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사는 노인과 지체부자유자, 산동네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전해오던 한 자원봉사자가 수년간 누적된 과로를 이기지 못하고, 투병해 오다 끝내 숨을 거둬 지켜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지난 17일, 향년 50세의 젊은 나이로 눈을 감은 고 전영숙씨. 그녀는 그간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성북구 월곡동 일대에서 생활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기 몸도 사리지 않은 채 봉사의 손길을 펼쳐왔다.
하지만 지난해 크리스마스, 갑자기 혈뇨가 나와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결과, 급성신장암으로 밝혀졌고, 올 1월에는 대정맥까지 전이된 악성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이미 소생이 어려운 상태까지 이른 뒤였다.
이후 병원과 요양원을 오가며 꾸준히 치료하고, 가족과 이웃들의 따뜻한 보살핌에 기적적으로 회복되는 듯했으나, 최근 병세가 폐로 전이되면서 이날 오전 가족이 지켜보는 앞에서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고인은 특히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숨을 거둬 마지막 생일을 함께 축하하려 계획을 세웠던 가족들을 더욱 슬프게 했다.
전씨가 자원봉사자로 월곡동 주민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3년 전. 삼육의명대 사회봉사단장으로 일하며 달동네와 주거환경불량지구의 집수리 봉사 활동을 펼치는 남편 홍순명 교수를 따라나서면서부터였다.
이후 소외된 우리 주변 이웃들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며 구슬땀을 흘리던 그녀는 2003년부터 아예 이곳에 월곡봉사센터를 설립하여 주민들을 위한 봉사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이면 노인들의 건강과 입맛에 맞는 식단을 직접 짜 남편과 함께 인근 농수산물시장에서 물건을 구입, 적십자 회원들과 100여명의 이웃들에게 점심을 제공했다.
또 한 달에 한 번씩 의사와 약사를 초청해 노약자들의 무료진료를 도왔으며, 40-50명이나 되는 어르신들의 이발을 손수 해주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진료봉사와 미용봉사가 있는 날이면 오후 늦게까지 한쪽에 앉아 노인들의 혈압을 체크해주는 일도 그녀의 몫이었다.
전씨의 투병소식이 알려지자 마을 주민들은 "불우노인들을 위해 아낌없는 사랑을 전해 주었던 '천사아줌마'가 몹쓸 병에 걸렸다"고 안타까워하며 그녀가 하루 속히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길 기도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생전의 전씨는 "이제 곧 겨울이 다가오는데 주민들이 어려움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자신의 건강도 잘 돌보아 좀더 오랜 시간 동안 봉사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기도 했다.
한편, 19일 열린 발인식에는 그녀와 함께 봉사의 손길을 펼치던 자원봉사자들과 월곡동 주민들도 참석,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눈물로 배웅했다.
남편 홍순명 교수는 이 자리에서 "투병 기간 동안 보내 주신 여러분의 깊은 사랑에 우린 오히려 행복했다"고 인사하며 "우리 가족은 앞으로도 고인의 유지처럼 이웃을 더욱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딸 예림(20 삼육대 신학과) 양은 조사에서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엄마가 보여주신 삶처럼 이웃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면서 살아가겠다"고 말해 조문객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닳아 없어지겠다'는 생각으로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며 살아왔던 한 자원봉사자. 죽음을 맞기까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적으로 봉사했던 전씨의 이야기는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나머지 이웃을 향한 사랑의 마음조차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봉사의 의미와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