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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이촌동 용산청소년수련관 신축공사현장에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타워크레인.
서울 용산구 이촌동 용산청소년수련관 신축공사현장에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타워크레인. ⓒ 안윤학
공포의 카트리나였다. 높은 곳은 분명 내겐 '카트리나' 그 자체였다.

"거긴 아무나 올라가는 덴 줄 아시우? 하하하!"

9월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촌동 용산청소년수련관 신축공사현장에서는 한바탕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장 한 가운데 우뚝 솟아 있던 타워크레인에 올라가겠노라며 당당하게 사무실을 나섰던 내가 곧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돌아오자 사무실 직원들이 보인 뜨거운 반응이었다.

엘리베이터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큰 오산이었다. 타워크레인 조종석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마스트(타워크레인의 기둥·마스트 하나의 길이는 약 3~5미터) 안에 설치된 부실한 사다리 뿐. 가뜩이나 고소공포증까지 있는 나로선 사방이 확 트여 옥황상제라도 뵈러 가는 듯한 그 길에 차마 오를 수 없었던 것이다.

35미터 위의 남자

'생생한 취재를 위해선 올라가야 한다'며 한 시간 넘게 결의만 다지고 있을 때였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멍하니 타워크레인만 바라보고 있던 바로 그 때, 저 높은 타워크레인 조종석에서 거침없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그 분이 강림하고 계셨던 것이다!

타워크레인 9년차 공진석씨(33). "별로 높지도 않은데 왜 못올라오셨나요?"
타워크레인 9년차 공진석씨(33). "별로 높지도 않은데 왜 못올라오셨나요?" ⓒ 안윤학
인터뷰 주인공은 공진석(33·주식회사 규람타워랜탈 소속)씨. 그는 올해로 타워크레인 운전 9년차가 된 경험 많은 기술자다. 공씨는 점심식사 후 오후 작업을 하기 전 잠시 짬을 내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난생 처음 타워크레인에 오르려다 단단히 망신을 당한 터라 우선 공씨의 첫 경험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은근히 '물론 처음엔 겁이 났죠'하는 대답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은 멋지게 빗나갔다.

"원래 겁이 없었어요. 알씨카(RC Car, 원격조정 모형자동차) 조종할 때의 기분 아시죠? 기계가 내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그 느낌, 희열감까지 느꼈죠. 높은 곳에 있어서 무섭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어요."

다행히도(?) 공씨같이 겁 없는 기술자만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타워크레인 기사 면허증을 따고도 며칠 현장 실습을 한 뒤에 '체질이 아니다'며 포기한 분들도 있다고. 그 말에 다소 위로는 됐으나 공씨가 대략 100m 높이에서 작업할 때의 이야기를 꺼냈을 땐 또다시 입이 딱 벌어졌다.

"전주에서 교각을 만들 때였어요. 그러나 무섭진 않았어요. 문제는 오르내릴 때였죠. 100미터나 되는 높이를 오르내리려니 어찌나 힘들던지, 숨이 턱 막혔죠."

아니 그럼 화장실은? 하루에도 수차례는 가야할 그 곳을 갈 때마다 100미터 사다리 탔나?

"그렇진 않아요. 일반적으로 기사들 대부분이 그렇죠. 밥 먹는 거 외에는 타워 위에서 다 처리합니다. (웃음)"

여기가 공진석씨의 화장실. 그야말로 하늘에 떠 있는 공중(空中) 화장실이다.
여기가 공진석씨의 화장실. 그야말로 하늘에 떠 있는 공중(空中) 화장실이다. ⓒ 안윤학
급할 땐 공중(空中)화장실(?)로

타워크레인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기둥인 마스트(Mast)와 조종실 앞으로 돌출되어 자재를 드는 '팔' 역할을 하는 지브(Jib), 그리고 조종실 뒤로 향해 있는 카운트지브(Count Jib). 카운트지브 뒷부분엔 지브와 무게 균형을 맞추기 위해 콘크리트 덩어리나 벽돌을 싣는다. 조종실 천장에 난 조그만 문을 통해 나가면 지브나 카운트지브 부분을 걸어갈 수 있다.

공씨의 화장실은 다름 아닌 이 카운트지브 부분이었다. 페트병에 작은 일을, 큰일은 신문지를 깔고 해결한 뒤 봉지에 싸 두었다 별도로 처리하는 '점잖은' 기사들도 있으나, 공씨는 번거로워 그냥 카운트지브의 콘크리트나 벽돌 사이에서 해결해 버린다고.

타워크레인은 무슨 일을 하나요?

타워크레인은 건축 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구다.

크레인이 할 수 있는 동작은 세 가지. 자재를 들어 올리거나 내리는 동작(권상), 크레인 상부 전체를 회전시켜 자재를 목표로 한 위치까지 이동시키는 동작(선회) 그리고 지브에 설치된 트롤리의 이동으로 자재를 전후로 움직이는 동작(횡행).

건물을 한층 한층 올릴 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직접 자재를 가지고 오르내렸던 것을 이제는 타워크레인이 손쉽게 해치운다. 건물을 세우는 시간을 단축시키고 사고가 날 위험을 줄인 것.

그래서 현장에는 '타워크레인이 멈추면 현장도 멈춘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크레인 기사가 화장실이 급하다고 몇 십 미터나 되는 높이를 오르내리다 보면 현장이 멈춰버려요. 그럼 시공사측에서도 불만이 많죠. 물론 아래서 일하는 분들이 위험(?)하긴 하죠. 사실 일하다가 그거 맞으면 기분 좋을 사람 누가 있습니까? 그저 내가 사람들 피해서 잘 알아서 해야죠."

"그런데 이곳 현장은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어 그런지 소변은 그럭저럭 해결하겠는데 큰일은 조금 민망하겠더라구요. (웃음)"

"경치를 감상할 시간이 어딨어요?"

직원 휴게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오후 작업 시간이 되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내 공중(空中)화장실도 구경하고, 위 경치도 좀 구경해야하지 않겠어요?"

공씨는 다소 얄밉기까지 한 미소를 띠며 내게 이렇게 권했다. 결국 잠시 망설인 끝에 '함께 가면 덜 겁나겠지' 싶어 그를 따르기로 했다.

크레인 조종실은 지상에서 약 35미터 높이에 있었다. 공씨라면 눈 깜빡할 사이에 오를 높이였다. 그러나 나는 꼬박 5분하고도 몇 십초가 더 걸렸다. '놓치면 죽는다'는 생각에 팔·다리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느릿느릿 사다리를 탄 탓이다.

팬티까지 땀에 젖었고, 수족은 가눌 수 없을 만큼 부들부들 떨렸다. 하늘에서 일하려면 뭔가 특별한 게 필요한 듯했다.

조종실은 한 평 남짓한 좁은 공간으로 앞면이 유리로 돼 지상 세계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떨리는 수족도 잠시,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에 "야호!"하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타워크레인 조종석 내부. 단순한 것 같지만 크레인을 조종할 땐 절도있고 안전하게!
타워크레인 조종석 내부. 단순한 것 같지만 크레인을 조종할 땐 절도있고 안전하게! ⓒ 안윤학
조종석은 생각과는 달리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게임 조이스틱 같은 두 개의 조종기만이 조종석 양쪽에 달려 있었을 뿐 눈에 띄는 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일반 게임 조이스틱과는 차원이 달랐다. 자칫 잘못하면 사람을 크게 다치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위에서 보면 별거 아니지만, 몇 톤씩 나가는 저 자재들 움직일 땐 사람에겐 스치기만 해도 뼈가 부러집니다. 문제는 50미터 이상 올라가면 제 시야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잘 파악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럴 땐 신호수에게 동작을 의지해야 하는데 그 신호수가 정확한 신호를 보내지 못하면 정말 화가 치밀지요."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그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끔 탁 트인 경치를 바라보면 기분전환이라도 되지 않을까? 그는 되레 손사래를 쳤다. 일에 집중하다보면 주변 환경이 눈에 들어올 새가 없다고. 하늘에서 일하면 맑은 공기를 마시고 푸른 하늘을 보니 좀 더 즐겁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늘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좀 멋들어진 말을 하고는 싶은데요. 글쎄요.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신도시 현장에서 지평선이 보일 때 그 땐 구경할 만하죠. 그런데 그런 맛을 즐기는 것도 하루 이틀, 그것도 일 시작하기 전 1, 2분이에요. 워낙 바쁘고 위험한 일이다보니 그 다음날부터는 경치를 보는 감흥도 떨어지죠."

이 손끝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무전기에서는 끝임없이 "내려, 내려, ..."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 손끝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무전기에서는 끝임없이 "내려, 내려, ..." 신호를 보내고 있다. ⓒ 안윤학
"이거 오래 하면 성격 나빠져요"

직업병이 몸에 이상이 오는 것이 아니라 '성격이 나빠지는 것'이라고 하니 하늘에서 하는 일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 것인지 대략 짐작이 갔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힘든 일은 뭐니뭐니 해도 앞으로 있을 지방출장이라고 했다. 올 6월에 결혼을 한 새 신랑이기 때문에 가정생활에 소홀할 그 기간이 못내 안타까울 뿐이라고.

"보통 공사는 몇 개월씩 진행되니, 지방출장 갈 때가 가장 힘들어요"하며 웃는 그에게서 지상세계에서는 찾을 수 없는 순수함이 묻어났다. 타워크레인에 올라 겪었던 많은 고충을 얘기하면서도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은 공진석씨.

힘들지만 어쩌겠습니까, 지상의 많은 사람들이 하늘에 의지해 살고 있으니!

63 빌딩을 손으로 다 닦는다구요?
[인터뷰] 20년간 63빌딩 외장유리 청소해온 이경준씨

▲ 63빌딩 유리창도 모두 사람 손으로 직접 닦아야 한다.
ⓒ63 CITY
63빌딩 63층 유리를 닦는 기분은 어떨까?

"몇 년 전에 KBS <체험, 삶의 현장>팀이 나와 촬영을 했죠. 당시 한 프로야구 구단에서 잘 나가던 김모 선수가 왔는데, 아 글쎄 그 분이 꼭대기에서 시작해 한 10여 층 내려가다가 무서워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해 촬영이 중단됐죠. 물론 방송에서는 편집을 잘해서 그 선수 이미지에 손상이 가지 않게끔 하더군요. (웃음)"

63빌딩의 외장유리 청소를 관리하고 있는 이경준(50·주식회사 대경관리 대표)씨가 오래된 비밀을 하나 털어놓았다. 그는 1985년 63빌딩이 완공되던 해부터 올해까지 20년 동안이나 63빌딩을 번쩍번쩍하게 닦아온 장본인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63빌딩 외장유리는 분기마다(1년에 총 4번) 총 23명의 인원이 투입돼 무려 1주일 동안 '박박' 닦아야 한다. 1주일이란 기간도 기상조건에 따라 유동적이다. 여름에는 유리에 반사되는 빛 때문에 너무 더워, 겨울에는 하늘이 지상보다 체감온도가 10도 정도 더 내려가 활동에 지장을 받기 때문에 기간을 2주일 정도로 잡아야 한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63빌딩 전체를 '손'으로 닦아야 한다는 사실! 이는 63빌딩이 측면에서 보면 아래로 올수록 점점 넓어지는 외형상의 특징 때문이라는데.

"63빌딩은 자체에 설치된 콘도라를 이용해 한 열에 있는 유리를 다 닦은 다음에 다시 옆 열로 옮겨가는 형식으로 닦아요. 내려갔다 올라갔다를 반복하는 거죠. 문제는 63빌딩의 구조상 액체로 된 약품으로 닦다보면 액체가 건물 아래로 빨리 빠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만약 그 상태에서 바람이라도 불면 이미 닦아놓은 유리에 물이 튀어 다시 지저분하게 되는 거죠."

초창기에 이런 문제점을 발견한 이씨는 결국 '규조토' 분말(그의 설명에 따르면 파우더가 유리 광택과 수명 연장에 더욱 좋다고 한다)을 손 걸레에 묻혀 직접 닦기로 결심했다고. 세상에, 그 큰 건물을 일일이 손으로 다 닦는다니.

63빌딩은 '손으로' 박박 닦는다!

"처음에는 한 열 당 3시간이나 걸리더라구요. 지금보다 2배 더 시간이 소요됐죠. 뭐 그래도 큰 문제는 아니었어요. 깨끗하게 닦기만 하면 되니깐. 그런데 정작 문제는 뭐였을까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하늘에서 해결해야할 '생리현상'으로 이어졌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요즘같이 한 열 닦는데 1시간 반만 걸린다면 좀 참았다가 다시 올라올 때 옥상 화장실에서 해결하면 된다지만 3시간이면 정말 참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다. 과연 어떻게 해결 했을까?

"63빌딩 유리는 2장이 한 층을 구성해요. 그 2장 중 아래 유리엔 사람들이 있고 윗 유리엔 사람들이 없죠. 따라서 짝을 잘 계산에서 한 층을 구성하는 유리 중 윗 유리를 찾아 거기에 멈춰서 잠시 일을 보면 아무도 모르게 해결되는 거죠!"

여기서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63빌딩 유리는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고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는 거울유리기 때문에 짝을 잘못 계산하면 마음 놓고 일보다 큰 망신을 당한다!

프로야구 선수도 겁을 집어먹게 한 63빌딩 유리 청소. 위험하진 않을까? 이씨는 63빌딩이 그의 두 아들도 아르바이트를 시킬 만큼 안전하다고 말한다.

"63빌딩은 매우 안전합니다. 빌딩자체에 설치된 콘도라와 빌딩이 바퀴와 레일로 부착된 형태라 초속 8미터의 바람에도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흔들리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콘도라 자체에 안전벨트도 있어 행여 실수가 있어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죠. 제가 본 건물 중 가장 안전합니다."

참고로 아르바이트생은 일당 15만원! 일당치곤 꽤 짭짤한 액수다. 그러나 돈만 보고 이 일에 선뜻 나선다면 분명 큰 코 다칠 것이다. 하늘의 세계엔 아무나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 안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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