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라틴 아메리카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가? 멸망한 잉카 제국, 칠레산 와인과 포도, 축구의 나라 브라질. 이 정도만 갖고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하기엔 참 민망하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 북아메리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남반구 저쪽의 나라에 대하여는 별 관심이 없는 게 사실이니 말이다.
책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는 라틴 아메리카 문화를 공부하고 이곳에서 오랜 기간 생활해 온 우석균의 문화 기행문이다.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이 지역을 다양하게 여행한 만큼 라틴 아메리카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담겨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잘 알지 못했던 저쪽 세계에 대해 작은 이해와 관심을 얻게 된다.
특이한 점은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면서'노래'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풀어 나간다는 것이다. 책의 앞 부분을 장식하는 '바람의 노래' 편에서는 이곳에 존재하는 다양한 민속 음악을 소개한다. 탱고처럼 우리에게 잘 알려진 라틴 음악을 비롯하여 그 음악을 연주하는 고유한 악기들을 소상히 소개한다.
아르헨티나의 '누에보 칸시오네로 운동'은 '새로운 노래 운동'이라는 의미로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상업성에 물들지 않은 인간미 넘치는 음악을 추구하고, 음악이 궁극적으로 세상을 순화시키고 변화를 이끌어내리라 믿었던 이 운동의 주역들. 이 운동의 모습은 마치 우리나라의 '민중가요운동'과 닮아 있다.
언급되는 가수의 이름이나 노래들은 생소한 것들이 많다. 그만큼 우리가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점을 입증이나 하듯이… 하지만 책을 통해 느껴지는 것은 백인과 인디언의 갈등, 오랜 군부 독재 등에 시달려 온 라틴 아메리카의 험난한 세월만큼 뛰어난 민중 음악도 많다는 사실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살롱에서 만난 80대의 할머니는 전혀 주위를 의식하지 않은 채 즉석에서 일어나 탱고를 한 가락 뽑는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 있어 탱고는 우리나라로 치면 '트로트'와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과거의 향수를 다시 한번 느끼고 퇴락하기 전의 부흥했던 아르헨티나를 회상하게 하는 오래된 노래들.
"사실 람바다니 살사니 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정열을 한껏 발산하는 춤들에 비해 탱고는 남녀 사이의 노골적인 신체 접촉은 거의 없는 편이다. 탱고는 상체와 목을 꼿꼿이 세우고 상대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추는 춤이다. (중략)
그렇다면 탱고의 에로티시즘은 어디에서 발산되는 것일까? 바로 상대방과 춤을 즐기면서도 오만한 거리, 냉랭한 시선을 유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귀족적 거리라고나 할까. 그 귀족적 거리가 자아내는 에로티시즘을 가장 명확히 표현하는 동작이 다리 동작이다. 이 또한 노골적인 접촉이 아니라 애간장을 태우는 스침이다."
신기하게도 길거리에서 탱고를 추는 남녀를 피해가기 위해 지나가던 버스조차 길을 멈추고 속도를 늦추는 나라, 아르헨티나. 그 남미의 정신이 살아 있기에 탱고도, 민중 음악도 많은 사랑을 받지 않았나 싶다. 예술을 사랑하는 민족은 그것을 유지하는 좋은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는'혁명의 노래'를 주제로 한다. 라틴 아메리카는 정열의 나라들로 유명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시련과 고난의 세월을 보내었다. 그 어두운 단면을 잘 알지 못한 채 우리는 그저 남미의 정열에만 관심을 집중해 왔는데 이 책은 이곳이 지닌 암흑의 역사를 노래와 함께 풀어 설명한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척박한 농토에서 힘들게 지내야 했던 민중들의 고뇌를 읊은 유팡키의 노래. 그 음율 속에는 사람 키보다 큰 사탕수수에 파묻혀 고개 숙이고 있다가 프랑스인 지주의 저택을 바라보는 민중의 한이 담겨 있다. 스페인이 정복하기까지 130년이나 저항했다는 킬메스 인들의 깊은 슬픔은 '케나'라는 노랫가락 속에 녹아 있다.
안데스 산맥에 살고 있던 토착민들이 겪은 험준한 세월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식민 지배 당시에는 참혹한 착취를 당했던 이들이 이제는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토착민들은 이래저래 괴로움의 연속인 삶을 살고, 그래서 안데스 산맥을 타고 흐르는 노래는 구슬프기만 하다.
1968년 멕시코, 브라질, 칠레 등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시위의 목적은 냉전 체제에 대한 반발과 인간다운 삶에 대한 절실한 요구이다. 체 게바라도 이러한 혁명을 꿈꾼 이 중 하나다. 라틴 아메리카에는 체와 같은 의식을 지니고 독재 타도를 외쳤던 사람들이 꽤 많다.
칠레의 경우 군부 독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많은 민중들이 희생되었으며 그들이 희생하며 부른 노래는 아직도 많은 이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긴 암흑의 역사를 지낸 라틴 아메리카는 여전히 가난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신음하는 어두운 대륙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남미의 어두운 단면이 이 책에서 하나하나 밝혀진다.
그렇다고 하여 그들의 삶이 고단하고 아프기만 한 것인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그들은 노래를 통해, 정열의 춤을 통해, 음악을 통해 아픔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그 표현을 통해 한층 더 승화된 삶을 지향한다. 그래서 남미에는 불꽃처럼 살아 숨 쉬는 밝은 정신이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