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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공묘(孔廟)에 있는 공자상
베이징 공묘(孔廟)에 있는 공자상 ⓒ 김대오
'반봉건, 반전통'을 부르짖으며 '민주와 과학'을 기치로 내걸었던 5·4운동, 수평적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중화인민공화국의 건설, 문화대혁명 때의 '4구(구사상, 구문화, 구풍속, 구습관)타파운동'과 '비림비공((批林批孔, 린뱌오를 비판하고 공자를 비판한다)'을 통해 철저하게 버려지고 '사람을 잡아 먹는(食人)' 사상으로 간주되며 이제는 유통기간이 지난 것처럼 여겨졌던 공자가 21세기 현대 중국에서 다시 주목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개혁 개방 이후 경제적 가치를 우선시 하는 자본주의가 대거 유입되면서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 자체가 사회를 통합할 만한 힘을 상실했다는 현실인식이 작용하고 있다. 오히려 사회주의시절의 오류로 인해서 가부장적인 권위를 부정하는 부작용이 만연한 상황에서 기존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로 그것을 다시 고쳐 나가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장유유서(長幼有序)의 권위는 홍위병에 의해 이미 철저히 무너졌고 오늘 날에는 돈이 모든 권위를 대신하며 장유유서가 아닌 빈부유서(貧富有序) 풍조가 만연하고 있을 정도다. 이 같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해법으로 공자의 사상을 들고 나선 것으로 보여진다.

공자는 <논어>에서 "적은 것을 걱정하지 말고 고르지 않은 것을 걱정하라(不患寡而患不均)"고 말하고 있는데 '조화로운 균형발전'을 강조하는 후진타오 체제의 통치이념과 기가 막히게 들어 맞는다. 여기에 공산당 일당독재를 강력하게 밀고 나가야 하는 중국 공산당으로서는 전제정치의 틀을 확고히 마련해 주며 체제유지 기능이 강한 공자의 유가사상이 더 없는 제격으로 어울린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 하다.

물론 후진타오가 최고지도자로 등장하면서 줄곧 강조해 온 법치(法治)와 유가의 인치(人治), 덕치(德治)사상처럼 모순되는 면도 존재하지만 후진타오는 이보다는 '유교를 근간으로 하는 중화민족주의'라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했을 때 공자와 유교문화가 갖는 문화적인 가치는 분명 간과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중국은 유교 문화의 본고장이지만 유교적 전통과 철저히 단절되면서 이제 중국에는 껍데기만 남아 있고 오히려 그것을 중국으로부터 전수 받았던 한국, 대만, 일본이 그 문화적 원형을 더 잘 보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이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에 대한 정체성과 헤게모니를 주장하기 힘들다는 위기인식이 중국으로 하여금 '공자와 유교 챙기기'에 나서게 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가능하다. 오늘날 중국에서 공자는 이미 죽었다. 학생은 교수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레포트를 내는 학생은 "선생님 와서 이거 가져가라"고 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가부장적 권위 상실의 징후는 중국사회 도처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아무 곳이나 침을 뱉고 공공장소에서도 흡연은 물론 새치기, 소매치기가 난무한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의 타인에 대한 배려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마틴 루터의 저서 <중국인격병태비판(中國人格病態批判)>에서 지적되고 있는 중국인들의 인격에 나타나는 많은 병적 징후들은 봉건적 전제주의에서 혁명적 사회주의로 급전환 되면서 생겨나는 가치의 혼란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다시 등장한 공자가 과연 그 중간에서 완충 작용을 잘 해 줄 수 있을 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중국이 죽었던 공자를 되살려 공산당 일당 독재의 사회주의를 공고히 하면서 중국사회에 만연한 금전 만능적인 이기주의를 극복해 갈 수 있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차이나]는 그날 그날의 중국 근현대 소사(小史)를 전하며 중국 역사 속의 오늘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국정넷포터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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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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