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전시가 4일 국감에서 집중 질타를 받을 전망이다. 특히 건설업계의 구조적 비리를 양산하는 '턴키 발주공사(Turn Key Base, 설계·시공 일괄입찰 방식)'가 도마 위에 오른다. 턴키는 말 그대로 모든 공사를 완결하고 키를 넘긴다는 의미다.
경찰 조사결과에 따르면 대전시 건설관리본부 6급 주사 주아무개(44, 토목직)씨는 2001년 8월경부터 2005년 7월까지 대전시 발주공사 감독 완화와 턴키 발주 공사평가에서 고득점 청탁 등의 명목으로 60여 회에 걸쳐 총 1억3800만원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씨에게 뇌물을 건넨 것으로 확인된 회사는 계룡건설, 삼성중공업 건설부분, GS건설, 대우건설, SK건설, 남광토건, 재형토건, 효자건설 등 8개사로 대형 건설사 대부분이다.
턴키 공사에 뇌물의 비밀이 있다
이 가운데 삼성중공업 건설부분과 GS건설은 턴키 발주 평가시 고득점 청탁을 위해 뇌물 1600만원과 700만원을 각각 전달하고 12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전달했다. 주씨는 턴키 심사위원일 뿐 아니라 대전시에서 발주하는 공사의 실무 책임자로 일해왔다.
턴키 제도는 설계·시공 일괄입찰 방식으로, 설계에서 시공까지 모든 공정을 맡는 공사다. 이는 반복적인 건축공사에 적합한 공사로 기존 설계도면을 재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을 아끼거나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턴키 제도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상당 부분 왜곡됐다. 불법 하도급이 만연해 있고 설계에서부터 시공까지 모든 과정을 맡을 수 있는 건설사가 국내에는 거의 없다. 따라서 변형된 턴키 제도가 운영될 수밖에 없다.
변형된 턴키 제도에서는 설계도면 점수가 당락을 좌우한다. 설계도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선투자비(공사비의 3% 정도)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자금력이 튼튼한 대기업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또한 설계 심사위원들의 점수로 사업자가 결정되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에 대한 로비가 치열하다는 것은 업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로비력을 갖춘 대형건설업체가 턴키 공사를 독식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때문에 2002년 11월에는 상위 6개사를 제외한 상위권 50개 건설사들이 건설교통부와 재정경제부에 "턴키는 많은 구조적인 문제를 노정하는 백해무익한 제도이며, 건설부흥의 암초가 된다"며 폐지를 주장한 바 있다.
경찰은 "비리 공무원 주씨는 삼성중공업과 GS건설의 경우 턴키 공사에서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보험성 뇌물을 줬다고 진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서 보험성 뇌물은 턴키 심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턴키 심사의 공정성을 기한다는 명분으로 해당 지역 공무원은 그 지역 공사 심사에서 배제되고, 대신 다른 지역 심사에 참여한다. 일례로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강원지역 1600억원 규모 턴키 방식 공사의 심사위원 면면을 살펴보자.
(표 참조)
교수나 유관기관 관계자뿐 아니라 경기도청, 부산광역시, 광주광역시, 전남도청의 소속 공무원이 참여한다. 강원도 공사이기 때문에 다른 지자체 공무원들이 참여한 것이다. 이 공사의 경우 대기업 건설사 A사와 B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여 불과 0.07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됐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로비능력이 당락을 결정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삼성중공업에 높은 점수 줬다"
대전 공무원의 건설사 뇌물 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충남경찰청은 "6급 공무원 주씨로부터 다른 시도 수백억원대의 턴키 심사에서 삼성중공업에 높은 점수를 줬고, 삼성중공업은 이 공사를 수주했다는 진술을 얻어냈다"고 설명했다. 수사확대가 불가피한 대목이다.
확인결과 주씨는 지난해 4월 경남 창원의 턴키 공사 심사위원을 맡은 것으로 드러났다. 충남경찰청에 따르면 대전시에 있는 턴키 심사위원만 해도 600여명에 달해 보험 성격으로 전달된 돈은 주씨 외에도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은 돈을 건넨 삼성중공업 현장소장 최아무개(46)씨를 불러 구체적인 혐의에 대해 집중 조사할 방침이지만 최씨가 일본으로 출국했다가 입국을 하지 않아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올해 8월 27일부터 발효된 건설산업기본법 영업정지 규정에 따르면 10월말부터 입찰과 수주를 위해 뇌물이나 향응을 제공하는 건설사는 2개월에서 1년까지 영업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비리를 근절하자는 취지다.
구체적으로는 뇌물액이 1000만원 미만이면 영업정지 2개월, 1000만원~5000만원 사이는 4개월, 5000만원~1억원은 6개월, 1억원 이상은 8개월이다.
그러나 대전시 건설비리 관련사들은 법이 발효된 8월 27일 이전 일이기 때문에 규제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소급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경찰의 엄정한 수사와 함께 해당 건설사에 대한 영업정지를 촉구하기도 했다.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소속인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은 "턴키 발주 공사는 비리를 유발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면서 "대전 건설비리 수사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