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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이기원
"고구마 크기가 감자만도 못하네."
"올핸 고구마가 잘 안 됐어."
"색깔 보니 맛은 있을 거 같은데."
"그럼, 삶은 밤처럼 파삭파삭하지."

ⓒ 이기원
아내와 장모님이 호미로 금방 캐낸 고구마는 굵지는 않았지만 색깔은 아주 탐스러웠습니다. 빨간 고구마가 촉촉히 젖은 모습으로 제가 숨어 살던 흙더미에 머리를 박고 있습니다. 삶아 먹으면 잘 여문 밤처럼 파삭파삭하고, 구워 먹으면 끈적끈적한 엿처럼 달콤한 맛이 나는 고구마입니다.

"어머나, 고구마가 호미에 찍혔다."
"그러게 똥꾸녕만 쑤시지 말고 넓게 파 들어가."
"엄마는, 똥꾸녕이 뭐야?"

ⓒ 이기원
아내는 웃으며 장모님을 타박했습니다. 고구마 줄기를 걷어내며 나도 웃었습니다. 농사로 평생을 살아오신 분들의 거칠지만 정겨운 말입니다.

"고구만 감자와 틀려. 생채기 나면 금방 썩어 못쓰게 돼."
"알았어, 조심할께."

고구마 줄기 걷어내는 일도 시간이 흐르니 힘이 들었습니다. 오랜 시간 허리를 굽히고 일하다 보니 허리가 아팠습니다. 사방으로 뒤엉켜 뻗어나가 뿌리를 내린 고구마 줄기는 무작정 힘쓴다고 끌려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낫으로 걷어내다 뿌리내린 곳은 적당히 끊어주어야 하고, 한 아름 정도 모이면 밭두렁까지 끌어다 버려야 했습니다.

"사우 이거 마시고 해."

언제 오셨는지 장모님이 곁에 다가와 박카스 한 병을 주셨습니다. 허리도 아프고 팔에도 힘이 빠져 주저앉아 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는데 '자네 마음 내 다 알고 있다'는 듯 장모님이 구원의 손길을 내미신 것입니다. 소매로 이마의 땀을 씻어내고 밭이랑에 앉아 박카스를 마셨습니다.

"고구마 줄기 걷는 것도 힘드네요."
"농사 일 힘들지 않은 게 어디 있어."
"장모님은 안 드세요?"
"으응, 쟤랑 같이 마실게."

ⓒ 이기원
박카스 마시며 잠시 쉬다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아내와 장모님 뒤를 고구마들이 줄을 지어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고구마 덩굴 걷어내는 일이 막바지에 접어드니 힘은 더 들었습니다. 그래도 끝이 보이면 힘에 솟는 법입니다. 안간힘을 쓰며 덩굴을 걷어내어 밭두렁으로 끌고 갔습니다. 밭두렁에 마지막 고구마 덩굴을 던져놓고 돌아보니 고구마 밭이 훤하게 드러났습니다.

"장모님, 호미 더 없어요?"
"둘만 가져왔는데."
"그럼, 전 뭘 하죠?"
"그늘에 가서 좀 쉬어."
"고구마 박스에다 담을까요?"
"놔둬. 좀 말려야 해."

그늘에 가서 물마시고 잠시 쉬는데 아내가 배고프다며 밥 먹자고 졸랐습니다. 알았다며 장모님이 그늘로 와서 돗자리를 펴고 밥이며 반찬을 꺼내놓았습니다. 추석 때 먹던 송편도 있었습니다.

"난 떡부터 먹어야지."

아내는 젓가락으로 떡을 집어 먹었습니다. 장모님은 목구멍이 깔깔하다며 밥을 물에 말아 후루룩 넘기셨습니다. 나도 밥을 한술 떠서 입에 넣었습니다. 밥 먹으며 올려다본 푸른 하늘에 흰 구름 몇 조각이 둥실대며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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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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