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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베짱이는 풀만 뜯어 먹고 사는 줄 알았습니다. 베짱이는 바이올린을 켜며 하루종일 배고파도 먹는 것조차 귀찮아서 노래만 부르는 게으름뱅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베짱이는 노래만 하다 굶어죽는, 저 먹을 것도 챙기지 못하는 게으름뱅이는 아니었습니다.
몸집이 작은 줄베짱이 실베짱이 등은 밤새 노래하다 새벽에 목이 마르면 풀잎에 달린 아침이슬도 따 마시고, 꽃 위에 앉아 꽃술도 하나씩 빼먹기도 하며, 실제로 작은 보리수 열매 위에 앉아 산과일즙을 빨아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짱이는 줄베짱이와 실베짱이, 중베짱이 등 여러 종류로 나뉘는데 그중에 중베짱이란 녀석의 그 왕성한 식욕 앞에서 두손 들고 말았습니다. 저녁 무렵 현장을 목격했는데 베짱이는 저녁식사 중이었습니다. 중베짱이가 뾰족하고 톱날같은 입으로 송충이 닮은 애벌레를 시커먼 털까지 우적우적 씹어먹고 있는 것을 보니 내 마음 속에 있던 동화를 잃은 듯하여 슬프기까지 하였습니다. 우아한 베짱이가 어떻게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벌레를 생으로 씹어 먹는 거지.
베짱이는 풀만 먹고 멋진 날개옷을 입고 쓰르르쓰르르 바이올린을 켜며 노래를 부르고 있어야 하는데 어찌된 일입니까? 세월따라 베짱이가 스스로 변했는지도 모르겠다고요?
하지만 베짱이가 하루아침에 변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처음부터 중베짱이는 동화 속의 공동 주연인 부지런하기 그지없는 개미를 즐겨 잡아먹고 산다고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 베짱이는 개미를 먹으며 속으론 너 때문에 내 이미지 망가진 복수얏~! 이럴지도 모르겠지요.
베짱이의 저녁 식사를 몰래 훔쳐보며 그동한 게으름뱅이라고만 생각했던게 조금은 미안해졌습니다. 베짱이는 게으름뱅이가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