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체제의 확대가 자본주의의 성공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인류 사회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의 부족에서 기인할 것이다. <불타는 제국>에서 에이미 추아가 통찰한 것처럼 세계화는 인류사회를 그 이상과 목표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전세계적으로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을 더욱 심각하게 고착시키고 있으며, 그로 인한 인종, 신분, 성별간의 차이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아울러 개발 논리에 따른 환경 파괴는 인류의 생존 그 자체에 대한 심각한 위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 아니 노엄 촘스키의 항변처럼 결코 성공해서는 안 될 기획으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파의 이상으로서 자본주의의 진전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대항이데올로기로서 사회주의의 기획이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산본마쓰는 비장하게 말한다. 우리 사회의 386세대와 동시대인으로서, 사회주의 이상을 여전히 유효한 사회개혁 프로젝트로 제시하고자 사회주의 운동을 철학적ㆍ사회적으로 연구한 이 젊은 천재 학자는 10년간의 연구를 통해 오늘날 좌파운동의 문제 및 도전 과제들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좌파 운동이론(그에 따르면 그건 이론이 아니라 실천기획)을 제시한다.
좌파운동,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일관된 목표와 전략 상실
프랑크프루트 학파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철학적인 분야에서 실패한 계몽주의를 비판하면서 '계몽을 계몽해야 한다'고 썼듯이, 이 책에서 산본마쓰는 낡은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좌파 운동의 패러다임을 제안하고자 한다.
산본마쓰에 의하면 마르크스주의는 모더니즘의 틀인 이성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인식론적 한계와, 인간중심주의에 얽매인 존재론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인간 해방의 모티프를 경제적 억압구조로 보고 계급투쟁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을 유일의 기획으로 제시한 것은 그의 이론의 모더니즘적 한계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에피스테메는 사회주의 운동의 부분화ㆍ파편화라는 결과를 낳아 보편적 기획으로서의 사회주의 이상을 통합하는 데 실패했다. 스탈린의 코민테른이 보여준 편집증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형식이 바로 이런 인식론적 한계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그는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비평은 한국 내 좌파운동의 문제점도 보여준다. 남북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한국 내 좌파는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마르크스주의식 운동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이 운동은 역사적 과정에서 보듯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전략일 뿐이며, 진정한 사회주의적 윤리의 대의를 포괄하고 있지 못하다. 근대화가 한국을 이상사회 건설에 이르도록 이끌지 못했듯이 좌파의 노력 역시 사회적 대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모더니즘적 마르크스주의의 실패는 결국 좌파들로 하여금 전략과 실천을 감추게 하는 또 다른 부정성을 창출했다는 게 산본마쓰의 두번째 비판이다. 1960, 70년대 서구사회의 신좌파 운동의 흐름을 분석하면서, 그는 좌파운동가들이 낭만주의적 표현주의로 기울고, 나아가 실천하는 현장 대신 화려한 이론과 수사만으로 치장한 채 대학가로 움츠려 들었다고 비판했다.
여기에서 산본마쓰는 푸코식 전략을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푸코는 "특이화, 국지적, 분산적 전술, 자발성, 담론의 붕괴에 바탕을 둔 반정치론을 옹호했다." 푸코에게 있어서 주체나 경험 등은 부수적 현상일 뿐 실존적이거나 절대적인 조건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그에게는 인간의 해방은 의미 없는 목표일 뿐이었다. 푸코가 의미를 두었던 한 가지는 계보학을 통해 헤게모니적인 진리 체제를 내부로부터 솎아냄으로써 억압되었던 지식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인간의 해방이 아닌 지식(앎)의 해방이 그의 관심이었던 것이다.
푸코의 이론과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좌파운동은 일관된 목표와 전략을 상실한 채 장식적인 이론 속으로 움츠려 들었다. 이것이 80년대 이후 좌파운동 실패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산본마쓰는 지적한다. 따라서 좌파의 전략을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다시 구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좌파전략을 다시 말하다
사실 그것은 새로운 전략이라고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이념적 스승인 안토니오 그람시의 '근대 군주'의 이상 속에 이미 그 전략이 구축되어져 있다고 산본마쓰는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본마쓰는 푸코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 의해 등장한 새로운 관념론은 사회 변화를 전략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손상시켰다는 판단 아래 포스트모더니즘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그람시의 '근대 군주', 즉 집단적 주체로서의 좌파 전략을 하나의 이상으로 제시한다. '근대 군주'는 인간의 현상과 의미를 파악하고 그곳에서 드러나는 구조적 위기에 창조적으로 대처할 능력을 갖춘 통일되고 집단적인 의지의 주체이다. 따라서 '근대 군주'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주창한 창조적 지도력을 갖춘 현명하고 강력한 군주에 걸맞는 집단적 영향력을 가진 실제적인 정치적 세력, 또는 힘을 말한다.
좌파 전략은 이러한 '근대 군주'와 더불어 대중의 뜻을 통합할 때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과거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이러한 '근대 군주'의 이상으로 '당'(즉 공산당)을 만들어 이론을 전략적으로 성취해 나가고자 했다. 그러나 그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다. 왜 그럴까?
산본마쓰는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이상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군주는 이상적인 공화정을 세운 뒤 사라지는 이행적인 존재로 등장하는 것이다. '근대 군주' 역시 인민들이 정치 생활에 참여하는 통로로 제공되는 한 형식이어야 했다. 레닌 역시 이러한 인식 하의 전위정당 개념에서 공산당을 건설했다. 그러나 이론처럼 당은 파괴되지 않았다. 결국 공산당은 토머스 홉스가 예견한 '리바이어던(괴물)'의 형체로 둔갑해 '근대 군주'의 이상을 구현하지 못했다.
'탈근대 군주론'은 좌파운동의 성취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
이제 전세계 좌파운동은 실패한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좌파 '전략'의 실패지 그 이상의 실패는 아니라고 산본마쓰는 항변한다. 그리고 그 이상의 성취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한다. 바로 '탈근대 군주론'이다.
'탈근대 군주'란, 근대성을 기반으로 한 '근대 군주'의 이행적 성격으로 탈근대 시대의 형식을 말하는 것으로 붙여진 명칭이다. 하지만 신좌파 운동의 실패의 원인을 포스트모더니즘 정신 때문으로 규명한 산본마쓰의 비평 정신을 생각할 때 여기에서 말하는 '탈근대 군주'란 포스트모더니즘의 감성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오히려 이 형식에 '탈근대 군주'라는 명칭을 붙인 이유는 탈근대성의 조건이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부분적ㆍ파편적 성격이 아닌 통일된 정체성으로도 규정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역설 때문이었다.
이런 개념에서 '탈근대 군주'는 실천과 이론을 분리한 채 자신들의 사상체계 속으로 스스로 움츠려 들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악을 극복하고 전략과 통일성의 기반으로 좌파운동을 다시 통합하는 집단 지성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별히 탈근대 군주는 "전 세계에 걸쳐 이미 존재하는 해방운동들의 분산된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서 단일한 세계 역사적 운동의 형태를 부여"하는 전략적 능력을 발휘하여 좌파운동의 진정한 성공을 이끌어내게 될 것이라고 산본마쓰는 주장하고 있다.
산본마쓰의 '탈근대 군주론'에는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이 있다. 첫째는 새로운 총체성의 개념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적 유물론에 따른 프롤레타리아의 경제적 억압과 착취문제를 역사의 총체로 이해했다. 그러나 그것은 억압구조에서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현대 사회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산본마쓰는 이러한 자본주의 외에도 가부장제, 인종주의, 개발주의 등도 중요한 좌파 운동의 모티프가 될 것임을 통찰했다.
결국 '탈근대 군주'는 이 모든 운동들을 통합하는 형식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탈근대 군주는 푸코 등이 강조한 부분화ㆍ파편화가 아닌 총체화로서 나아가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산본마쓰는 현재 세계 각처에서 진행되고 있는 좌파운동의 모든 부분들을 통합시킬 수 있는 '집단 지성'이 좌파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좌파운동의 핵심철학으로 '메타 인문주의'를 강조
두번째는 이러한 탈근대 군주의 철학으로서의 '메타 인문주의' 개념이다. 메타 인문주의란 르네상스 이후 계몽주의와 진보주의 사상의 중심이 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나온 새로운 인문주의를 말한다. 마르크스주의의 실패가 인간중심주의적 근대성에 머물렀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산본마쓰는 '영혼'(애니마)을 소유한 모든 자연계의 타자들까지를 포함한 포괄적인 인문주의로서의 '메타 인문주의'만이 좌파운동의 통합 및 성공을 가져오게 할 핵심철학이라고 강조한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의 고통과 억압에 공감할 수 있는 감성코드가 있어야만 존재의 파편화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총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바로 21세기 대중을 이끌 좌파운동의 집단 지성이 있다는 것이다.
'탈근대 군주론'을 중심으로 한 산본마쓰의 통찰력은 좌파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매우 적절해 보인다. 특별히 좌파운동의 새로운 전기가 필요한 한국사회의 지성인들에게 매우 시의적절한 사상적 통찰력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제 우리사회에서도 '탈근대 군주'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좌파 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제안된 산본마쓰의 '탈근대 군주'가 좌파운동의 새로운 활력을 제공해 줄 수 있을까? 그가 단지 '실천적 제안'이라고 말한 '탈근대 군주'의 전략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성취될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예언자적 통찰력만큼은 매우 감동적이다. 특별히 세계를 향한 에로스의 불꽃으로 새로운 정치적인 투쟁을 부추기는 그의 외침엔 상당한 호소력마저 느껴진다.
이런 요소들이 아마도 그의 책을 21세기 최고의 저술로 각광받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로저 고틀리브의 말처럼 "좌파 이론의 임무가 더 나은 세상을 창조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꼭 읽어야 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한국 독자들이 서둘러 일독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덧붙이는 글 | 존 산본마쓰 / 탈근대군주론 / 신기섭 옮김 / 갈무리 / 2005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