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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군대 생활할 때 말이야! 구두 닦는 데도 서열이 있었단다. 군인들이 신는 군화를 모아서 가져오는 사람을 '찍새’라고 하고, 이렇게 여럿이 모여서 구두를 닦는 사람을 '딱새'라고 불렀단다. 네 생각은 누가 더 높은 것 같니?"
"아무래도 일이 쉬운 '찍새'겠지요. 그런데 왜 '찍새'라고 불렀어요? 아버지는 딱새만 했어요?"
아들의 질문이 연거푸 쏟아집니다.
"구두 닦는 사람들을 보면 길거리를 다니면서 '구두 딱'이라고 외치고 다니면서 구두를 찍어(거두어) 온다고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모양이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참 생활만 했어요."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은 제 엄마의 신발이 작아서 불편한 표정이 역력하지만 잘 참아 줍니다. 나는 물이 묻은 헝겊을 낀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앞부분의 표면을 문지릅니다. 처음에는 물기가 사방으로 번지지만 여러 번 계속하면 물기가 없어지고 조금씩 광이 납니다. 그러면 다시 구두약을 헝겊에 살짝 발라 물을 조금 묻혀서 문지릅니다.
구두코 쪽(앞부분)에 광이 나면 옆부분과 뒤축 쪽도 문질러서 완성을 합니다. 예전에는 동료들과 '다방에서 구두코를 레지(종업원) 치마 밑에다 대면 속살을 비춰 볼 수 있다'고 호언하곤 했는데, 세월을 따라 무디어진 탓인지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벌써 반오십 년이 지났으니까요. 아내는 신발을 보고 활짝 웃습니다. 나는 주섬주섬 도구들을 챙겨서 정리를 합니다.
추석날 아침, 아내는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섭니다. 그러나 아내의 발에는 무심하게도 여름에 신던 샌들이 신겨져 있습니다. 내가 볼이 부은 채로 아내의 발을 쳐다보자, 아내는 "옷하고 구두가 맞지 않는 것 같아서…"라며 말꼬리를 흐립니다.
그러나 언젠가 아내가 저 구두를 신을 때는 한번쯤, 이 무능한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 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