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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럽다. 구성의 모순이 삼중 사중으로 나타나다 보니 가계부 작성 수준의 경제 지식밖에 없는 '범생이' 입장에선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몇 가지 사례부터 열거하자.
1. 오늘 조간들은 일제히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의 말을 전했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3.8%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얘기다. 환율과 유가 탓이 너무 커 당초 예상치 5%는 고사하고 7월의 수정 전망치인 4%마저 달성할 수 없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다. 환율과 유가가 문제라면 저성장 현상은 세계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IMF는 올해와 내년의 세계경제성장률을 4.3%로 전망하면서 유독 한국만 3.8% 성장에 머물 것이라고 전망했다.
설령 정부의 환율·유가 탓을 곧이곧대로 믿는다 해도 납득할 수 없는 게 있다. 저성장의 원인이 환율과 유가 때문이라면 유가가 조만간 100달러에 육박할 수도 있다는 전망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럼 저성장 기조는 계속될 텐데 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세를 얻는가?
'세금폭탄' 걱정하며 금리 올리라는 <동아>와 <중앙>
2.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등은 오늘도 '세금폭탄'을 운위했다.
보유세가 실효세율 1% 수준으로 올라가는 대상은 전체 가구의 1.6%에 불과한 종부세 과세 대상자에 국한되고, 절대 다수 주택보유자의 세 부담은 2009년 0.28%, 2017년에 0.5% 안팎이 된다는 정부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들 신문은 "그래도 세금폭탄이다"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종부세 과세 대상자의 보유세 부담이 향후 4년간 평균 7배 오른다는 점을 환기시킨 후 "나머지 98%…의 재산세 실효세율은 현행 0.19%에서 2009년 0.28%로 50% 가까이 오른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앙일보>도 경기도 안산시 주민들의 재산세 납부 거부 움직임을 거론한 후 "이번 일은 정부가 부동산 대책으로 세금폭탄을 동원하면서부터 이미 예고된 사태"라고 비판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십분 이해하고 대변하는 주장일 수도 있다. 특히 <중앙일보>의 다른 지적을 보면 더욱 그렇다. "국민이 이토록 어렵다고 느끼는데도 각종 경제지표가 좋아졌다는 정부의 주장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거짓말은 아닐 테고 결국 좋아지는 쪽만 좋아졌고 나빠지는 쪽은 더 나빠졌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희한하다. 국민의 살림살이를 크게 걱정한 <중앙일보>는 경제 섹션에 가서는 다른 지적을 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 타이밍을 놓쳤다는 것이다. 그것도 세 번이나….
미국의 9.11 테러 직후 0.5% 포인트나 낮췄던 콜금리를 이듬해 다시 올려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고, 미국이 정책금리를 줄기차게 올리는 와중이던 지난해 8월과 11월에 금융통화위원회가 오히려 콜금리를 0.25% 포인트 낮춘 게 문제이며, 올 초 부동산 시장이 후끈 달아올랐을 때 콜금리를 낮추지 않고 동결시킨 것도 실책이라는 것이다.
재산세는 1년에 10만원, 더 내야 하는 이자는 한달에 10만원
가계부 작성 수준의 경제지식을 욕해도 어쩔 수 없다. 욕을 먹더라도 물어가면서 배우자. 세금폭탄과 금리폭탄 가운데 어떤 게 위력이 더 셀까? 단연 후자다.
<한겨레>는 이렇게 지적했다. "금리가 오르면 예·적금 등 금융자산의 이자수입이 늘기도 하지만, 금융자산보다 부채가 더 많은 서민들은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전체 이용자의 절반 이상이 서민층이어서 이들의 이자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고 이는 가계 부실화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과장이 아니다. 8월말 현재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184조원, 이중 56.9%가 2억 원 이하의 주택을 담보로 잡은 대출, 즉 서민대출이다. 그래서 금리가 1% 포인트 오르면 이들이 연간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이자만 1조 원에 이른다. 1억 대출 받아 2억짜리 아파트 한 채 샀을 경우 더 내야 하는 재산세는 1년에 10만원 안팎이지만, 더 내야 하는 이자는 한달에 10만원 안팎이다.
<중앙일보>의 말대로 좋아지는 쪽만 좋아지고 나빠지는 쪽은 더 나빠지는 현상을 빚을 게 뻔한 게 금리폭탄이다. 그런데도 콜금리 인상은 대세라는 게 <중앙일보>를 비롯한 상당수 언론의 전망이자 지적이다.
어차피 맞을 폭탄, 조금이라도 상처를 덜 받고 싶은 서민
3. 물론 다른 측면도 짚어야 한다. 미 연방제도준비이사회가 어제 금리를 0.25% 포인트 추가 인상함으로써 한미간 정책금리 격차는 0.5% 포인트로 벌어졌다. 상당수 언론이 콜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주된 이유가 이것이다. 한미간 금리 역전현상이 심화되면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 경제성장에 마이너스 작용을 할 것이란 지적이다.
하지만 <중앙일보>조차 "자금 이탈은 금리격차가 1% 포인트 이상 벌여져야 본격화 한다"고 전했다. 정책금리의 격차는 벌어졌지만 시중금리 격차는 거의 없기 때문에 우려할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지적도 많다.
그 뿐인가. 미 금리 악재를 상쇄한 다른 요인도 있다. 6자회담 타결로 국가신인도가 제고돼 외국자본 유인효과가 배가됐다.
4. 신만이 안다는 게 경제다. 플러스 요인과 마이너스 요인을 종합 검토해 득이 되는 쪽으로 정책을 몰고 가야 하는 게 경제정책이기도 하다. 따라서 다면적이고 복합적으로 짚어야 할 경제를 서푼짜리 지식으로 재단하는 건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권도 민생을 외치고, 언론도 국민의 살림살이를 걱정하니 우리집 가계부를 헤아리는 게 그리 큰 흠은 아닐 것이다. 종자돈이 없어 투자를 못하고, 그래서 먼 미래를 대비하기 힘든 서민으로선 당장 이번 달의 수입지출 내역이 중하다. 어차피 맞아야 하는 폭탄이라면, 조금이라도 상처를 덜 받고 싶은 게 서민의 살림살이다.
그래서 폭탄을 운위하는 언론에 다시 묻는다. 세금폭탄과 금리폭탄 가운데 어떤 게 더 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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