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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UN 연설 중 '제국주의'라는 단어 사용에 대해 비판한 16일자 <조선일보> 사설.
노무현 대통령의 UN 연설 중 '제국주의'라는 단어 사용에 대해 비판한 16일자 <조선일보> 사설. ⓒ <조선일보> PDF

극과 극이다. <경향신문>과 <서울신문>은 "힘 있는 연설"로 "적절했다"고 호평했지만 <세계일보>와 <조선일보>는 "이해가 안 간다"고 비난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UN총회 연설을 두고 하는 말들이다.

<세계일보>와 <조선일보>는 하필 "제국주의"라는 표현을 끌어들여 "강대국에 날을 세우는 인상까지" 줘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불필요한 화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조선일보>는 "9.11테러 이후 전개되고 있는 국제 질서 속에서 '제국주의'라는 표현이 어느 나라를 겨냥하는 것인지는 너무나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을 자극하는 발언으로, 우리로서는 득 될 게 없다는 것이다.

"해방 후 지난 60년 동안 미국을 축으로 한 국제 질서 속에서 그 체제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며 성장해" 왔고, "앞으로도 그 질서에 기대, 수출에 목을 걸고 나라의 활로를 뚫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데 왜 "제국주의"라는 불도장을 찍어 화를 자초하느냐는 게 <조선일보>의 주장이다.

<세계일보>의 주장도 같다. "공개적으로 강대국에 날을 세우는 인상까지 국제사회에 줘"서 "불필요한 오해와 긴장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치 않다"는 게 <세계일보>의 주장이다. 그래서 <세계일보>가 노대통령에 주문하는 건 "보다 열린 국제정세 인식과 신중한 발언"이다.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제국주의"란 표현은 노대통령의 '작품'이라고 한다. "연설문 준비 단계에서 노대통령이 ('제국주의'라는 개념을) 포함시키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나온 연설문 내용은 이것이다.

"세계 여러 분야에 남아 있는 제국주의적 사고와 잔재를 완전히 청산해야 한다."
"일부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는 강대국 중심주의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

이 연설문을 두고 <세계일보>와 <조선일보>는 미국이 기분나빠 할 수 있다고 했다. "제국주의"라는 표현이 어느 나라를 겨냥하는 것인지는 너무나 분명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뻔한' 사실을 왜 나서서 언급을 해 "매를 버느냐"는 얘기다.

제국주의가 미국을 겨냥한다는 뻔한 사실, 꼭꼭 숨겨야 하나

<세계일보>와 <조선일보>의 지적대로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사실을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짠한' 표현으로 지적하면 매를 맞는 게 작금의 국제질서일 수도 있다. 일단 그렇다고 인정하자.

외교무대는 선방과 같아서 직설적 표현을 금하고 에둘러 표현하는 게 관례라는 얘기도 주워들은 바 있다.

그런 점에서 노대통령의 UN총회 연설은 엄혹한 국제현실은 물론이요 외교 관례마저 어긴 행동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인정하고 나니 가슴이 답답하다. "만국이 평등하다"는 UN에서조차 할 말을 못하면 어디서 얘길 해야 하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은밀한 말조차 뱉어낼 공간을 얻는 게 세상사 이치인데 누구나 다 아는 '뻔한' 말만은 왜 꼭꼭 숨겨야 하나?

일국의 대통령이라서? 그래서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나라 전체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럼 노대통령의 발언이 일본을 염두에 둔 것이란 일반적 분석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일본이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 진출할 경우 동북아 질서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지대하기에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건 <세계일보>와 <조선일보>도 인정했다.

<세계일보>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물론 당장 안보리 진출 시도도 견제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했고, <조선일보>도 "대통령의 이런 말은 거부권을 가진 안보리 상임 이사국을 확대하려는 일부 강대국의 시도, 특히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저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했다.

이런 사실은 <세계일보> <조선일보> 뿐 아니라 미국도 잘 안다. 한국이 일본의 제국주의 만행에 어떻게 당했는지 잘 알고 있고,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한국이 스페인·파키스탄 등과 함께 '중견국가 그룹'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노 대통령 연설문의 맥락은 새롭게 문제될 소지가 없다.

남는 문제는 단 하나, <세계일보>와 <조선일보>의 말대로 "왜 하필 '제국주의란 표현을 썼는가"이다.

단어 하나의 '오용' 상쇄하고 남을 보험료 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건 없다. '제국주의'란 단어 하나에 미국이 삐칠 만큼 한국이 박정하게 대해오지는 않았다.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전 세계의 공통된 여론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전쟁터에 보내 제국주의 전쟁을 돕고 있는 게 우리나라다. 단어 하나의 '오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보험료를 내고 있지 않은가?

그 뿐인가. 노 대통령은 당선 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 예찬론을 편 바 있다. 미국이 없었으면 한국의 민주주의도 없었을 것이라고까지 했다.

국민연금에 백수보험, 더 나아가 암보험까지 들어놨는데 '재채기' 한 번 했다고 법석을 떨어서야 되겠는가. 그건 호들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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