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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더미, 다시 아궁이 속으로 갈 수 있을까.
장작더미, 다시 아궁이 속으로 갈 수 있을까. ⓒ 김동식
제주도 동남쪽에 있는 마을인 표선을 찾았다. 이곳에는 그 옛날 한가위의 추억속에 묻혀 있는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부엌 아궁이를 시뻘겋게 달굴 마른 장작이 '올레'(가옥진입로를 뜻하는 제주말) 모퉁이를 지키고 있었다. 아버지가 팔뚝을 걷어붙이고 장작을 패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떡과 고기를 삶으려면 이 정도는 패놓아야 해."

정말 이렇게 많이 필요했을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명절때 쓰는 것인만큼 '넉넉하게' 준비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리라.

어머니와 누이들의 체온이 남아있는 물허벅
어머니와 누이들의 체온이 남아있는 물허벅 ⓒ 김동식
마당에는 물허벅이 추억속에 잠겨 있다.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섬마을인 제주에는 수도가 거의 없어 샘물에서 물을 길어다 식수를 해결했다. 그 몫은 언제나 어머니와 누나들의 차지였다. 명절 음식을 차릴 때면 일찌감치 물동이에 물을 가득 채워놓았다. 떡과 음식을 만드는 동안 물허벅 지고 동구밖까지 물길러 갔다 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추억속에 묻혀버린 솥단지
추억속에 묻혀버린 솥단지 ⓒ 김동식
부엌에는 언제 지폈을지 모를 솥단지 네개가 나란히 줄을 서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 아궁이에 장작을 넣으면 금방이라도 불이 활활 타오를 태세이다. 이 아궁이 앞에서 얼마나 많은 불쏘시개를 집어 넣으며 눈물 콧물을 흘렸던가. 한 세월을 근심속에 살며 인고(忍苦)의 불을 지폈을 우리 어머니도 명절 때 만큼은 행복했다. 차례를 지내러 온 친지들에게 손수 지은 음식을 대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땔감을 장만하던 아버지도, 물허벅과 부엌 아궁이 앞에서 차례음식을 나누어 먹을 친지들을 생각하며 행복에 젖어 있던 어머니도 모두 고인이 되셨다. 우리 자식들이 정성들여 차린 제삿상을 받는 영혼이 되셨다.

떡하는 날이면 마냥 즐거워 삽살개와 동구밖까지 줄달음치던 아이는 훌쩍 자라 40대 중년이 됐다. 한가위 보름달을 눈동자에 담으며 먼훗날의 행복을 꿈꾸던 유년의 기억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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