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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공원묘원 용미리는 만원이다. 아침 일찍 나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다 왔다. 여의도 면적 몇 배가 묘지로 늘어난다는 소리도 이젠 지겹지 않은가.
서울시립공원묘원 용미리는 만원이다. 아침 일찍 나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다 왔다. 여의도 면적 몇 배가 묘지로 늘어난다는 소리도 이젠 지겹지 않은가. ⓒ 김규환
죽은 자, 어디로 가는가

장사 지낼 장(葬)자를 나누면 풀(艸) 아래 시체(死)를 거두어 두 손으로 받들어 땅에 묻는 모습(廾)이다. 죽은 자는 이승에서 어찌 지냈든 마땅히 정성으로 모셔 승냥이 밥이 되지 않게 하는 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관된 풍습이었다.

고인돌(支石墓), 석관묘(石棺墓), 옹관묘(甕棺墓), 왕릉(王陵) 따위에 매장하기도 하고 공기 중에 놓아두는 풍장(風葬)과 불로 태우는 화장(火葬)에서 납골당(納骨堂)으로 이어지는 갖가지 묘지에서 공원묘지까지 다양한 역사와 형태를 가진 장제(葬制)의 끝은 무엇인가.

평시는 물론이고 전란을 겪은 후에도 저 세상으로 간 사람이 편히 가도록 시신을 수습하여 양지바른 곳에 뉘여 주는 예(禮)는 산 사람에 대한 인권(人權)과 함께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마지막 배려다. 버리지 말아야할 도리를 결코 잊지 않은 본보기이기도 하다.

만약 거리에 뒹굴게 하거나 저잣거리에 내동댕이친다면 보는 이나 떠난 이 서로 편치 않은 건 분명할 터. 대역죄를 지어도 누군가는 거두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숙연해지는 건 왜일까.

용미리 납골당 몇 기는 왕릉식으로 단장하여 고급화를 시도하고 있으나 이도 대안은 아닐 듯 싶다
용미리 납골당 몇 기는 왕릉식으로 단장하여 고급화를 시도하고 있으나 이도 대안은 아닐 듯 싶다 ⓒ 김규환
놀이터, 공원 같은 묘지가 평소 지론

어릴 적 묏동은 우리들 놀이터였다. 그건 베트남이나 태국에 가도 마찬가지다. 서양 영화에 나오는 몇몇 음습한 분위기는 제작자들이 그린 것일 뿐이다. 우린 언제 그토록 편한 묘지-공원을 가질 수 있을까.

올 추석에 큰 형 산소에 갔는데 여느 때처럼 해강이와 솔강이가 제 큰아버지 봉분에 오르락내리락 한다. 주위에서 눈치를 줄까봐 늘 그랬던 것처럼 내가 선수를 쳤다.

“아이들이 공원처럼 편히 놀아야 돼. 그래야 앞으로 한 번이라도 찾아보지. 안 그러면 귀신 나올 것 같은 곳을 누가 찾는답니까?”

너덧 살 아이가 올라가서 그랬을까. 오랜만에 만난 형제들이어서 그럴까. 아무 말이 없었다. 평소 지론은 이미 언급했듯이 묘지는 공원이어야 한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편히 쉴 수 있어야 한다. 밝은 빛이 들고 가장 좋은 잔디가 깔려 풀썩 주저앉아 맘껏 즐기다가 가는 곳이면 더할 나위없다.

우리나라 최다 고인돌 분포지역인 내고향 화순군 세계문화유산 고인돌공원. 왜 고인돌일까? 돌을 고여서 만든 괸돌이라는 뜻일까? 아니면 故人을 묻은 돌일까?
우리나라 최다 고인돌 분포지역인 내고향 화순군 세계문화유산 고인돌공원. 왜 고인돌일까? 돌을 고여서 만든 괸돌이라는 뜻일까? 아니면 故人을 묻은 돌일까? ⓒ 김규환
금수강산 묘지강산 그리고 결사반대 님비현상

난 이 나라 곳곳을 다녀봤다. 묘지가 사뭇 다르다. 둥그런 봉분이 남녘은 외따로 있는 반면 중부지방으로 올라올수록 묘지 위쪽 끝자락이 산과 이어져 있는 것만 다를 뿐이다. 공통점은 어딜 가나 부스럼 자국 같다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묘지관리법을 제정하고 개정도 재개정하여 국토가 남획되는 일을 방지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돈깨나 있는 사람들은 암암리에 100평, 200평 많게는 몇 백 평을 가묘까지 써서 산자락을 깎아 널찍하게 마련하여 조상을 모시고 있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님비현상이 극에 달하였다. 제 어미 아비는 천당, 천국에 가길 간절히 원하면서도 남들이 오거나 집단장지를 마련하려 하면 강남이든 신도시, 시골마을 어디고 간에 주민들이 ‘결사반대’를 외쳐댄다.

납골당이 좋은 본보기다. 외지에서 화장을 하여 골분만 묻어도 땅값 떨어진다고들 난리들이니 이 나라가 정상인가 말이다. 가족납골당 강산 헤치기 마찬가지며 왕릉식 납골당 값이 만만치가 않다고 한다.

중부지방 묘 뒷꼭지는 산과 연결돼 있는 게 남부지방과 다르다.
중부지방 묘 뒷꼭지는 산과 연결돼 있는 게 남부지방과 다르다. ⓒ 김규환
용미리에서 부부가 시신기증과 수목장을 논함

용미리로 가기 전날 아내가 먼저 우리 육신을 이 사회에 맡기자고 해 평소 생각하면서도 꺼냈다가 무슨 소리 들을까 겁내고 있었는데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나도 흔쾌히 그러마고 했다. 곧 서약을 할 예정이다.

우리네 세상은 어느 날 요람에 감기고 한 평생 살다가 한 꺼풀 삼베에 싸여 저 세상으로 간다. 허망하다. 제 아무리 떵떵거리고 살았다손 치더라도 갑자기 세상을 뜨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게 음택(陰宅)이든 양택(陽宅)을 입었던 좋은 묘 자리 잡은들 한순간 살아 있는 것에 비해 하등 좋을 이유가 없다.

추석날 난 또 한 번 선언을 하고 말았다. 명절도 짧았지만 최근 고향으로 가는 일이 순탄치만은 않았기에 10년 전 시립묘지에 묻힌 형이나 찾을까 해서 오랜만에 방문한 길이었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만약 내가 죽게 되면 나무 밑에 묻어주세요. 아이들도 내가 영원불멸하며 또다시 지들이 죽기까지 살아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옆에서 말이 씨가 된다며 죽는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한다. 큰형이 마흔 살에 갔으니 다들 심란한가 보다.

용미리든 어디든 20년마다 옮겨야 하는데 이 비용도 만만치 않다. 반영구적인 시스템으로 가면 좋겠다.
용미리든 어디든 20년마다 옮겨야 하는데 이 비용도 만만치 않다. 반영구적인 시스템으로 가면 좋겠다. ⓒ 김규환
수목장? 나무밑에 뼛가루를 묻어 영원히 사는 장례

새벽 5시에 나서 아침을 먹으면서 수목장(樹木葬)이 곧 우리 사회에 유행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스위스에서 시작하여 독일에 튼튼히 뿌리를 박고 있고 일본에도 전해졌다니 다행이었다.

아는 선배가 자회사를 차릴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일찍이 알았지만 전 고대 김장수 교수가 최초로 나무 밑에 뼛가루를 묻고 저 세상으로 갔으니 얼마나 선각자인가. 윗물을 맑게 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골분만 가져가 더디 자라는 소나무, 전나무, 구상나무, 주목 등 상록활엽수와 평소 좋아하는 활엽수 밑에 묻으면 된다. 지자체에서 관리하고 우린 조그만 돈만 들이면 100년까지 또 한 번 영혼불멸의 세상을 살게 되니 끌리지 않을 수 없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지자체마다 휴양림과 연계하면 두 말할 나위 없겠다.

20년마다 떠나라는 공원묘지 차지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값도 저렴하여 후대에 돈이 없어 폐 끼칠 염려 없고 땅 속으로 들어가는데 드는 비용도 절감하니 일석이조 아닌가. 무엇보다도 매력은 다른데 있다. 나도 못하는 벌초를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는 점이다. 세상의 밑거름이 되어 그냥 땅으로 돌아가고 싶다. 어서 관련법이 제정되길 바란다. 명절 때마다 어떻게 모실 것인가로 논쟁하기도 지쳤다.

서오릉 왕릉. 더 적극적으로 묘지를 생활 근거지로 끌어내려야 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놀이터로 삼도록 하면 10년, 20년 후엔 인식이 바뀌지 않을까?
서오릉 왕릉. 더 적극적으로 묘지를 생활 근거지로 끌어내려야 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놀이터로 삼도록 하면 10년, 20년 후엔 인식이 바뀌지 않을까?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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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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