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책이 손에 쥐어지게 된 계기부터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진화심리학'이라는 개념 하에서 관련된 도서들을 구해 읽다보면 필연적으로 현대 진화생물학자의 양대 산맥이라는 영국의 리처드 도킨스와 미국의 스티븐 제이 굴드를 만나게 된다. 진화심리학에 관심을 두게 된 내가 두 명의 진화생물학자 중 먼저 만난 책은 굴드의 저서였다. 그는 도킨스와 큰 틀에서는 입장을 같이 하면서도 여러 면에서 그와 논쟁에 논쟁을 거듭했다.(굴드는 2002년 타계했다.) 이로 인해 굴드를 통해 도킨스를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었고 다음 차례는 필연적으로 도킨스의 저서를 구해 읽는 것이었다.
이런 연유로 오마이뉴스 책동네 커뮤니티에서 도서소개를 위해 기자회원에게 책을 전해주는, 누구가는 마구잡이 책 고르기가 아니냐고까지 말하는 공간에 도킨스의 이름이 보였을 때 주저없이 이를 골라잡을 수 있었다. 이미 내 머릿속에 전파된 도킨스의 '밈'이 그러한 명령어를 부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악마의 사도>는 국내에 번역된 도킨스의 여러 저서 중에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물론 그렇다고 도킨스와 굴드의 저서가 대중들에게 어렵게 다가온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들은 진화생물학을 대중적으로 전파하기 위해 경쾌하고도 흥미로운 비유를 통해 이를 설명해 왔다.
이 책에서 도킨스는 하나의 큰 장을 할애해 숱한 화제를 가지고 온 굴드와의 논쟁을 말하고 있지만, 굴드가 사망하기 직전 왕래한 서신에서는 공동명의로 창조론자들과의 논쟁이 왜 무의미한지를 알리는 편지를 쓰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참고로 두 명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한 논쟁은 유전자가 특정형태에 관여하는가에 대한 굴드의 반박과, 굴드의 급격한 변화를 통한 진화가능성 제기에 도킨스가 기존의 입장을 대변해 진화는 점진적인 것이라며 반박한 것이다.)
모든 생물은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생존기계일 뿐?
어떤 사람들은 도킨스와 굴드의 논쟁에서 도킨스의 우세승에 손을 들어 주고 있지만, 정작 도킨스는 굴드의 의견을 비판할 망정 '헤비급 다윈주의자'로 지칭하며 그 학문적 성과까지는 폄하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참, 이 책에서 도킨스를 통해 굴드를 보려고 하지는 말자. 도킨스의 도발적인 표현은 그 의도가 어찌 되었건 상대의 논점에 대한 차이를 인정해주면서도 비유가 범세계적이지 못한 것까지도 짚어서 공박하고 있으니까.
<악마의 사도>는 도킨스가 그간 써오고 발표한 글들을 하나로 묶은 경우라 깊은 맛은 없지만 도킨스라는 인물이 어떤 관점에서 진화생물학을 얘기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악마의 사도>에는 도킨스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어 있고, 상대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찬사를 보내는 서평도 들어 있으며 정치계와 종교계에 도발적으로 던지는 의문도 들어 있다. 특히 종교계에 제기하는 문제는 특정 종교인들에게는 불편하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다. 도킨스는 이들을 '바보'라는 소제목을 통해 얘기하고 있다.
도킨스는 철저한 무신론자로 종교계가 과학적 관점에 대해 비논리적으로 훼방을 놓는 것에 대해 큰 반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황우석 교수가 개가를 올린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서도 종교적, 윤리적 관점으로 왈가왈부하는 이들을 공박하며 공정한 진리에 대한 옹호를 하겠노라고 호언장담한다. 인권단체에서 들으면 펄쩍 뛸, 전 국민의 DNA 데이터베이스 구축이나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해서도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도킨스는 '호들갑 떨지 마라'며 일침을 가한다.
도킨스에 대해 오해하는 이들은 그가 1976년 <이기적 유전자>를 펴내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생존기계일 뿐이라고 말한 점에서 유전자 결정론자라며 몰아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도킨스가 늘 강조하듯 이는 사람이 진화를 거쳐 온 동물임을 알린 다윈 이래로 발전해온 진화론을 더욱 승화시킨 것이며, 이러한 과학에 여러 가지 사회적 편견을 덧씌워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악마의 사도(A DEVIL'S CHAPLAIN)>는 책의 서두에서 밝히지만 다윈의 편지글에서 따온 제목이다. 굳이 책의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는 제목을 그대로 달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자신이 정한 원제목을 바꾸는 데 은근히 반감을 표시한 도킨스의 심정을 출판사가 수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