리 대보름달을 보며 사람들의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면서 한가위의 풍족함을 꽃피울 수 있게 돼 떡값이 아니라 떡갈비 값이라도 흔쾌히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저보다 어려운 재정상황을 겪고 있는, 그래서 올 추석 떡값을 한푼도 못주는 다른 사장님들도 직원들에게 충분한 상여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경제가 좋아지기를 바랍니다. 풍족함이 넘치면 더 이상 떡값 가지고 고민할 일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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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군 사람들이 복작복작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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