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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제시 못하면 의원직 내놓겠다" 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의 국정감사에서 질의를 마친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물을 마시고 있다. 주 의원은 '대구 국감 술자리 파문'과 관련해 정치적 음모론을 주장하면서, 만약 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의원직을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증거 제시 못하면 의원직 내놓겠다" 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의 국정감사에서 질의를 마친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물을 마시고 있다. 주 의원은 '대구 국감 술자리 파문'과 관련해 정치적 음모론을 주장하면서, 만약 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의원직을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4일 밤 MBC는 < PD수첩 >을 통해 주성영 의원의 '국감 술자리 파문'의 전모를 보도했다. 글로 보도된 관련자들의 증언이 아닌 생생한 육성을 접하고 보니 또다른 한숨이 나온다. 도대체 21세기에 살면서 언제까지 이런 식의 3류 코미디를 보고 살아야만 하는가? 이제는 술로 인한 추태, 그리고 그 술로 인한 추태에 한없이 관대한 우리의 비정상적인 술문화가 정말 지겹기까지하다.

생각해보라. 국정감사는 국민의 권리와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엄중한 행사다. 도대체 국감의원과 피감기관의 간부가 출처 불명인 '100만원 범위 내'에서 폭탄주를 돌리며 부적절한 우정을 쌓아야 할 이유가 뭔가? 그렇게 우정이 쌓이면 열린우리당 의원의 입에서 '한나라당 누구를 대통령으로!'라는 구호도 등장하고, 정치의 벽도 여야가 없이 술주정처럼 허물어지는 것을 기대해서 그러는가? 그럼 그렇게 계속 여야간 벽을 허무는 우정만 쌓을 일이지 국감 의원과 피감기관 검사가 사이좋게 업소 여사장을 향해 퍼부은 폭언과 성희롱은 또 뭔가?

업소 여사장은 "개인적 감정이 이렇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점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그녀가 사과할 일도 아니고, 대중매체가 그녀의 사적인 감정을 확대재생산해 가십을 소비하는 차원의 사회적 에너지의 낭비도 아니다. 이것은 이 사회의 온갖 치부가 응축되어 사사로운 자리를 통해 표출된 추문이다. 미래를 위한 정화를 위해서 반드시 그리고 집요하게 추궁해야 한다.

주 의원의 본회의 발언 "공개사과? 먹는 겁니까?"

사실 내가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이번 '대구 국감 술자리 폭언' 파문 때문이 아니다. 주 의원은 지난 2004년 정기국회 대정부질문 때 '이철우 전 열린우리당 의원 간첩' 주장으로 윤리위원회에서 '본회의 사과'로 징계 의결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지난 6월 29일 국회 본회의 신상발언을 통해 "대구사과는 들어봤어도 공개사과는 처음 들어봅니다, 뭐 이거 먹는 겁니까? 과일의 일종인가요?"라고 물으며 공개사과를 거부했다. 내 최초의 관심은 그 때문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991년 '강요된 사죄광고'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국회의원도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 지금까지도 징계의 한 방법으로 '공개사과'를 '강요!'하는 국회법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 의원이 공개사과를 거부한 이유는 헌법재판소가 보장하려는 그런 '양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공개사과'가 딸기나 포도 혹은 망고와 같은 과일의 일종일 수도 있다는 이유로 사과를 거부했다. 문제만 헷갈리게 만든 것이다.

나는 이번 '대구 국감 술자리 폭언' 파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오마이뉴스>의 첫 보도와 주성영 의원의 기사에 대한 불만은 사건 관계의 맥락에서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오마이뉴스>는 문제의 룸바 여사장의 '첫 증언'(23일)을 5명의 다른 언론사 기자와 함께 듣고 이를 나름대로 기사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보도했고, 주 의원 측은 "추태를 부렸다는 기사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면서 "허황된 주장으로 완전히 팩트(사실)가 아니다"고 보도내용을 부인한 것이었다.

이렇게 언론사 보도와 당사자의 입장이 다를 경우 보통의 힘없는 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헌법상 언론의 자유는 이런 경우를 위해 Access권(보도매체 접근이용권)을 보장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자신과 관계있는 기사가 잘못됐다고 생각할 경우 이러한 보도에 대해 사실적 진술에 관한 정정보도를 청구하거나 사실적 주장에 관한 반론의 기회를 보장하는 취지다.

물론 힘있는 언론사는 이러한 보통 서민들의 권리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언론매체에서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이 보장하는 정정보도청구권이나 반론권 공히 "언론사의 고의ㆍ과실이나 위법"을 요하지 않음에도 특별히 '정정보도 청구'의 경우에는 그 명칭이 주는 선입관 때문에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 의원으로부터 이런 요청이 있었을 경우 <오마이뉴스>가 어떤 태도를 취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적어도 반론권의 경우에는 아마도 '대서특필' 해줬으리라 믿는다. 왜냐하면 <오마이뉴스>는 주 의원으로부터 공식적인 정정보도 청구와 반론권 요청이 없었음에도 그의 홈페이지 반론 내용까지도 열심히(?) 보도했기 때문이다.

설령 <오마이뉴스>가 주 의원의 요청을 무시했을 경우라도 언론중재위원회의 직권시정권고권도 존재한다. 한마디로 언론으로부터 피해를 당해 자신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상식적이고도 일차적인 시도가 있다.

그는 '힘없는 사람들'처럼 하지 않았다

지난 9월 22일밤 '국감 술자리 추태' 피해자인 L바 여사장 H씨는 23일 기자들을 만난 이후 처음으로 MBC < PD수첩 >과 대면 인터뷰에 응했다. H씨는 이 자리에서 주성영 의원으로부터 심한 욕설을 들었다고 다시 한번 증언했다.
지난 9월 22일밤 '국감 술자리 추태' 피해자인 L바 여사장 H씨는 23일 기자들을 만난 이후 처음으로 MBC < PD수첩 >과 대면 인터뷰에 응했다. H씨는 이 자리에서 주성영 의원으로부터 심한 욕설을 들었다고 다시 한번 증언했다. ⓒ MBC 화면 촬영
그러나 힘있는 주성영 의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9월 27일 국감장의 신상발언에서 "사건의 본질적 핵심은 사이비 황색언론 오마이뉴스에 의한 사건조작과 위장 시민단체의 진실왜곡, 대구 동구을 재보궐 선거와 관련한 추악한 배후가 있다는 것"이라면서 "만약 내가 제시한 세가지 사안에 대해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의원직을 사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차원이 달라진다. 이제 주 의원의 '대구 국감 술자리 폭언' 파문은 대국민적 정치문제가 되면서 동시에 관련자들에 대한 명예훼손이 걸려 있는 문제로 바뀌는 것이다. 주 의원은 9월 28일에는 또 "집을 팔아서라도 오마이뉴스를 해체하겠다"고 했으므로 반드시 사건의 진실을 밝혀주기 바란다. 설마 1주일이 지난 그때까지도 술이 덜 깬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다.

특별히 내가 궁금한 것은 "대구 동구을 재보궐 선거와 관련한 추악한 배후가 있다"는 그의 공적 확언이다. 개인적으로 더 궁금한 것은 "사이비 황색언론 오마이뉴스에 의한 사건조작"이라는 발언에 대한 근거다. 과거 공안검사의 경력으로 볼 때 이런 공적 발언의 법적 의미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법적 의미가 아니더라도 정말 <오마이뉴스>가 "사이비 황색언론"인 것이 맞다면 이 매체에 고정 칼럼을 쓰고 있는 나는 도대체 뭔가? 그리고 수만 명의 시민기자와 수십만 명의 독자들은 또 뭔가?

나도 <오마이뉴스>가 (당연하게도) 나름의 편집방향과 정치적 편향성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주성영 의원의 주장대로 <오마이뉴스>가 황색언론이라고는 생각해 본적은 없다. 만약 주 의원이 주장하고 있는 '황색언론의 사건조작'이라는 말의 의미가 단순히 자신이 싫어하는 어떤 정치적 편향성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선거판의 '정치적 음모'에 연루돼 있다는 의미라면 이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어물어물 끝날 일이 아니다, 나도 예의상 베팅 하나 하겠다

이 문제는 '공개사과'라는 언어적 의미를 모르는 주 의원의 언어적 능력과 평소 폭탄주를 즐겼던 그의 화끈한 성격을 감안할 때 어물어물 끝날 일도 아니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주 의원이 자신의 발언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의원직을 사퇴하든지, 거꾸로 <오마이뉴스>에 내가 모르는 무슨 정치적 비리가 있으면 <오마이뉴스>가 스스로 언론사를 해체하든지 반드시 끝장을 내야만 한다. 그리고 주 의원은 국회의원을 물러나는 경우라도 자신이 지난 총선 때 공약으로 내걸었던 '국회의원에 대한 주민소환제'를 마지막 봉사라 생각하고 꼭 다시 앞장서 제안해주기 바란다.

개인적으로 폭탄주는커녕 술도 잘 하지 못하는 처지를 악용(?)해 칼럼니스트라고 말로만 이러쿵저러쿵 도덕적 주장을 하는 것이 좀 쑥스럽기도 하다. 기왕에 주 의원이 큰 베팅을 했으므로 작지만 나도 예의상 베팅을 하나 하겠다. 만약 주 의원의 주장대로 <오마이뉴스>가 '황색언론'임이 만천하에 입증된다면, '황색언론'에 글을 쓴 나의 죄를 반성하고 이후로는 어떤 매체를 통해서건 다시는 대중적인 글을 쓰지 않을 것임을 주 의원과 독자들에게 맨정신으로 틀림없이 약속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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