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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콕토,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멀티예술가

▲ 멀티예술가 장 콕토
화가 파블로 피카소와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친구인 장 콕토를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다. 우리에게 콕토는 여전히 생소한 프랑스의 예술가 정도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그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화가이며, 극작가, 소설가, 배우 그리고 영화감독으로 프랑스가 자랑해 마지않는 멀티예술가 중 한 명이다.

19세기 말 파리 근처 메종라피트에서 태어나 19세기 중반 파리 근처 밀리라포레에서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그는 자신을 진정한 파리인으로 생각했으며, 진정한 파리인으로 생활했다. 그는 전형적인 프랑스의 부르주아 계층으로 언제나 교양이 넘쳤으며, 음악과 미술 문학 등 예술에 조예가 깊어 어린 나이에 사교계에 진출했다.

파리에서 이미 인연을 튼 콕토와 피카소의 우정은, 피카소가 러시아 발레리나인 올가와의 결혼으로 상류사회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면서 더욱 깊어졌다. 19살이 되던 해에 첫 시집 <알라딘의 등불>을 출판한 콕토는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고상하고 우아한 상류사회의 세련된 예술세계에 흠뻑 젖어있었다. 그때까지 콕토에겐 예술가로서 고뇌하는 정치적 혼란이나 자아의 혼란 등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 멍통 시내에 꽃이 활짝 피어있다.
ⓒ 배을선
피카소와 러시아 발레단의 감독을 맡고 있던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와 돈독한 우정을 유지하던 콕토는 러시아 발레단의 공연을 보고 극장과 무대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가 발레극을 쓰고 싶어하자 러시아 발레단의 디아길레프는 “나를 한 번 놀라게 해보라”고 콕토에게 말했고, 콕토는 결국 <퍼레이드>, <지붕위의 황소> 등의 발레극과 극작품을 쓰게 되었다.

당시 콕토는 피카소에게 자신의 발레극 <퍼레이드>의 무대미술과 의상담당을 맡아달라고 부탁하면서, 피카소를 발레의 세계, 부르주아 예술의 세계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를 한 번 놀라게 해보라”라는 말 한 마디로 내로라하는 멀티예술가가 된 콕토는 이후 ‘인간성’이란 주제에 매달린다.

레몬향 가득한 작은 도시 멍통에서 만나는 장 콕토

▲ 호텔 드 빌 뒤쪽에 위치한 시청안에 콕토가 그린 웨딩홀이 있다.
ⓒ 배을선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수십 개의 터널을 지나 지중해쪽으로 자동자를 몰다보면 구불구불한 해안고속도로가 나온다. 이 해안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관광지 리비에라(Riviera)다. 이 리비에라를 바로 지나면 프랑스 국경을 통과하게 되는데, 니스, 모나코, 칸 등 프랑스 코따쥐르의 어느 도시로 가든, 꼭 거쳐야 할 도시중 하나가 멍통(Menton)이다.

멍통은 프랑스의 여타 지중해 도시들에 반해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이다. 그러나 멍통은 알프스의 하얀 산맥과 지중해의 터키색 바다가 만나는 매우 아름다운 도시로, 연평균 기온이 겨울에도 영상 10℃를 웃도는 리비에라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다. 곳곳에서는 언제나 레몬 내음을 맡을 수 있는데, 멍통은 또한 레몬나무가 가득한 레몬의 도시로 유명하다.

▲ 콕토가 그린 벽화가 있는 웨딩홀
ⓒ .
사시사철 푸른 레몬나무들과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는 도시 멍통은 프랑스인들은 물론 유럽의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게다가 해안의 끝자락 조그만 성에 위치한 장 콕토 박물관은 이곳이 또한 문화의 도시임을 알려준다.

콕토는 <시인의 피> <오르페우스> 등의 영화를 제작한 뒤 멍통에 정착해 일련의 그리기 예술에 착수했다. 그는 모자이크 작업을 했으며, 카페트 위에도 그림을 그렸다. 그는 남녀의 사랑의 연작(Inamorati)에 착수했으며, 무엇보다 호텔 드 빌(Hôtel de Ville)에 그 유명한 웨딩홀의 벽화를 그렸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두 번째 결혼식을 올리러 오는 곳, 멍통

이 벽화가 있는 웨딩홀은 현재 멍통시청의 소유인데, 이 웨딩홀에서 결혼을 하려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아직도 많다고 한다. 이미 일본에서 결혼식을 마친 신랑신부들이 기념비적인 추억을 만들기 위해 이곳으로 신혼여행을 와서 콕토의 그림이 그려져있는 이 웨딩홀에서 두 번째 결혼식을 치른다는 것.

이 벽화는 <피앙세>(Les fiancés)로 불리는 그림으로, 니스 출신의 과일 따는 아가씨가 멍통 출신의 어부와 결혼을 하는 내용이다. 다른 한쪽에는 이슬람식의 옷을 입은 아시아식 결혼식이 그려져 있는데, 콕토가 가장 좋아하는 이미지인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도 나타난다.

항구보루에 위치한 콕토박물관

▲ 항구보루에 위치한 콕토박물관
ⓒ 배을선
17세기에 지어진 멍통의 작은 항구 보루에 위치하고 있는 장 콕토의 박물관은 작지만 2층으로 알차게 꾸며져 있다. 로마에 의해 개척된 프랑스 남부의 다른 여러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멍통의 콕토 박물관에도 이른 오후에 자는 낮잠 자는 시간인 시에스타(Siesta)가 있다. 때문에 오전 10시부터 12시, 2시부터 6시까지 오픈되는 콕토의 박물관은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콕토의 예술세계를 한눈에 짚어볼 수 있도록 알차게 꾸며져 있다.

1층에는 바닷가 자갈들을 모아 모자이크로 처리한 작품과 초상화들이 걸려져 있고, 2층으로 가는 층계에는 그의 유명한 카페트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는 그의 장난끼 가득한 재치와 유머, 그리고 열정이 가득 담겨있는 사랑의 연작부터 그가 만든 도자기, 콕토의 사진들, 콕토의 손 조각, 시집 등이 전시되어 있다.

▲ 박물관 내부
ⓒ 배을선
피카소의 변함없는 오랜 친구로 어떤 주제이든 대화가 통했던 장 콕토는 피카소와 언제나 함께 였다. 피카소가 발로리에 살았을 때는 함께 투우 경기를 보러 갔고, 칸에 정착한 말년의 피카소를 보기 위해 자주 놀러갔지만, 피카소보다 십년 앞서 세상을 떴다.

동시대의 가장 뛰어난 천재화가 피카소의 존재로 어쩌면 콕토의 이름과 예술세계는 언제나 그림자 속에 머물며 소위 그저 ‘피카소의 친구’ 정도로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카소의 오랜 친구이자 예술의 길을 함께 걸었던 동반자로서 콕토의 세계는 피카소와 함께, 또한 피카소와 구분되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콕토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멍통의 콕토 박물관은 기대 이상의 만족을 줌으로써 우리를 ‘한 번 놀라게’ 한다. 콕토가 주로 다루었던 인간성의 위대한 주제가 조금이나마 숨쉬는 도시 멍통, 어쩌면 그러한 이유로 이 도시가 항상 따뜻한 것은 아닐까.

▲ 박물관 뒤쪽으로 난 성벽에서 지중해를 바라보았다.
ⓒ 배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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