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더는 영원한 총리가 되려는가?"
"나는, 게르하르트 율리우스 카이사르."
지난 23일 독일 <빌트>지의 일면을 장식한 머릿기사 제목이다. 로마 황제 카이사르의 복장을 한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그래픽 사진도 곁들여졌다. 총선후 독일 정국이 연정 구성과 총리직을 둘러싼 소용돌이 속에서 연일 갑론을박을 거듭하는 가운데, 매일 수백만 부를 찍어내는 유럽 최대의 '황색' 일간지 <빌트>가 슈뢰더의 총리직 '욕구'를 이렇게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야욕'에 빗대어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스캔들 기사를 선호하고 뚜렷한 보수 성향을 '자랑하는' 이 신문은 차기 정부의 출범 선언문이 다음처럼 시작될지도 모른다고 황당하게 비꼰다. "나, 게르하르트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첫째, 기민ㆍ기사연합은 두 정당으로 분리되었다. 둘째, 따라서 나의 사민당이 원내 제1당이다. 셋째, 내가 총리를 계속한다!"
패러디를 넘어 공개적인 야유와 비아냥 수준에 이른 <빌트>의 이러한 '공격'은 총선에서 0.9% 차이로 기민ㆍ기사연합에 패배한 사민당 지도부가, 연방의회에서 '연합체'로 구성된 기민ㆍ기사연합을 두 개의 정당으로 쪼개고 제1당이 되기 위해 '연방의회 규정'을 바꾸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데 직접적으로 기인하는 듯하다.
현 연방의회 규정은 기민당과 기사당이 연방의회에서 단일 의원단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민ㆍ기사'연합'이라는 명칭 그대로다. 물론 기민당과 기사당은 엄연히 다른 두 개의 정당이지만 기사당은 바이에른주에만 존재하고, 대신 바이에른주에는 기민당이 없다. 그래서 성향이 비슷한 형제당인 두 정당은 기민ㆍ기사연합으로 연방의회 선거에 임하고 하나의 의원단을 구성해온 것이다.
하지만 선거 직후부터 사민당은 기민ㆍ기사연합의 지지율은 두 개 정당을 합친 것이니 만큼 사민당이 최대의 지지를 받은 1당이라는 '논리'를 펴왔고, 급기야 녹색당과 좌파당의 지지를 얻어 연방의회 규정을 바꿔 원내 1당이 되려 한다는 말이 흘러나오며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사민당 내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자 당수 뮌터페링은 재빨리 그럴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보수 색깔을 분명히 하며 기민ㆍ기사연합과 그 당의 총리 후보 앙겔라 메르켈을 지지하는 <빌트>는 '분'을 채 삭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독일정부, '한 지붕 세 가족'으로 가나?
현재 온갖 추측과 예상이 난무하며 독일 정가를 달구고 있는 연정구상과 총리직을 둘러싼 힘겨루기와 줄다리기는 총선에서 어느 정당도 과반수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 기본적인 원인이 돌려진다. 하지만 독일은 전통적으로 한 정당이 과반수를 얻지 못해 연정형태의 정부가 구성되어온 것이 관례였다.
기실 이번 선거의 딜레마는 집권 사민당-녹색당은 물론 야당의 연정 파트너인 기민ㆍ기사연합-자민당도 과반수를 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사민당-기민ㆍ기사연합의 대연정을 제외하면 3개의 정당이 함께 정부를 구성해야 할 처지에다, 총리직 싸움이 긴장을 증폭시키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기민ㆍ기사연합의 주장은 간단하다. 최다 득표를 한 기민ㆍ기사연합이 연정을 주도해야 하고 총리 자리 역시 그들의 후보인 앙겔라 메르켈의 몫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총리직과 연정 주도권을 포기할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어 보이는 슈뢰더와 사민당 당수 뮌터페링은 정색을 한다. 지난 5월까지만 해도 사민당에 20% 이상 앞섰던 기민ㆍ기사연합의 지지율이 수직으로 떨어져 결국 사민당보다 고작 0.9%밖에 많지 않고, 그마저도 두 정당을 합한 것이니 만큼 슈뢰더를 총리로 하는 사민당이 정부구성을 주도해야 옳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민ㆍ기사연합의 구상은 우선 연정 파트너인 자민당에 녹색당을 끌어들이는 흑-황-녹의 '자메이카 연정'(자메이카 국기가 흑ㆍ황ㆍ녹색으로 이루어짐)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슈뢰더 정부에서 사민당의 연정 파트너였던 녹색당과의 정책 차이도 만만치 않고, 녹색당 쪽에서도 당 노선의 수정을 감수하며 보수연정의 '하위' 파트너로 들어가는데 적잖은 위험부담을 가지는 만큼 '자메이카 연정'이 실현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예상대로 23일 녹색당과의 연정 협상은 별다른 성과 없이 큰 차이점만 확인하고 결렬되었다.
'자메이카 연정'이냐 '신호등 연정'이냐, 아니면...
기민ㆍ기사연합의 다음 카드는 사민당과의 대연정이다. 물론 현재 이 구상의 최대 걸림돌은 사민당이 총리직을 포함한 연정 주도권을 쥐려고 한다는 점이다.
한편, 사민당의 구상은 일단 사민당-녹색당에 자민당을 데려오는 적-녹-황의 '신호등 연정'이었다. 하지만 선거 직후부터 자민당은 사민당-녹색당 정권의 수명을 '장관 자리 몇 개'로 연장할 뜻이 전혀 없다고 못박아 왔다.
그러면 사민당의 다음 대안도 기민ㆍ기사연합과의 대연정이다. 물론 슈뢰더를 총리로 앉히는 사민당 주도하의 연정임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기민ㆍ기사당 역시 메르켈을 총리로 하는 연정 주도권 주장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사민당과 기민ㆍ기사연합의 수뇌부가 모인 지난 22일의 연정협상 논의는 예상대로 별반 소득 없이 끝났다.
독일 언론은 정국의 이러한 상황을 가늠하며, '누구도 권력을 얻지 못한 카오스 선거'(<슈피겔>)에 뒤이은 '연정 주도권과 총리 자리를 둘러싼 싸움'으로 요약하고 있다.
'누구도 권력을 얻지 못한' 선거라는 평가는 수치상의 선거결과로 뒷받침된다. 집권 사민당은 34.3%로 지난 2002년 선거보다 4% 이상을, 기민ㆍ기사연합은 35.2%로 3% 이상을 잃었다. 사민당-녹색당 연정의 지난 7년간의 정책은 도합 42.4%의 지지율에 그쳐 결국 국민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기민ㆍ기사연합은 '패배한 승자'
선거 초반 과반수를 웃도는 지지율을 얻어 집권이 거의 확실시되던 기민ㆍ기사연합-자민당은 45%를 얻는데 머물러 지지표가 대거 이탈했음이 입증되었다. 특히 기민ㆍ기사연합은 선거 직전까지 각종 설문조사에서 40%를 웃돌던 지지율이 35% 남짓으로 곤두박질하는 충격을 받아 '패배한 승자'의 모습으로 비쳐졌다.
또한 이번 선거 결과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서독 시절부터 정권을 주고받으며 독일 정치를 이끌어온 거대 양당인 사민당과 기민ㆍ기사연합이 연방의회 선거에서 얻은 지지율의 합이 70%를 밑도는, 1949년 서독 최초의 선거를 빼면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는 2차대전 후 독일 정치를 주도해온 거대 양당의 힘이 균열되기 시작하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이제 거대 정당은 더 이상 그리 거대하지 않고, 군소 정당은 더 이상 그리 작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선거 당일부터 '이 날의 승자'로 공공연히 지목된 것은 군소 정당인 자민당이었다. 자민당은 지난 선거보다 2.4%가 많은 9.8%를 얻어 일약 제3당으로 올라섰고, 승리의 샴페인을 터뜨리며 온통 축제 분위기에 들떴다. 사민당의 슈뢰더는 그 날 저녁부터 자민당에 노골적인 '러브 콜'을 보냈다.
그렇다면 자민당이 진정한 승자인가? 신나치 정당을 빼면 독일의 현 정당 구조에서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자민당은 분명 지난 선거보다 125만명의 유권자를 더 얻었다. 하지만 자민당은 유권자들의 정당별 이동상황 분석 결과 다른 진영의 정당들과는 얼마 안 되는 유권자를 주고받았음에 비해, 같은 보수 진영인 기민ㆍ기사연합에서 125만 표를 뺏어왔다. 결국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표심 이동이 자민당을 제3당으로 만든 것이다.
자민당을 제외하면 지난 선거보다 득표가 늘어난 정당은 '좌파당'(좌파연합)밖에 없다. 민사당과 선거대안당이 연합해 당초의 예상을 깨고 거센 돌풍을 일으킨 좌파당은 결국 8.7%의 지지율을 획득해 녹색당을 제치고 제4당으로 당당히 연방의회에 입성했다. 민사당이 2002년 선거에서 겨우 4%에 그쳐, 지역구 직접선거로 당선된 2명을 빼곤 비례대표제 하한선인 5% 규정에 묶여 연방의회 입성이 좌초된 것에 비하면 무려 4.7%가 늘어난 수치다. 그렇다면 '이 날의 승자'는 자민당이 아니라, 자민당보다 두 배나 득표를 늘린 '좌파당'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좌파당은 지난 선거와 비교해 200만표 이상을 더 끌어모으며 모든 정당에서 유권자들을 뺏어왔다. 무엇보다 사민당이 96만표로 좌파당에 가장 많은 유권자를 빼앗겼다. 또 지난 2002년 선거에서 기민ㆍ기사연합, 사민당, 자민당, 녹색당에 표를 던진 유권자 가운데 각각 74만명, 51만명, 12만명, 8만명이 기권으로 돌아선 반면, 유일하게 좌파당만 지난 선거의 기권자 가운데 39만명의 표심을 얻었다.
하지만 좌파당의 이러한 도약은 크게 언론의 관심을 끌지는 못하고 있다. 게다가 선거 직후 어느 정당도 좌파당을 연정 파트너로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좌파당만 빼고' 어느 정당과도 연정 협상 테이블에 앉겠다는 태도가 시종일관 지배적이다. 현재로선 사민당-좌파당-녹색당으로 구성되는 적-적-녹 연정의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좌파당 역시 선거 후 강력한 야당으로 남아, 복지국가의 토대를 허무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본격적인 비판의 날을 세울 것임을 공언하고 있다.
물론 외면적 이념 성향으로 보면, 흔히 중도 좌파로 분류되는 사민당과 녹색당에 좌파당을 더해 범좌파 진영으로 분류할 수 있고, 중도 우파의 기민ㆍ기사연합과 자민당이 범우파 진영을 이룬다. 산술적으로 좌파 진영의 득표는 과반수를 넘긴 53.1%이고, 우파 진영은 45%를 얻었다.
'좌절한' 구 동독지역 주민들 좌파당 돌풍 만들어내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좌파진영의 연정이 '불가능의 영역'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우선 사민당과 좌파당 지도부의 '개인적인 앙금'이다. 특히 좌파당의 돌풍을 진두지휘한 오스카 라퐁텐은 사민당의 옛 당수였다가 사민당을 탈당해 좌파연합을 성사시킨 인물로 슈뢰더와 '견원지간'이 된 지 오래다.
사민당과 좌파당의 정책노선 차이도 이에 못지 않게 골이 깊다. 좌파당은 슈뢰더 정권이 사활을 걸고 추진한 '아젠다 2010'이나 '하르츠 IV' 같은 개혁을 누구보다 거세게 비판해 왔다. 또 좌파연합이 '좌파당'이라는 명칭을 택한 데에도 사민당을 더 이상 좌파 정당으로 볼 수 없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따라서 적-적-녹으로 꾸려지는 '범좌파 연정'은 현재로선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24일자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에 따르면, 언젠가 가능하겠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이다. 하지만 이 신문은 독일 국민이 좌파를 다수파로 만들었고, 이는 기민ㆍ기사연합-자민당의 보수 진영이 공공연히 찬동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여하튼 좌파당이 일으킨 돌풍은 독일 여론이나 정치권에서 그에 걸맞는 관심이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 적지 않다. 좌파당은 과거 민사당이 구 동독 지역에서는 꽤나 표를 얻었지만 서독 지역에서 1%에 불과한 '무시'에 가까운 대접을 받은 것에 비해, 이제 서독 지역에서도 5%에 육박하는 득표를 올리며 54개의 연방의회 의석을 가진 명실상부한 '전국'정당으로 거듭났다.
좌파당 돌풍의 진원지는 물론 구 동독지역이다. 구 서독 주민이 좌파당에 4.9%의 지지를 보낸 반면 구 동독 주민들은 25.4%의 표를 던져, 동쪽 지역에서 좌파당을 사민당에 이은 제2당으로 만들었다. 구 동독 주민들의 이러한 좌파당 지지는 동서 지역의 현격한 격차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그 '좌절한' 동쪽 주민들의 '분노한' 표심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나아가 구 서독 지역에서까지 좌파당이 약진을 보인 것은 사민당 정부가 경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해온 '복지국가 허물기'에 경종을 울리는 징후로도 읽을 수 있다. 선거전 막판에 사민당이 상당한 세력을 회복한 것도, 기민ㆍ기사연합과 자민당이 경제 회복을 내세워 사회보장과 복지정책의 후퇴를 '더' 강화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나 반감의 결과로 보인다. 기실 사민당은 선거 막판 기민ㆍ기사연합에 맞서 '사회정의와 평등' 및 '약자를 보호하는 정당'이라는 고색 창연한 '옛'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전면에 내걸어 효과를 보기도 했다.
더욱 심해진 사회 양극화 현상 선거결과에 투영
다른 한편으로 이번 선거 결과는 빈곤층의 확대 속에 독일 사회를 가로지르는 '사회 양극화' 과정의 반영으로 생각할 수 있다. 기민ㆍ기사연합의 표가 대거 더 오른쪽의 자민당으로 갔고, 적잖은 사람들이 맨 왼쪽의 좌파당에 기대를 걸었다. 좌파당의 정책에 대한 '실현 불가능한 대중선동'이라는 다수 여론의 지속된 비판에도 불구하고, 10% 가까운 독일 국민들이 '복지국가의 틀'을 지키고 실업수당을 올리겠다는 좌파당의 공약에 표를 던졌다.
결국, 중도를 대변하는 사민당과 기민ㆍ기사연합 세력은 약화된 반면, 오른쪽의 자민당과 왼쪽의 좌파당이 힘을 키우며 사회 양극화 현상이 선거 결과에 투영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슈피겔>이 선거 특집호에서 '왕이 되려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꼬집은 슈뢰더와 사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왜 독일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지난 7년간 이어진 적-녹 연정의 지속을 부정했고, 당의 지지율이 지난 15년 이후 최저에 그쳤는지 곰곰이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7년 적-녹 연정의 최대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된 높은 실업률과 경기침체 문제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기본적인 울타리인 사회복지의 급격한 후퇴만 낳고 별달리 개선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려는 꿈을 부여잡고 있는 메르켈과 기민ㆍ기사연합 역시 이번 결과가 당의 역사상 3번째에 해당하는 최악의 득표임을 기억함과 아울러, 특히 선거전 와중에 불거진 구 동독 주민 모욕 발언에다, '가진 자'에게 혜택을 준다는 비판의 도마에 오른 세제개혁 논란이 더해지며, 선거 초반의 압도적인 지지가 어떻게 급전직하했는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총리직과 연정 구성을 둘러싼 두 정당의 '명분 없는' 주도권 싸움은 독일 국민들의 냉소만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아닌 게 아니라 23일자 <쥐트도이췌 차이퉁>은 슈뢰더와 메르켈을 암시하는 듯한 남녀가 협상 테이블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싸우는 그림을 만평으로 실어, 총리직과 연정 주도권을 둘러싼 '이전투구'가 독일 국민들의 바람과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주도권 싸움은 두 정당 '모두' 선거에서 국민의 매서운 비판을 받았다는 엄연한 사실을 깨끗이 망각한 채, 어떻게든 정권을 잡아 보겠다며 '도토리 키재기'에 골몰하는 촌극에 다름 아닐 것이다.
독일 국민들은 '대연정'을 선호
여하튼 사민당과 기민ㆍ기사연합은 오는 28일 다시 대연정을 위한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자메이카 연정'이나 '신호등 연정'이 난항을 보이며 실현 가능성이 거의 희박해지고 있어 '대연정'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고 있는 것이 현실적 배경이다. 또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독일 국민들은 높은 실업률을 비롯한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대연정을 선호한다고 드러나고 있어, 두 정당은 적잖은 압력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나아가 대다수 독일 국민은 연정 협상이 모조리 실패로 돌아갈 경우 불가피한 길인 '재선거'에 반대하고 있음을 여론조사는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돌아오는 대연정 협상 테이블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몰라도 <쥐트도이췌 차이퉁>의 '이전투구 만평'이 그대로 재현되기를 바라는 독일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후 서독사에서 1966-69년에 단 한 번 존재한 대연정은 당면한 경제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했다는 일각의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정부를 견제하는 명실상부한 야당의 부재로 인해 의회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침해된다는 거센 비판 속에, 비상사태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비상권한법'에 반대하는 저항을 조직한 '의회 외부 반대파'(APO)가 결성되는 등 독일 '68혁명' 분출에 한 기폭제가 되기도 했던 역사를 안고 있다.
이런 역사를 감안할 때, 두 거대정당이 한 울타리에 동거하는 대연정이라는 옷이 과연 독일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안성맞춤'일지는 섣불리 장담하기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