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힘센 골리앗이 커다란 돌덩이를 갖다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이는 봉우리의 모습은 인간이 얼마나 자그마한 존재인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바람에 풍화되어 마모된 둥근 모습의 돌덩이들 사이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우습기만 하다. 신라 시대에도 이 바위산이 그대로 존재했다고 하니 그 기나긴 세월 속에도 조금의 변화 없이 그대로 머무르는 자연이 신기하기만 하다.
바람이 거세게 불면 큰 돌덩이들이 데구르르 굴러내려올 것만 같은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설악산의 흔들바위처럼 사람들은 궁금한 마음에 바위에 손을 얹고 움직이려 애를 써 본다. 바위는 끄떡도 없다. 거기에 매달려 바둥거리는 인간의 모습이 너무나 미약한 존재로만 느껴진다.
범바위의 진짜 범 형상을 보려면 바위를 내려와서 뚫려 있는 영랑호 주변 드라이브 코스를 따라 돌면 된다. 안타깝게도 주변에 골프장과 숙박 시설이 들어서 있어 옛 멋을 느낄 수 있는 여유는 없는 편이다. 도대체 이곳이 그 '빼어나다는 영랑호 맞아?'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호수의 물은 탁하고 주변은 모두 개발되어 있다.
개발과 함께 잘 닦인 산책로가 조성되어 범바위와 영랑호의 풍경을 손쉽게 감상할 수 있다는 이점은 있다. 산책로를 따라가며 본 범바위의 모습은 진짜 날카로운 눈매와 귀, 웅크린 발 모양이 그대로 살아있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도대체 어느 게 범의 모습인가 하고 의아했지만 자세히 보니 완연한 범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 모습을 발견한 옛사람들의 관찰력도 뛰어나고 과거에는 참 아름다운 바위산과 호수의 조화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쉽게도 여기저기 들어서 있는 숙박 시설과 유흥 시설이 영랑이 그토록 반하여 오래 즐기고 싶어 했다는 영랑호의 노을을 감상할 수 없게 만든다.
영랑이 머물고 간 후에 이곳은 오랫동안 신라 화랑의 순례도장으로 쓰였다고 하는데 이제는 놀기 좋아하는 관광객들의 놀이터가 되고 말았다. 옛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잘 다듬어진 이 현대판 놀이터에서 한 마리의 외로운 범은 웅크리고 앉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왠지 그 모습이 서글퍼 보이기만 하여 영랑호를 떠나는 내내 아쉬움이 남아 뒤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